민중당은 개혁되어야 한다: 두 판 사이의 차이

64 바이트 제거됨 ,  2024년 12월 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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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의 한국정치연구회 월례토론회에서 장기표, 우리 민중당의 정책위원장께서는 김세균 교수에게서 "몽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 받고, "'개혁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것을 내세우지 말고 이제까지의 변혁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라"<ref>한겨레신문 재인용</ref>는 가르침을 받았다는데, 김세균 교수가 그의 구체적 입론 여하간에 대체로 침착하게 공부하는 원칙적인 학자로 평가 받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야 그의 말을 무겁게 듣지 않을 수 없고, 우리 당의 정책위원장이 밖에 나가 그런 소리나 듣고 다니는 이러한 상황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4월 26일의 한국정치연구회 월례토론회에서 장기표, 우리 민중당의 정책위원장께서는 김세균 교수에게서 "몽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 받고, "'개혁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것을 내세우지 말고 이제까지의 변혁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라"<ref>한겨레신문 재인용</ref>는 가르침을 받았다는데, 김세균 교수가 그의 구체적 입론 여하간에 대체로 침착하게 공부하는 원칙적인 학자로 평가 받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야 그의 말을 무겁게 듣지 않을 수 없고, 우리 당의 정책위원장이 밖에 나가 그런 소리나 듣고 다니는 이러한 상황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경대 열사 살해 사건 이후에 민중 운동 진영은 하나로 모였으며, 공개 반합
강경대 열사 살해 사건 이후에 민중 운동 진영은 하나로 모였으며, 공개 반합법 운동 조직들은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은 이 와중에서 미리 해 오던 광역선거 준비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그것의 결과는 5월 투쟁에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 것이었다. 자기자신 투쟁으로 단련되고 그것을 통하여 민중당의 위신이 투쟁하는 민중 속에 우뚝 서기를 바란 당 실무자들을 비롯한 많은 당원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원성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민중당을 고개를 외로 꼰 채 바라보던 사람들이 드디어 민중당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낯 뜨거운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민중당 깃발 아래 모이기가 창피하다"는 것이 투쟁 대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당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으며, 가지고 나갔던 지구당의 깃발조차 감아 들고 풀 죽어 있는 당원까지 있었다. 많은 당원들이 당기와 상관 없이 행동했다. 민중당의 고문 백기완님이 "이 체제를 갈아 엎어야 한다. 민중이 주체되어 떨쳐 일어나자"고 포효하는 가두 투쟁의 현장에서, 백기완님을 사실상 당 밖으로 밀어냈으면서도 그가 민중당과 관계있는 듯이 눙치며 필요할 때마다 그의 위광 덕을 보려 하는 민중당은 그 사자후에 답하지 않았다.
5월2일의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광역선거 준비를 보류하고 5월투쟁에 총력대응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고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관심을 광역선거로 돌리려는 이 지배계급의 의도를 간파한 까닭이었다. 대책회의까지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려는 부르주아지의 광역선거 방침에 반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의 중앙위원회는 선거 참여를 결정하였다. 결정 사항은 무조건 참여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바둑에서도 먼저 둔 수가 아까와 계속 악수를 둘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선거를 포기하기 곤란했던 여러 지구당들의 사정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광역선거 참여 결정 자체의 선악에 대하여서는 더 말하지 않기로 하겠다. 참여와 거부의 진영 구획이 현재의 당 개혁투쟁의 계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로서, 참여냐 거부냐의 논쟁을 재론하는 것은 우리의 당 개혁투쟁의 전선을 불분명하게 만들지 모른다. 이재오 사무총장이 이 참여 결정의 주도 인물임은 공지의 사실이고 그가 민중당의 주요한 결정의 고비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이 회의의 결정을 저 회의의 형식으로 뒤집는 것을 능사로 해 왔음<ref>지난 창당대회 직전에 백기완 당수 체제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던 창준위 상임위의 결정은 어떻게 뒤집어졌던가? 그 결정에 의거하여 일부 상임위원들이 백기완님을 찾아 갔을 때 그는 사실상 수락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소집된 비상상임위원회에서 이우재씨가 돌연 사표를 제출하여 상임위원들을 위협했으며 당이 출범하기도 전에 좌초할 것을 염려한 다수 상임위원들의 소심한 판단에 의하여 상임위원회는 백기완, 이우재, 김낙중의 3인 공동대표제를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앞서의 결의를 번복하였다. 이는 일사부재리의 기본적 의사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또 이러한 상임위원회의 제안에 1차 중앙위원회가 격론을 벌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여 재소집된 2차 중앙위원회는 의사정족수가 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차 중앙위원회에서는 선례가 없었던 의결권 위임이라는 방식을 동원하여 이재오씨, 이우재씨 등이 여러 표씩을 행사함으로써 상임위의 수정된 3인 공동대표제(백기완 배제, 이우재-김낙중-김상기)를 비롯하여 창당대회에서의 무표결 등의 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누가 있었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누가 감히 민중당에서


이런 잡한 권모술수가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ref> 또한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  
 
 
 
 
법 운동 조직들은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은 이 와중에서 미리
 
해 오던 광역선거 준비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그것의 결과는 5월 투쟁에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 것이었다. 자기자신 투쟁으로 단련되고 그것을 통하여 민중
 
당의 위신이 투쟁하는 민중 속에 우뚝 서기를 바란 당 실무자들을 비롯한 많은 당
 
원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원성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동안 민중당을 고개를 외로 꼰 채 바라보던 사람들이 드디어 민중당에 고개를 설
 
레설레 흔드는 낯 뜨거운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민중당 깃발 아래 모
 
이기가 창피하다"는 것이 투쟁 대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당원들의 공통된 목소
 
리였으며, 가지고 나갔던 지구당의 깃발조차 같아 들고 풀 죽어 있는 당원까지 있
 
었다. 많은 당원들이 당기와 상관 없이 행동했다. 민중당의 고문 백기완님이 "이
 
체제를 갈아 엎어야 한다. 민중이 주체되어 떨쳐 일어나자"고 포효하는 가두 투쟁
 
의 현장에서, 백기완님을 사실상 당 밖으로 밀어냈으면서도 그가 민중당과 관계
 
있는 듯이 눙치며 필요할 때마다 그의 위광 덕을 보려 하는 민중당은 그 사자후에
 
답하지 않았다.
 
5월2일의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광역선거 준비를 보류하고 5월투쟁에 총
 
력대응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고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관심을 광역선거로 돌리려
 
는 이 지배계급의 의도를 간파한 까닭이었다. 대책회의까지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
 
려는 부르주아지의 광역선거 방침에 반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의 중앙위
 
원회는 선거 참여를 결정하였다. 결정 사항은 무조건 참여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
 
라.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바둑에서도 먼저 둔 수가 아까와
 
계속 악수를 둘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선거를 포기하기 곤란했던 연
 
러 지구당들의 사정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광역
 
선거 참여 결정 자체의 선악에 대하여서는 더 말하지 않기로 하겠다. 참여와 거부
 
의 진영 구획이 현재의 당 개혁투쟁의 계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로서,
 
참여냐 거부냐의 논쟁을 재론하는 것은 우리의 당 개혁투쟁의 전선을 불분명하게
 
만들지 모른다. 이재오 사무총장이 이 참여 결정의 주도 인물임은 공지의 사실이
 
고 그가 민중당의 주요한 결정의 고비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이 회의의 결정을
 
저 회의의 형식으로 뒤집는 것을 능사로 해 왔음 또한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 지난 창당대회 직전에 백기완 당수 체제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던 창준위
 
상임위의 결정은 어떻게 뒤집어졌던가? 그 결정에 의거하여 일부 상임위원들이 백
 
기완님을 찾아 갔을 때 그는 사실상 수락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소집된 비상상임
 
위원회에서 이우재씨가 돌연 사표를 제출하여 상임위원들을 위협했으며 당이 출범
 
하기도 전에 좌초할 것을 염려한 다수 상임위원들의 소심한 판단에 의하여 상임위
 
원회는 백기완, 이우재, 김낙중의 3인 공동대표제를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앞서의
 
결의를 번복하였다. 이는 일사부재리의 기본적 의사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또 이
 
러한 상임위원회의 제안에 1차 중앙위원회가 격론을 벌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여
 
재소집된 2차 중앙위원회는 의사정족수가 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차 중앙위
 
원회에서는 선례가 없었던 의결권 위임이라는 방식을 동원하여 이재오씨, 이우재
 
씨 등이 여러 표씩을 행사함으로써 상임위의 수정된 3인 공동대표제(백기완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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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에서 연사로 참석한 김낙중 대표는 수만 군중 앞에서 "노태우가 물러가라고 물
회에서 연사로 참석한 김낙중 대표는 수만 군중 앞에서 "노태우가 물러가라고 물


이우재-김낙중-김상기)를 비롯하여 창당대회에서의 무표결 등의 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누가 있었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누가 감히 민중당에서


이런 잡한 권모술수가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