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두 판 사이의 차이
→본문
편집 요약 없음 |
(→본문) |
||
4번째 줄: | 4번째 줄: | ||
== 본문 == | == 본문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Foundation | |||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A) | |||
우리는 이제 조직통합작업을 거의 완료했다. 이제 하나의 실천력있는 회사로서 앞 | |||
으로의 진로문제를 논의결정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하 | |||
나의 종파(SECT)가 한 계급을 대변하는 당이 되는 문제이며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결 | |||
코 쉽지않은 문제이다. | |||
우리의 당면 목표는 맑스주의, 즉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 | |||
당의 건설이라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이미 몇년 전부터 이 목표를 내 | |||
걸고 활동해왔다.그리고 우리는 회사를 창립함으로써 이 목표를 향해 한걸음 더 나 | |||
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맑스주의적 노동자정당의 건설은 앞으로도 지나 | |||
간 활동기간(4-5년)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대사업이다.그리고 이 대사업 | |||
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할 것이다.그러 | |||
므로 우리는 장기적 관점에서,최소한 앞으로 4-5년을 내다보면서 노동자정당의 건설 | |||
전략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창립대회의 결의는 이미 하나의 건설전략에 기초하 | |||
고 있다. | |||
나는 열흘쯤 전에 기획부의 두 사원동지로부터 이 건설전략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 | |||
하지 않은가라는 문제제기를 받았다. 나는 이 문제제기에 대해 "창립대회의 결의는 | |||
이미 하나의 건설전략을 전제로 하고 있다.그리고 창립대회의 결의로서 우리는 이미 | |||
하나의 길로 들어섰으며 이제 그 방향은 수정될 수 없다. 고로 이 문제제기는 때늦은 | |||
것이며 지금 논의하기에는 시기 적절치 못하다. "라는 요지의 답변을 하였다.그러나 | |||
나는 그 날 이후 며칠 동안을 이 문제로 고심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가 간단히 처리 | |||
되어서는 안되는 심각한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그래서 나는 문제를 제기한 동지들 | |||
에게 회사내 선동의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도록 격 | |||
려하였다. 동시에 나는 회사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외부의 무책임한 사람들에 | |||
의해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벌어져 문제의 핵심이 왜곡되거나 회사가 조용히 심사 | |||
숙고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하였다.그 | |||
후 나의 생각은 더욱 문제제기를 한 동지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나의 사내 위 | |||
치는 이 문제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고심을 | |||
하였다.그러나 결국 두분의 문제제기 동지들과 별도로 먼저 이사회에 나의 생각을, | |||
부분적으로는 확신이 안섰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기존노선에 대한 비판 쪽으 | |||
로 꾸부려서 밝히고 논의에 부칠지 여부와 적절한 논의절차에 대한 심의, 결정을 요 | |||
청하기로 결심하였다.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꾸부린 것은 문제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 | |||
해서 였다. | |||
- 2- | |||
413458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1. 나는 이 시점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으며, 창 | |||
립대회 이후 회사의 노선으로 되어 있는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 | |||
다고 생각한다. | |||
(1)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대중의 지지를 | |||
획득하는 문제다. | |||
과학적 사회주의를 그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는 세 개의 난 | |||
관이 있다. 달리 말해서 그 과정에는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문제가 있다. | |||
첫째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지하조직들을 만들어 활동해온 인텔리겐챠 사회주의자 | |||
들을 하나의 큰 조직으로 모으는 문제이다. 항상 경찰의 추적을 피하며 활동해야 하 | |||
는 조건은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뭉쳐나가는 것을 기본적으로 막아왔으며, 그렇지 않 | |||
아도 많은 약점을 가진 유아기의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분산시켜왔다. 그래서 가능한 | |||
한 많은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결집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 |||
없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회사의 창립과 동시에 해결의 큰 실마리를 풀었거나 | |||
반은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문제는 우리에게 크게 어렵지 않은 문제가 | |||
되었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문제는 어차피 당장 완전하게 해결할 수는 | |||
없다는 사실이다. 즉 현시점에서 이 문제의 해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는 것 | |||
이다.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우리가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하여 강력한 권위와 인력 | |||
을 만들어내어야만이 현재의 객관적 한계를 넘어 이 문제의 거의 완전한 해결이 가 | |||
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추진 중인 몇 그룹의 합류를 늦어도 연말 안에 | |||
마무리지은 후에는 당분간 이 문제를 중심적인 과제로 생각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 | |||
다. | |||
둘째는 그간의 계급투쟁이 배출한 선진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을 조직의 중 | |||
심적 주체로 세우며 나아가 조직의 기풍과 체질을 프롤레타리아화하는 문제이다. 이 | |||
문제를 우리는 지금까지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 |||
표현으로도 말해왔는데 말하자면 주로 선전활동으로 해결할 문제이다. 이 문제에서 | |||
우리는 부족하나마 다소간의 경험도 가지고 있으며 활용할 기초도 가지고 있다. 그래 | |||
서 우리는 지금 이 문제의 해결을 중심적 과제로 설정하여 활동하고 있으며,이 방면 | |||
에서 착실한 성과를 얻고 있다.이 문제 역시 현재의 활동역량이나 방식으로서는 일 | |||
정한 한계가 있겠으나 그 한계내에서는 꾸준히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얻을 것이다. | |||
세째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문제이다. 노동자대중이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로 | |||
인정할 때만이 명실상부한 노동자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말하자면 주 | |||
로 선동활동을 통해 해결할 문제인데, 세 문제 가운데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며 | |||
특히 우리에게는 어려운 문제로 되어있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가 좁은 폭으로 제한 | |||
되어 있는 우리의 활동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 |||
인한 세계적인 사회주의운동의 위기라는 시대적 환경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난관을 | |||
돌파하지 않고서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을 건설할 수 | |||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교과서도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 | |||
로 우리가 지금부터 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 문제이며 가장 창조적인 자세로 연 | |||
구해야 할 문제도 이 문제이다. | |||
창립대회는 회사 존재의 공개와 그 이름을 내건 활동을 유보하되 스스로 그 시기 | |||
- 3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를 정하지 않고 이사회에 시기결정의 권한을 위임하였다. 창립대회의 결의는 당분 | |||
간 첫째, 둘째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여 일정한 성과를 얻은 후에 그 성과 위에 세째 |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계획, 바로 그것이다.또 | |||
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결정의 권한을 이사회에 위임하였으나, 광범한 선동 | |||
의 단계로 넘어가 공개적 활동을 개시하기에는 자금, 조직역량 등 모든 조건에서 회 | |||
사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우리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정세가 급박하게 전 | |||
개된다든지 하지 않는 한) 신중한 발걸음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창립대회의 | |||
암묵적 합의였다.그런데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창립대회 당시 우리가 생각했 | |||
던 것보다도 몇 배나 더 힘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솔직히 말해서 사노맹처럼 비정 | |||
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허황된 말로 선동하고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의 관심을 | |||
끄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 시대에 지하 조직이 스스로의 존재나 주의주장을 대중에 | |||
게 광범하게 알리기도 힘들다. 이 점은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우리의 | |||
주관적인 결의로 뛰어넘을 수 없는 객관적 한계를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 |||
(2)창립대회의 결의에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이 충분히 고 | |||
려되지 않았다. | |||
노동자정당의 건설 문제에 대해서 김대중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만든다 | |||
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이치에 맞습니다.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는 전혀 맞지 않 | |||
는 이야기입니다.왜냐하면 노동자정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정당법의) 법정 지 | |||
구당 문제나 국가보안법같은 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또 무엇보 | |||
다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노동자정당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 |||
일이 아닙니다. ··· · 영국의 노동자들은 처음에 페비안협회를 창립하여 진보적인 정 | |||
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한편, 자유당을 지지하면서 자신 | |||
들의 권익을 확보해나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노동당을 창당하 | |||
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바로 노동당을 창당할 줄 몰라서 자유당을 지지했을까요?아 | |||
닙니다. ····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 |||
봅니다.적어도 자기 정당을 가지려면 정치적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것 | |||
같습니다. "(주간전국노동자신문 1991년 9월 27일자)라고 말하고 있다.이는 김대중의 | |||
지론인데 선노론자들의 시기상조론이나 장명국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견해와도 기본 | |||
적으로 일치한다. (이하에서 이들 모두를 시기상조론이라 칭하겠다) | |||
그러면 이런 류의 시기상조론적인 생각들에는 전혀 현실을 반영하는바가 없는가? | |||
아니다. 현실의 한 측면을 방영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기상조론 | |||
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도 충분히 깊이 인식해야 한다. | |||
시기상조론은 노동조합이 충분히 발전한 후에 그 힘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해야 | |||
한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그들 사고의 일면성을 잘 알고 있다.우리는 '노동조합 먼저 | |||
노동자정당 나중'이라는 생각에는 명백히 반대한다.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 | |||
고 87년이래 계급투쟁이 낳은 유명한 대중적 지도자들을 노동자정당의 한 주체로 참 | |||
여시키는 방법,그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울산에서 | |||
는 권용목씨가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정당이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 |||
사실이다. 그런 만큼 거꾸로 권용목씨가 참여할 때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노동자정당으 | |||
로 인정받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단병호위원장이 지지한다면 노동 | |||
자정당이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쉬울 것이다.그래서 회사는 각지역의 대표 | |||
- 4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Foundation | |||
적인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우리는 이 분들에게 우리 | |||
의 관점과 사상을 선전하고 우리의 노동자정당 창당의 계획을 설명하고 참여의 당위 | |||
를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의 성과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그 | |||
러나 여기서 우리가 빠트려서는 안될 문제가 있다.그 분들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지 | |||
지하게 만드는데 까지는 비교적 쉬운 일이나(우리의 주장은 바로 그 분들이 경험으 | |||
로 절감했던 것들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직접 노동자정당 건설에 한 주체 | |||
로 참여하는 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그 분들에게는 이 | |||
미 대중운동의 지도자로서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있다.그런만큼 전노협 등 노동조합 | |||
운동 자체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일정한 안정성을 획득해야만 그 분들 | |||
도 노동자정당 건설에 자유스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점들에 대한 충분한 | |||
고려, 즉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 창 | |||
당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 |||
(3)회사가 어떤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이 좌우될 수 | |||
있다. | |||
우리가 지금 어떤 첫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비단 회사의 운명이 결정될 뿐만 | |||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참 | |||
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 |||
회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무겁다. 지금 현존사회주의의 위기 | |||
로 일대 혼란에 처한 '운동권'은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주시하고 | |||
있다.모두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의 책임이 무겁다. 또한 | |||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의 앞길은 상당 기간 동안 험난하기 비할 데 없을 것이다. | |||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견지할 확신의 | |||
노선을 선택해야 하며 충분한 논의로 야무진 결의를 모아야 한다. 이런 점들에 생각 | |||
이 미칠 때 아무래도 우리의 창립대회를 전후한 논의과정은 충분히 철저하게 진행되 | |||
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모든 논점들이 뚜렷이 부각되어 모든 사원이 | |||
대회결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여지가 있는 것 | |||
이다. 더욱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대의원의 3분의1이 창당준비위원회라는 명칭에 반 | |||
대하고 그 전단계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건설추진위원회 또는 건설준비위원회라 | |||
는 명칭을 당분간 사용하자는 안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이 소수 의견에게는 현시점 | |||
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사정들 또 | |||
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노선 자체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 | |||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 |||
- 5-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4)창립대회 이후에 커다란 정세 변화가 있었다. | |||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정세의 변화를 추적하고 주체적 역량을 파악하여 공개 | |||
적 활동개시 시기를 결정할 판단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에 있었던 | |||
정세변화는 남북한의 유엔가입, 소련에서의 쿠데타와 소련공산당의 해체, 부르주아 | |||
야당의 통합 등의 사건으로 대표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은 역시 소련공산 | |||
당의 해체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우리의 활동조건을 크게 바 | |||
꾸어놓았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모든 나 | |||
라의 사회주의운동이 이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 |||
나라에서 공산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강령과 전술을 바꾸고 있다.사실 세계사회주의 | |||
운동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새출발하는 시 | |||
점이 세계사회주의운동이 완전히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과 일 | |||
치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새출발 역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사회주의운동의 | |||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노맹이 " 사회주의 사상 | |||
새출발의 일부가 ···· | |||
으로부터 활동방식,조직체계, 당건설 전망 등에 이르는 총체적 혁신을 통해 사회주의 | |||
진영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태어나는 과제는 사노맹만 | |||
의 것이 아니고,전체 사회주의진영이 공동으로 떠맡아야할 중대한 과제.... "(말지 | |||
10월호 111쪽)라고 읖조리고 있는 것을 보라. 이 말이 우리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 | |||
서는 옳지 못하나, 말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 |||
또한 그간에 회사의 존재 및 활동계획이 경찰에 알려지는 예기치못한 사고도 있었 | |||
다. 이 사고에 의해서 회사창립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경찰의 공격이 앞당겨지고 광 | |||
범해지게 되었다. 요컨대 회사는 창립대회 당시의 예상보다도 더 좋지못한 조건에서 | |||
향후 진로를 모색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 |||
상황은 우리가 창립대회에서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합의하고 결정한 사항까지 | |||
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않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논의하 | |||
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 |||
(5)창립대회의 결의는 전통적 사고에 입각해 있다. | |||
우리 운동의 역사는 짧지만 하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무시하면서 운 | |||
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이 전통에 나름대로 충실했던 흐름들이 합류하 | |||
여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 역시 그 전통에 입지하고 있다. 이 전통은 외부의 | |||
비판자들에 의해 '레닌주의'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파 | |||
쇼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하고 투쟁해온 우리의 땀과 눈물이 섞여있는 우리의 | |||
전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규정이 전혀 무근거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또한 엄 | |||
격히 말하면 틀렸다. 우리가 20세기 초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의 '낡은' 이론에서 | |||
뭔가 영감을 얻으려 했던 것은 러시아혁명 이래 러시아혁명이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 | |||
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어온 전통을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처하 | |||
고 있던 조건이 그 시대 러시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공산주의자들이 중 | |||
국 혁명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 |||
자신들이 처하고 있는 조건이 혁명 당시 중국과 비슷하기 느꼈기 때문인 것과 마찬 | |||
6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 머리로 생각하려 했고 창조적으 | |||
로 우리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토양에 발을 딛고,70년대 이 | |||
래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풍토안에서 레닌적 개념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 점이 | |||
우리를 씨에이-사노맹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피상적 관찰자 | |||
들은 흔히 그 차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 | |||
그러므로 우리가 레닌주의적인 실천을 해왔다고 하는 규정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 | |||
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든지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 | |||
통은 어디까지나 70년대 이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전통이며 또한 87년 이래 우리 | |||
가,그리고 노동운동의 많은 운동가들과 그 집단들이 만들어온 우리 나름의 전통이 | |||
다. | |||
우리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를 결성한다고 결의한 것은 철저히 우리의 | |||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의를 다수가 | |||
무리없이 수용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 | |||
다. 우리는 가장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체, 거듭된 좌절에도 아무런 새로운 고민도 | |||
하지 않은 체 짐짓 변함없이 우리의 과거 노선을 고수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 | |||
으나 전통 역시 하나의 힘이라는 고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다시 | |||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전통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 |||
(6)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는 1987년 이전 시대의 유물도 섞여있다. 그러므로 우 | |||
리는 메너리즘이나 굳은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
197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정치상황은 전형적인 '개발독재' 였으며 '종속파시즘 | |||
체제'였다. 이 폭압통치 기간을 통해서 한국 자본주의는 양적 성장과 질적 전환을 | |||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운동이 싹트고 자라나온 밭은 이 시대의 이른바 '민 | |||
족민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이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형성된 관습과 | |||
관념을 아직도 많이 물려받고 있다. 예를 들면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는 정치적 자 | |||
유의 한계상황에서 잡혀들어가는 것, 구속되는 것이 운동이었고 투쟁이었다. 이러한 | |||
시대의 운동은 선전가도 선동가도 조직가도 키우지 못했다. 요컨대 유능한 정치가를 | |||
키우지 못한 것이다. 다만 지사를 키웠을 뿐이다. 지사는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고 | |||
독불장군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질이 다소간 남아있다. 또다른 예를 든다 | |||
면 민중당을 무시하고 백안시하는 '운동권'의 태도에는 어떤 이론적 근거보다는 | |||
1972-87년이라는 시대에 형성된 관념과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 |||
우리는 최근 두 개의 큰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그 하나는 국내적인 변화로 1987 | |||
년의 대변화였다. 그리고 그 둘은 1989년부터 개시되어 1991년 여름에 그 극에 달한 | |||
세계사적 대변혁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 두 | |||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 |||
예를 들면 89년 10월에 구속된 동지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선언 | |||
하는 문제에서 주저했었는데 그 때 그 동지들은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있 | |||
다. 사회주의자임을 인정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형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
는 것을 그 동지들은 87년 이전 시기에 형성된 관습-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고 용공 | |||
조작이라고 반박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관습-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 |||
다. 물론 설사 형량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지만,어 | |||
쨌든 그 관습은 연이어 구속된 여러 동지들에 의해 이제 완전히 타파되고 말았다. | |||
- 7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Foundation | |||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관습의 강한 힘이며 그것을 깨는데는 용기가 필요하 | |||
다는 사실이다. | |||
이제 사회주의자를 '빨갱이'라고 하면서 뿔달린 사람으로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 | |||
다. 물론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자가 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동 | |||
시에 지독한 레드콤플렉스의 시대 역시 갔다.그러므로 이제는 사회주의를 선전했다 | |||
고 해서,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잡아가두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 |||
이다. 같은 법률도 시대와 사회적 통념이 바뀌면 해석이 달리 되고 적용이 달리 될 | |||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금도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많은가? 아마 북한과 관련되어 | |||
서는 과거와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지 모른다.그러나 '사회주의'와 관련해 | |||
서는 분명히 달라졌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 |||
사실 요즈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조직의 활동 내용은 그것을 | |||
공개적으로 했다면 구속하지 못했을 그런 내용이다. 비밀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 활동 | |||
내용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므로 경찰이나 검찰이 이적행위를 한 이적단체라고 | |||
규정하면 그런가 보다하고 큰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것이다. 지하조직=이적단 | |||
체 내지는 반국가단체,이것은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요 사회적 통념이다.이 | |||
것은 지하조직활동=혁명적 활동,비밀활동=혁명적 활동, 비합법투쟁=혁명적 투쟁, 이 | |||
런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운동권의 굳은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다.이 낡은 관습과 | |||
사회적 통념은 새로운 실천에 의해 타파되어야한다. 만약 민중당이 사회주의를 지향 | |||
함을 강령에 명시한다든지 당명에 명시한다고해서 정부가 민중당을 불법화시킬 수 | |||
있겠는가?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거꾸로 뒤집어보면, 요즈 | |||
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의 조직활동 내용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 |||
했다면 굳이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전 조직원을 구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그 | |||
럴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이적단체사건들은 관성에 의한 행동 | |||
이며 그 활동내용을 문제삼는다기 보다 안보이는 곳에서 했다는 것을 문제삼는 듯하 | |||
게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굳이 지하에서 할 필요가 없는 활동을 지 | |||
하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이런 기괴한 현상들은 이 과도기의 시대적 | |||
특징이며, 행위자들 스스로도 그 의미를 정확히 몰라 헛갈리면서 일관성 없게 행동 | |||
하는 것이다. | |||
이상의 논의들은 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도 지금은 필요없게 된 구시대의 유물 | |||
이 혹시 있지나 않는가 살펴보자는 뜻에서 다소간 현실을 단순화 내지는 과장한 측 | |||
면도 있다.그러나 이런 새로운 관점으로 한번쯤은 창립대회의 결의에도 구시대의 유 | |||
물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
8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2. 나는 00지역 신입사원 동지의 "회사는 언제까지 지하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 | |||
지하활동만 계속해서는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 |||
답하면서, 00지역의 간부동지로부터 노동운동의 대중적 지도자들을 회사로 인입하기 | |||
위한 계획과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00지역 간부 사원들 | |||
과 회사의 발전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보았다.그것은 다음과 | |||
같다. | |||
"회사의 공공연한 활동의 개시는 총선 시기에 한다. 총선 시기에 회사를 공개하고 | |||
대선에서 민중당(총선에서 당이 해체된다면 아마 민중정당재건 추진위원회가 될 것 | |||
이다)과 공동후보(백기완?)를 추대하여 100만표 이상을 획득하여 정치적 입지를 만 | |||
든다.이 전 기간 동안 꾸준히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유명 | |||
한 지도자들을 설득, 결집하여 대선 이후에 창준위, 민중당 좌파,노동운동의 지도자들 | |||
이 3요소를 결합하여 '한국노동당'을 창당한다. '' 여기서 당명의 부분은 노동운동의 | |||
지도자들을 광범하게 참여시키기 위해서라면 '사회주의'를 당명에 넣지 않는 선까지 | |||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 |||
이 상상화가 하나의 구상이 되기에는 헛점이 많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 | |||
다보면 그것이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견지해왔던 · 노동자정당의 건설경로'에 대한 | |||
생각의 구체화, 현실화이면서 동시에 상당히 변화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이 | |||
러한 구체화 및 현실화와 변화는 기획부의 두 동지들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 |||
에 대한 문제제기에 접하면서 그와 화합하여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전략구상으로까 | |||
지 나아가게 되었다. | |||
창립대회의 결의는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발전시키고 견지해왔던 전략에 의거하 | |||
고 있다.그 전략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운동의 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면서 사회 | |||
민주주의적 내지는 혁명적 민주주의적 좌익 세력들과 연대한다. "라는 말로 요약할 | |||
수 있다.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기 위해 우리는 지하조직을 해소하지 않고 독자적 | |||
창당을 준비해왔으며,다양한 좌익 세력들과의 연대를 위해 우리는 민중당에 참여해 | |||
왔다.여기서 재검토가 요구되는 부분은 ' 독자성의 고수'라는 부분이다.과연 이 시대 | |||
에 우리가 처한 주객관적 조건속에서 맑스주의자가 독자적으로 대중적 기초를 가진 | |||
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아니 최초로 실 | |||
제적인 문제로서 직면하게 되었다. 영원히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는 그 누구도 생 | |||
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당분간, 앞으로 수년간은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동 | |||
지들이 있다. 만약 그 동지들의 생각이 올바르다면 수년 동안 사민주의자를 비롯한 | |||
다양한 좌익 세력들과 하나의 당안에서 동거하면서 공생을 도모하는 방법은 어떤가? | |||
그런데 이것은 노동자정당 건설에 대한 새로운 전략 개념을 요구한다.그 새로운 전 | |||
략개념은 "사회민주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좌익세력들과 연합하여 하나의 대중정당 | |||
을 만든 후에 조직적 독립을 도모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 |||
맑스주의자가 자신의 힘이 미약하거나 조건이 불리할 때 하나의 섹트로 남는 것이 | |||
아니라 다른 좌익 세력 또는 다른 사상을 가진 노동운동세력과 어울려 하나의 당을 | |||
만들어 대중적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전략을 쓴 것은 제1인터내셔널 이래 흔하게 있 | |||
었던 일이다. 특히 19세기의 유럽에서는 이런 전략을 통해서 맑스주의는 노동운동의 | |||
지배적 조류로 서서히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조류들과 공존, 공생 | |||
하는 방법을 통해 우리의 세력이 미약하고 상황이 불리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 |||
전략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 |||
항상 뭔가 좀 해보려면 우리를 가로 막아왔던 보위문제는 다시금 우리의 앞길에 | |||
9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커다란 장애로 나타나고 있다. 항상 보위문제는 우리에게 넘어야할 또하나의 장애 | |||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번번이 이 장애에 걸려서 · 선동의 단 | |||
였다. | |||
계'로 넘어가지 못했으며,그래서 조직 자체의 활동은 매우 빈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 |||
못하고 실제활동은 다른 합법 또는 '반합법'조직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방식을 취할 | |||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직의 지도중심은 지하에 있어 햇볕도 못보고 신선한 공기 | |||
도 숨쉬지 못하니 정보는 늦고 감각은 뒤쳐져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해내기가 어려웠 | |||
다. 이것은 우리의 활동방식이 가진 최대의 모순이었다. | |||
"지하조직운동으로 세력을 키운 후에 합법성쟁취로 나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 |||
계획이며,이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전술방침은 말하자면 정면돌파 즉 '우리 입장 | |||
을 밝히고 선전하며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탄압에 장기적으로 저항하여 이를 극 | |||
복해내는 것'이었다. 전술을 도덕이 아니라 과학으로서 대하는 기본태도로 이 기본계 | |||
획과 전술방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정면돌파가 아닌 우회전술을 고려해볼 수 | |||
도 있다고 본다.보위문제를 활동방식의 변화로서 보다 근원적으로 해결- 구체적 행 | |||
동 하나 하나에 대해 국가보안법이든 뭐든 적용하는 조건에서 활동하게 됨으로써 지 | |||
금처럼 조직전체의 보위문제가 항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 | |||
한다-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더욱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의 | |||
변화 가능성에 큰 관심을 갖게 하였다. | |||
새로운 전략개념을 현재 조건에 적용해보면 "민중당과 (총선전에) 합당을 하여 | |||
합법성을 획득하고 민중당을 장기적으로 노동자정당으로 전화시켜나간다"는 계획이 | |||
도출된다.이러한 계획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는 예를 들면 민중당이 지금 내어놓고 | |||
있는 '새로운 민중정당의 건설' 제안에 호응하는 형식을 취해 (1)민중당 현지도부의 | |||
전원 사퇴와 전당대회의 개최 (2)당명을 노동당으로 개칭 및 강령과 규약의 개정 | |||
(3)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그 핵심은 당내 세력분포를 반영하는 지도부,의결기관 구 | |||
성이다) 등을 조건으로 회사의 중심적 역량이 민중당에 입당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 | |||
다.이런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합당의 형식이 되지 않는 것이다.이것이 싫으면 정 | |||
정당당히 회사를 공개하고 민중당과 합당교섭을 벌여 정부의 인내심과 민중당 지도 | |||
부의 용기를 시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어떻든 이렇게 회사의 중심역량이 합법공 | |||
간으로 진출한 후, 회사의 지도중심을 합법정당 내로 이동시켜 나가면서도 수배자 | |||
등 일부는 당외에서 말하자면 비밀당원으로(각지역의 조직가, 선전가로) 활동할 필요 | |||
가 있을 것이다. | |||
-10-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3. 이러한 노동자정당 건설의 새로운 전략개념과 그에 입각한 새로운 행동계획에 | |||
대해 여러가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논의의 심화를 위해 예상되는 의문에 | |||
대해서는 미리 답변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 |||
(1)전위조직노선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 |||
지금까지 '전위조직노선'이라는 말로서 표현되어온 것은 소수정예주의이며, 혁명가 | |||
집단으로서의 당이다. 당이 엄혹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소수정예주 | |||
의로 가게 된다. 그러나 당이 대중과의 결합도를 높이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 | |||
하려면 '직업적 혁명가'에 한정되어서는 안되고 일정한 한계내에서는 가능한 한 보 | |||
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당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 |||
러시아사민당(볼세비키) 자신에 대해서도 1905년 혁명기에는 이른바 '전위조직노선' | |||
이라는 기준을 들이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이사회가 지금까지 강조해온 | |||
노동자에게 보다 문턱이 낮고 친근한 조직은 이 '전위조직노선'으로부-터의 탈피로 | |||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위조직노선'과 '대중조직노선'을 대립시켜 그 사이 | |||
에 뛰어넘지 못할 심연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
만약 지금 합법노동당으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입당 | |||
하려고 하겠는가? 아마도 선진노동자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이 범위는 | |||
지금 우리 회사 기준으로 본다면 관련 노동자 (견습사원 후보) 에서 약간 벗어나는 | |||
정도의 범위이다.그리고 우리 사원들은 간부당원,또는 고참 당원이 될 것이다.그런 | |||
데 우리 회사는 지금 장교들만 있는 군대와 같은데 어차피 우리 회사 역시 앞으로 | |||
병사를 모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의 발전하고자 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 |||
않은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앞의 질문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지가 | |||
말하는 바와 같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전위조직노선'은 합법공간으로 진출하는 문제 | |||
와 관계없이 회사가 진정한 노동자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버려야하는 | |||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한다. | |||
(2)합법공간으로 진출하면 경찰의 감시에 완전히 우리 조직을 노출하는 것은 아닌 | |||
가? | |||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국가에 의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든지(예를 들면 기업체를 | |||
생각해보라), 아니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든지 관계없이 자신의 비밀-비밀조 | |||
직은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정당들도 비밀조직을 가지고 있다.50년대 진보당의 경우 | |||
에도 수천명의 비밀당원(주로 청년 학생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우리가 합 | |||
법정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조건하에서는 비밀당원,비밀조직을 가지지 않을 | |||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법공간으로의 진출을 '명단을 경찰서에 갖다바치는 것' | |||
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노출되겠으나(특히 지도적인 간부 | |||
들의 경우) 우리 조직이 모두 노출되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아니 하부 조직은 기본 | |||
적으로 '비밀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는 | |||
그런 방면에서는 다년간 훈련된 사람들이 아닌가? | |||
(3)사민주의와 한 당에서 동거하게 되면 사민주의와 분명한 일선을 긋지 못하게 | |||
11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될 뿐만 아니라 장차 당의 주도권을 사민주의자들에게 빼앗긴다든지 사민주의가 우 | |||
리 대오를 오염시켜 우리의 사상적 순수성을 빼앗기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사민주의에 | |||
종속되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또 강령에서는 사민주의적 내용으로 타협이 되고 | |||
모든 당 선전의 수위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로 제한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존재는 묻 | |||
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 |||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맑스주의자든 사민주의자든 서로 | |||
손을 잡고 연대하여 공생을 도모해야할 상황이다.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민중당이 | |||
출마한 지역에서는 상당한 득표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1%의 득표 | |||
도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이런 상황조건에서 우리의 사민주의에 대한 태도가 | |||
서로 제1당, 제2당을 다투는 위치에 있는 공산당의 사민당에 대한 태도와 같을 수 없 | |||
다. 더욱이 사회민주주의를 사회파시즘으로 규정하고 부르주아정당들보다 더 적대시 | |||
하다가 나중에 파시즘이 대두하자 태도를 바꾸어 뒤늦게 인민전선정책으로 전환했던 | |||
20년대의 제3인터내셔널의 잘못된 정책을 따를 필요야 있겠는가? 이것은 사민주의에 | |||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에 관한 문제인바 우리는 당분간 공생을 전제로한 선의의 | |||
경쟁을 위주로 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추상적인 이론논쟁으로 보 | |||
다는 실천에서 그리고 구체적 정책에서 제압하고 그들의 한계를 폭로하는 것을 위주 | |||
로 해야 할 것이다. 맑스주의자의 우위는 이론에서보다도 실천에서 더 잘 드러나는 | |||
법이며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뚜렷이 구별되는 것 또한 실천의 영역이다. 또한 민중 | |||
운동 내부사정을 놓고 보더라도 주사파에 대항하는데에는 그들이 동맹군이 될 수 있 | |||
게 되어 있다. | |||
어차피 우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사민주의와의 공개적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살 | |||
아남지 못한다.이것은 조직적 독자성을 유지하든 안하든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 | |||
는 사민주의와의 접촉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접촉하여 그에 대한 저 | |||
항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그리고 사민주의는 아직 현실적인 정치세력 | |||
이 아니다.그것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학파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 | |||
려 그것이 학파에서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전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 정책으로 | |||
임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사민주의로 진화할 수 있는, 라쌀레 | |||
주의와 같은 토착적이며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 없다. 사민주의가 자 | |||
랄 수 있는 토양은 사실 그렇게 기름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여러 | |||
세력들이 터를 잡고 있는 노동운동에서 사민주의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
그러므로 아직은 추상적 가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민주의가 우리 대오를 오 | |||
염시킬 가능성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소심함의 발로가 아닌가? | |||
물론 통합당의 강령은 민중운동의 모든 유파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최소강령 만 | |||
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낙착되기 쉬울 것이다.그러나 선전의 내용이 그에 국한될 필 | |||
요는 없다. 통합당은 아마도 이런 방면에서는 보다 덜 엄격한 규율을 가지지 않을 수 | |||
없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의 선전 이론 기관을 우리가 장악하게 될 것이라 | |||
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본사회당에서도 당의 사무국,선전이론 기관은 좌 | |||
파가 장악하고 있고 의원단은 우파가 장악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일정한 한계내에서 | |||
는 어느 정당에든 적용될 수 있는 자연법칙이 아닐까? | |||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계보를 형성할 것이며,우리 회사는 그대로 그 계보의 | |||
지도 핵심 대오로 전화되어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민중당의 최 | |||
대 주주이다. 물론 우리의 지분은 지도부 구성에서 정확히 반영되고 있지 않고 지분 | |||
-- 12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Korea Democracy Foundation | |||
만큼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그러므로 당내 민주주의만 제대로 실천된다 | |||
면 우리는 당의 지도권을 잡을 수 있고 또 잡아야 한다. 우리가 민중당을 장대로 삼 | |||
아 비약을 하고자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 |||
것도 우리가 이런 개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 |||
다. | |||
1991. 9. 29. | |||
-13-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3458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345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