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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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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정당의 건설 문제에 대해서 김대중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이치에 맞습니다.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정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정당법의) 법정 지구당 문제나 국가보안법같은 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또 무엇보다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자정당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처음에 페비안협회를 창립하여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한편, 자유당을 지지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확보해나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노동당을 창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바로 노동당을 창당할 줄 몰라서 자유당을 지지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봅니다. 적어도 자기 정당을 가지려면 정치적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것 같습니다. "(주간전국노동자신문 1991년 9월 27일자)라고 말하고 있다.이는 김대중의 지론인데 선노론자들의 시기상조론이나 장명국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견해와도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이하에서 이들 모두를 시기상조론이라 칭하겠다)
   노동자정당의 건설 문제에 대해서 김대중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이치에 맞습니다.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정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정당법의) 법정 지구당 문제나 국가보안법같은 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또 무엇보다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자정당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처음에 페비안협회를 창립하여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한편, 자유당을 지지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확보해나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노동당을 창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바로 노동당을 창당할 줄 몰라서 자유당을 지지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봅니다. 적어도 자기 정당을 가지려면 정치적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것 같습니다. "(주간전국노동자신문 1991년 9월 27일자)라고 말하고 있다.이는 김대중의 지론인데 선노론자들의 시기상조론이나 장명국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견해와도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이하에서 이들 모두를 시기상조론이라 칭하겠다)
   그러면 이런 류의 시기상조론적인 생각들에는 전혀 현실을 반영하는바가 없는가? 아니다. 현실의 한 측면을 방영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도 충분히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류의 시기상조론적인 생각들에는 전혀 현실을 반영하는바가 없는가? 아니다. 현실의 한 측면을 방영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도 충분히 깊이 인식해야 한다.
   시기상조론은 노동조합이 충분히 발전한 후에 그 힘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그들 사고의 일면성을 잘 알고 있다.우리는 '노동조합 먼저 노동자정당 나중'이라는 생각에는 명백히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87년이래 계급투쟁이 낳은 유명한 대중적 지도자들을 노동자정당의 한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법, 그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울산에서는 권용목씨가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정당이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거꾸로 권용목씨가 참여할 때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단병호위원장이 지지한다면 노동자정당이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쉬울 것이다.그래서 회사는 각지역의 대표
   시기상조론은 노동조합이 충분히 발전한 후에 그 힘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그들 사고의 일면성을 잘 알고 있다.우리는 '노동조합 먼저 노동자정당 나중'이라는 생각에는 명백히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87년이래 계급투쟁이 낳은 유명한 대중적 지도자들을 노동자정당의 한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법, 그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울산에서는 권용목씨가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정당이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거꾸로 권용목씨가 참여할 때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단병호위원장이 지지한다면 노동자정당이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쉬울 것이다.그래서 회사는 각지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우리는 이 분들에게 우리의 관점과 사상을 선전하고 우리의 노동자정당 창당의 계획을 설명하고 참여의 당위를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의 성과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빠트려서는 안될 문제가 있다. 그 분들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데 까지는 비교적 쉬운 일이나(우리의 주장은 바로 그 분들이 경험으로 절감했던 것들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직접 노동자정당 건설에 한 주체로 참여하는 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분들에게는 이미 대중운동의 지도자로서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있다.그런만큼 전노협 등 노동조합운동 자체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일정한 안정성을 획득해야만 그 분들도 노동자정당 건설에 자유스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즉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 창당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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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회사가 어떤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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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우리는 이 분들에게 우리
의 관점과 사상을 선전하고 우리의 노동자정당 창당의 계획을 설명하고 참여의 당위
를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의 성과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그
러나 여기서 우리가 빠트려서는 안될 문제가 있다.그 분들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지
지하게 만드는데 까지는 비교적 쉬운 일이나(우리의 주장은 바로 그 분들이 경험으
로 절감했던 것들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직접 노동자정당 건설에 한 주체
로 참여하는 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그 분들에게는 이
미 대중운동의 지도자로서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있다.그런만큼 전노협 등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일정한 안정성을 획득해야만 그 분들
도 노동자정당 건설에 자유스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점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즉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 창
당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3)회사가 어떤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첫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비단 회사의 운명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참
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무겁다. 지금 현존사회주의의 위기
로 일대 혼란에 처한 '운동권'은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다.모두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의 책임이 무겁다. 또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의 앞길은 상당 기간 동안 험난하기 비할 데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견지할 확신의
노선을 선택해야 하며 충분한 논의로 야무진 결의를 모아야 한다. 이런 점들에 생각
이 미칠 때 아무래도 우리의 창립대회를 전후한 논의과정은 충분히 철저하게 진행되
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모든 논점들이 뚜렷이 부각되어 모든 사원이
대회결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여지가 있는 것
이다. 더욱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대의원의 3분의1이 창당준비위원회라는 명칭에 반
대하고 그 전단계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건설추진위원회 또는 건설준비위원회라
는 명칭을 당분간 사용하자는 안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이 소수 의견에게는 현시점
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사정들 또
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노선 자체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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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우리가 지금 어떤 첫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비단 회사의 운명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참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무겁다. 지금 현존사회주의의 위기로 일대 혼란에 처한 '운동권'은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다. 모두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의 책임이 무겁다. 또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의 앞길은 상당 기간 동안 험난하기 비할 데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견지할 확신의 노선을 선택해야 하며 충분한 논의로 야무진 결의를 모아야 한다. 이런 점들에 생각이 미칠 때 아무래도 우리의 창립대회를 전후한 논의과정은 충분히 철저하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모든 논점들이 뚜렷이 부각되어 모든 사원이 대회결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대의원의 3분의1이 창당준비위원회라는 명칭에 반대하고 그 전단계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건설추진위원회 또는 건설준비위원회라는 명칭을 당분간 사용하자는 안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이 소수 의견에게는 현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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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사정들 또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노선 자체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4)창립대회 이후에 커다란 정세 변화가 있었다.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정세의 변화를 추적하고 주체적 역량을 파악하여 공개
적 활동개시 시기를 결정할 판단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에 있었던
정세변화는 남북한의 유엔가입, 소련에서의 쿠데타와 소련공산당의 해체, 부르주아
야당의 통합 등의 사건으로 대표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은 역시 소련공산
당의 해체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우리의 활동조건을 크게 바
꾸어놓았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모든 나
라의 사회주의운동이 이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강령과 전술을 바꾸고 있다.사실 세계사회주의
운동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새출발하는 시
점이 세계사회주의운동이 완전히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과 일
치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새출발 역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사회주의운동의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노맹이 " 사회주의 사상
새출발의 일부가 ····
으로부터 활동방식,조직체계, 당건설 전망 등에 이르는 총체적 혁신을 통해 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태어나는 과제는 사노맹만
의 것이 아니고,전체 사회주의진영이 공동으로 떠맡아야할 중대한 과제.... "(말지
10월호 111쪽)라고 읖조리고 있는 것을 보라. 이 말이 우리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
서는 옳지 못하나, 말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그간에 회사의 존재 및 활동계획이 경찰에 알려지는 예기치못한 사고도 있었
다. 이 사고에 의해서 회사창립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경찰의 공격이 앞당겨지고 광
범해지게 되었다. 요컨대 회사는 창립대회 당시의 예상보다도 더 좋지못한 조건에서
향후 진로를 모색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창립대회에서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합의하고 결정한 사항까지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않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논의하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5)창립대회의 결의는 전통적 사고에 입각해 있다.
우리 운동의 역사는 짧지만 하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무시하면서 운
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이 전통에 나름대로 충실했던 흐름들이 합류하
여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 역시 그 전통에 입지하고 있다. 이 전통은 외부의
비판자들에 의해 '레닌주의'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파
쇼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하고 투쟁해온 우리의 땀과 눈물이 섞여있는 우리의
전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규정이 전혀 무근거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또한 엄
격히 말하면 틀렸다. 우리가 20세기 초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의 '낡은' 이론에서
뭔가 영감을 얻으려 했던 것은 러시아혁명 이래 러시아혁명이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
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어온 전통을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처하
고 있던 조건이 그 시대 러시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공산주의자들이 중
국 혁명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처하고 있는 조건이 혁명 당시 중국과 비슷하기 느꼈기 때문인 것과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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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창립대회 이후에 커다란 정세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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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 머리로 생각하려 했고 창조적으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정세의 변화를 추적하고 주체적 역량을 파악하여 공개적 활동개시 시기를 결정할 판단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에 있었던 정세변화는 남북한의 유엔가입, 소련에서의 쿠데타와 소련공산당의 해체, 부르주아 야당의 통합 등의 사건으로 대표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은 역시 소련공산당의 해체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우리의 활동조건을 크게 바
우리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토양에 발을 딛고,70년대
꾸어놓았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운동이 이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강령과 전술을 바꾸고 있다. 사실 세계사회주의운동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새출발하는 시점이 세계사회주의운동이 완전히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과 일
래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풍토안에서 레닌적 개념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 점이
치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새출발 역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새출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노맹이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활동방식, 조직체계, 당건설 전망 등에 이르는 총체적 혁신을 통해 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태어나는 과제는 사노맹만의 것이 아니고,전체 사회주의진영이 공동으로 떠맡아야할 중대한 과제.... "(말지 10월호 111쪽)라고 읖조리고 있는 것을 보라. 이 말이 우리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옳지 못하나, 말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를 씨에이-사노맹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피상적 관찰자
  또한 그간에 회사의 존재 및 활동계획이 경찰에 알려지는 예기치못한 사고도 있었다. 이 사고에 의해서 회사창립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경찰의 공격이 앞당겨지고 광범해지게 되었다. 요컨대 회사는 창립대회 당시의 예상보다도 더 좋지못한 조건에서 향후 진로를 모색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창립대회에서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합의하고 결정한 사항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않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들은 흔히 그 차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닌주의적인 실천을 해왔다고 하는 규정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5)창립대회의 결의는 전통적 사고에 입각해 있다.
것을 다 말하고 있다든지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통은 어디까지나 70년대 이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전통이며 또한 87년 이래 우리
  우리 운동의 역사는 짧지만 하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무시하면서 운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이 전통에 나름대로 충실했던 흐름들이 합류하여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 역시 그 전통에 입지하고 있다. 이 전통은 외부의 비판자들에 의해 '레닌주의'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파쇼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하고 투쟁해온 우리의 땀과 눈물이 섞여있는 우리의 전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규정이 전혀 무근거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또한 엄격히 말하면 틀렸다. 우리가 20세기 초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의 '낡은' 이론에서 뭔가 영감을 얻으려 했던 것은 러시아혁명 이래 러시아혁명이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어온 전통을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처하고 있던 조건이 그 시대 러시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혁명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처하고 있는 조건이 혁명 당시 중국과 비슷하기 느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 머리로 생각하려 했고 창조적으로 우리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토양에 발을 딛고, 70년대 이래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풍토안에서 레닌적 개념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 점이 우리를 씨에이-사노맹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피상적 관찰자들은 흔히 그 차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닌주의적인 실천을 해왔다고 하는 규정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든지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은 어디까지나 70년대 이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전통이며 또한 87년 이래 우리가, 그리고 노동운동의 많은 운동가들과 그 집단들이 만들어온 우리 나름의 전통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많은 운동가들과 그 집단들이 만들어온 우리 나름의 전통이
  우리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를 결성한다고 결의한 것은 철저히 우리의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의를 다수가 무리없이 수용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가장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체, 거듭된 좌절에도 아무런 새로운 고민도 하지 않은 체 짐짓 변함없이 우리의 과거 노선을 고수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으나 전통 역시 하나의 힘이라는 고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전통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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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를 결성한다고 결의한 것은 철저히 우리의
  (6)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는 1987년 이전 시대의 유물도 섞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너리즘이나 굳은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의를 다수가
 
무리없이 수용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
  197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정치상황은 전형적인 '개발독재' 였으며 '종속파시즘체제'였다. 이 폭압통치 기간을 통해서 한국 자본주의는 양적 성장과 질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운동이 싹트고 자라나온 밭은 이 시대의 이른바 '민족민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이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형성된 관습과 관념을 아직도 많이 물려받고 있다. 예를 들면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는 정치적 자유의 한계상황에서 잡혀들어가는 것, 구속되는 것이 운동이었고 투쟁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운동은 선전가도 선동가도 조직가도 키우지 못했다. 요컨대 유능한 정치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다만 지사를 키웠을 뿐이다. 지사는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고 독불장군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질이 다소간 남아있다. 또다른 예를 든다면 민중당을 무시하고 백안시하는 '운동권'의 태도에는 어떤 이론적 근거보다는
. 우리는 가장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체, 거듭된 좌절에도 아무런 새로운 고민도
하지 않은 체 짐짓 변함없이 우리의 과거 노선을 고수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
으나 전통 역시 하나의 힘이라는 고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전통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6)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는 1987년 이전 시대의 유물도 섞여있다. 그러므로
리는 메너리즘이나 굳은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정치상황은 전형적인 '개발독재' 였으며 '종속파시즘
체제'였다. 이 폭압통치 기간을 통해서 한국 자본주의는 양적 성장과 질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운동이 싹트고 자라나온 밭은 이 시대의 이른바 '
족민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이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형성된 관습과
관념을 아직도 많이 물려받고 있다. 예를 들면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는 정치적
유의 한계상황에서 잡혀들어가는 것, 구속되는 것이 운동이었고 투쟁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운동은 선전가도 선동가도 조직가도 키우지 못했다. 요컨대 유능한 정치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다만 지사를 키웠을 뿐이다. 지사는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고
독불장군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질이 다소간 남아있다. 또다른 예를 든다
민중당을 무시하고 백안시하는 '운동권'의 태도에는 어떤 이론적 근거보다는
1972-87년이라는 시대에 형성된 관념과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1972-87년이라는 시대에 형성된 관념과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두 개의 큰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그 하나는 국내적인 변화로 1987
  우리는 최근 두 개의 큰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그 하나는 국내적인 변화로 1987년의 대변화였다. 그리고 그 둘은 1989년부터 개시되어 1991년 여름에 그 극에 달한 세계사적 대변혁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 두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년의 대변화였다. 그리고 그 둘은 1989년부터 개시되어 1991년 여름에 그 극에 달한
  예를 들면 89년 10월에 구속된 동지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하는 문제에서 주저했었는데 그 때 그 동지들은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임을 인정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형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동지들은 87년 이전 시기에 형성된 관습-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고 용공조작이라고 반박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관습-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세계사적 대변혁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 두
다. 물론 설사 형량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쨌든 그 관습은 연이어 구속된 여러 동지들에 의해 이제 완전히 타파되고 말았다.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89년 10월에 구속된 동지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선언
하는 문제에서 주저했었는데 그 때 그 동지들은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 사회주의자임을 인정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형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것을 그 동지들은 87년 이전 시기에 형성된 관습-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고 용공
조작이라고 반박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관습-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다. 물론 설사 형량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지만,
쨌든 그 관습은 연이어 구속된 여러 동지들에 의해 이제 완전히 타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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