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당은 개혁되어야 한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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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오]] 등 [[민중당]] 내의 소장파들이 1991년에 발행한 문건. 이들 소장파의 당내 투쟁은 제명으로 막을 내린다. | |||
== 주의 사항 == | |||
오타나 비문 등도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옮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오타가 생겼을 수 있다. | |||
== 본문 == | == 본문 == | ||
<poem style="border: 2px solid #d6d2c5; background-color: #f9f4e6; padding: 1em;"> | <poem style="border: 2px solid #d6d2c5; background-color: #f9f4e6; padding: 1em;"> | ||
민중당은 개혁되어야 한다. | <div align="middle"><font size="6">민중당은 개혁되어야 한다.</font></div> | ||
[[민중당]]은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권력 장악을 목표로 활동하는 정치 집단인데 어찌하여 반(反) 민중적인 이 6공화국 정권이 그 민중당을 가벼이 놓아 두는 것일가? 87년에 통일민주당이라는 철저히 체제내적인 정당의 창당 작업조차 물리적으로 방해했던 이 군부정권이 민중당의 창당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심지어 창당을 두호하는 듯한 인상까지 풍기면서 방관한 것일까? 독점 부르주아지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 헌법과 부르주아 지배 체제를 반대하는 모든 정치조직의 구성원을 검거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을 동원하여 언제라도 “합법적인” 모든 요건을 갖춘 정당조차 분쇄할 수 있는 이 “신식민지 파시즘” 체제가 왜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정당이 제 맘대로 활동하게 내버려 두는 것일까? | |||
첫째는, 그 당이 투쟁으로 성장해 온 민중의 힘의 확대의 “결과물"일 뿐, 앞으로의 민중 투쟁을 선도할 "원동력"이 되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독점 부르주아지가 전반적인 힘의 관계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에 놓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민중 투쟁 진영을 “싹쓸이”하지 못하는 이상, 운동 진영의 극히 제한된 역량에 불과한 "덜 전투적인 하나의 운동 단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민중당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에는 자기의 씨앗이 된 독자후보 운동을 상징했던 거인과 그 운동을 선도했던 전투적인 기풍이 배제, 삭감되어 있으며, 그 당은 지금 선거혁명론에 입각한 온전 진보정당의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 |||
둘째는, 그 당이 후진적인 사상이 주도하는 “순화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라는 과격한 사상으로 활동하며 체제를 전복하기 위하여 무장 투쟁까지 생각하고 게다가 다수 국민의 불만을 하나로 조직할 수 있을지도 모를" 민중 운동 진영을 순치시켜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상황처럼 "좌익을 체제내화”하는 데에 그 당이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
정당법시행법 제28조를 보면 정당의 당헌에는 대의기관의 설치 및 소집 절차를 명시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민중당의 당헌 제7조에는 전당대회를 당의 최고의결기관이라고 규정하고 중앙위원을 비롯한 당연직 대의원 이외에 "당원 수를 기준으로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지구당에 할당된 수의 대의원"을 두도록 되어 있다.<ref>당헌 제10조에는 중앙위원회 또한 대표위원을 비롯한 당연직 중앙위원 외에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지구당이 선출한 중앙위원"으로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ref> 이렇게 평당원에 의하여 선출되는 평당원으로서의 대의원이야말로 당의 민주주의적 권력의 근간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당헌은 문자 그대로 당규의 보완에 의해서만 실제적 의미가 있는 것임은 누구에게나 자명하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당규 제1호에서 제11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규정을 눈을 씻고 살펴 보아도 전당대회 대의원 규정은 발견할 수 없다. 실제로 문서상의 형식에 그치고 만 지구당 대의원대회까지 "분회에서 당원 5인을 초과하는 매 5인당 대의원 1인을 기준으로 선출한 대의원"<ref>'당규 제4호 : 지방조직 규정' 중 제16조 지구당 대의원대회</ref>에 이르도록 세세하게 규정한 그 당규에 전당대회 대의원 선출 규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당 기관을 거론하면서도 "전당대회"라는 항목조차 없다. | |||
창당대회를 앞 둔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는 당연직 대의원이 아닌 당원 수 비례대의원, 즉 평당원 출신 대의원을 선출할 규정도 그러한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친 창준위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대의원 규정은 간부들로 이루어진 당연직 대의원 이외에 "1. 입당원서를 중앙당에 제출하고 2. 당비 3천원을 납부한 사람"을 대의원으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즉 당원의 숫자가 대의원을 선출할 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다수가 참여하는 성대한 창당대회를 위하여 당원 모두를 대의원으로 간주하기로 한 셈이다. 그런데 당시 중앙위원회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그것은 앞 선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러나 당이 "시끄러운 민주주의 조직"으로 되는 것을 싫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묘한 보완 요건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창당대회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 대의원은 적법한 의미의 대의원이 아니며, 따라서 그러한 대의원으로 구성된 창당대회는 어떠한 표결도 할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모든 사람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당을 준비하는 예비기관이었던 창준위 중앙위에서 결정한 3인 공동대표를 비롯한 중앙위원회 구성안, 강령, 당헌·당규 등을 통과시킬 권한은 창당대회에 있는데, 그 예비기관이 제출한 지도 체제, 강령, 당헌· 당규 등에 대하여 진정한 당 기관의 시작인 창당대회, 즉 당의 최고권력기관인 전당대회가 이견을 제출하거나 표결할 수도 없다니...... 당의 주인은 평당원이 아니라 최초에 당 결성을 주도한 사람들 중 소수 인물들임이 창당대회 때부터 만천하에 선포되었다. 민중당에서 당 간부가 아닌 평당원, 실무자들은 그 소수 인물들의 구미에 맞는 활동으로 승진의 기회를 잡지 않는 이상, 당의 진로에 대한 어떠한 발언도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없다는 선언이 민중당 창당대회가 당 운영방식의 제1조로 확인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후에 모든 실무자들에게는 당 운영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분파에 대한 무비판적 굴종이라는 권리만이 소위 "실무 우선, 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발언"이라는 슬로건으로 확고하게 보장되었을 뿐,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사회라는 원칙에 충성하여야 하는 운동가로서의 기본 의무는 당적을 가지고는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 |||
지금의 민중당의 위기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이 창당대회의 정신에서 비롯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당의 민주주의, 당의 정치 방침 들의 모든 분야에서 원칙은 오로지 하나, "당의 집행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 사람들의 견해가 곧 당론이요, 그것에 대한 반대는 '해당 행위'이다". 아직도 민중당에는 당원 수 비례 대의원의 규정이 없고, 오로지 창당대회 때의 기형적 규정과 희안한 해석만이 유일한 판례로 남아 있을 뿐이다. 평당원 출신의 정상적인 대의원이 한 명도 없는 민중당, 평당원-대의원 출신의 중앙위원은 한 명도 없는 민중당. 민연추에서 이월된 중앙위원회가 현재 민중당 당권의 형식적 소재지인 실정이다. 간부가 아니면, 어떠한 "공식적 통로"를 통하여 발언해도 쇠 귀에 경 읽는 허탈감만을 얻을 뿐인 처지에서 당의 투쟁성 회복, 당내 민주주의의 신장을 원하는 당의 살림꾼들의 목소리는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 |||
4월 혁명의 승리가 부르주아 정치꾼의 정권 장악으로 이어진 것은 그 혁명을 주도한 이념이 부르주아적 한계에 철저히 갇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새로운 "민중 이념"이 선도하였던 79-80년과 86-87년의 민중 투쟁의 결과가 여전히 김대중 등의 부르주아 정치꾼들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하여, 뒤늦게 각성한 사람들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 |||
근본적 변화를 염원하는 민중의 무정향의 열망에 권력 대안의 실체로서 대답할 것. "데모하면 뭐할꺼냐, 학생이 정치할 껀가, 결국 김대중 좋은 일이나 시킬걸". 이러한 민중의 굴절된 응어리에 긴 말이 필요 없는 분명한 표상으로 대답할 것. 비합법-반합법에 한정되어 있는 민중 운동 진영의 영역을 민중 투쟁의 진전 정도에 걸맞게 합법의 범위에까지 확산하되 부르주아 정치꾼 정당의 이미지를 제고시켜 줄 뿐인 보수 야당에의 참여가 아니라 민중 투쟁의 제도정치적 결과를 온전히 담아 낼 그릇으로서 새로운 체제의 희망찬 이념을 공공연하게 선전할 독자적인 합법정당 창설로 나아갈 것. 이러한 일반적 합의가 합법정당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합법정당-민중당은 소수 인사의 사적인 사유(思惟)의 창조물이 아니라 민중이 그 투쟁의 전진 도상에 구축한 또 하나의 진지인 것이다. 민중당은 처음부터 어떠한 개인들의 사유물이 될 수 없는 것으로서 민중당의 주인은 문자 표현 그대로 박해 받으며 투쟁하는 민중인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의 고난의 경력을 들어서 그리고 자기의 조직가로서의 능력을 동원하여 민중당이라는 주식회사의 대주주임을 주장하고 그 지위를 지키려 한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숭고한 민중투쟁의 배신자, 민중의 자산을 탈취하려는 도적임을 스스로 선포하는 것이다. | |||
이제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었지만 그동안의 민중당의 여러 활동을 실무로서 담당해 온 민중의 심부름꾼으로서, 같은 기간의 우리의 비주체적인 태도가 민중당을 이 나라의 지배 계급에게는 "아직 문제될 게 없고 무척 잘 하고 있다" 는 만족을 선사하고 투쟁에 살고 죽는 민중과 그 운동 진영에게는 불만을 강제해 온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을 심각하게 반성하면서 우리 실무자들의 새로운 출발을 결의하고자 한다. 먼저 이러한 분명한 인식에 도달한 우리가 아직 이러한 판단을 유보하고 현재의 민중당의 의사 결정 구조와 정치 행동 방침에 일말의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는 동지들과 이러한 결의의 시각을 모르고 혼자 답답해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우리와 같은 판단, 같은 결의를 호소하는 것은 마땅한 우리의 의무이다. | |||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 아직 많지 않은 사람들의 시작으로서 앞으로 민중당의 다수 실무자들이 이 결의에 동참할 것을 확신하고 있는 이상, 다수의 사례를 취합하여 일목요연하게 말 그대로 낱낱이 성토하는 것은 차후의 사업으로 하고 우선 시급하게 우리의 회의에서 확인된 사항들만으로 일단 문제의식을 확산시켜 가는 것이 일의 순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단 최소한의 사실들에 대한 소략적 서술로 동지들의 참여를 촉구하거니와 동지들은 자신들이 여기에 함께 참여할 때까지 우리 회의의 불철저한 폭로에 따를 울화를 누르고 하루빨리 달려 와 힘을 합쳐주기를 바란다. | |||
따라서 여기서는 먼저 그 동안 지속적인 문제가 되어 왔던, 민중당을 주도하려는 위험한 사상에 대하여, 민중당의 정책위원장으로서 민중당의 강령 작성을 사실상 주도하고 특히 그나마의 합의에 따른 민중당의 강령에 대한 유일한 해석자를 자임해 온 장기표씨가 최근 『사회평론 창간호』 대담에서 발언한 내용들을 들어서 비판하고자 한다. 장기표씨는 그 대담 이후 당내외의의 해명 요구에 접하여 중앙위원회에서 "그 대담은 철저한 사견"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민중당의 정책위원장의 직함을 가지고 밖에 나가 큰 소리로 한 얘기를 안에 들어 와 조그맣게 사견이라고 해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직함을 가지고 힘 주어 한 얘기를 여론이 좋지 않다고 "사견"이라며 뒤집었지만 그 얘기가 전혀 "사견"답지 않은 현실로 확정되는 예를 부르주아 정치꾼들의 행태에서 수도 없이 보아 왔다. | |||
또 당내 민주주의와 당의 투쟁 의지 문제에 관해서는 동지들 모두가 그 부정성을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지겹도록 확인할 터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번 5월 투쟁 속에서의 광역 선거 참여 결정 과정과 그 이후 당 집행 권력의 역량 배치 등의 사례들만을 언급하기로 한다. | |||
마지막으로 민중당 운동을 끊임없이 괴롭혀 온 악령, "야권통합"의 기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폭로하고 이것이 합법정당-민중당의 존재 의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책동임을 선언하고자 한다. | |||
장기표씨는 최근 『사회평론』과의 대담에서 조희연 교수의 소위 공세적 질문 공세에 대하여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기의 정치적 견해, 특히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피력하였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생각이 특히 조직 원칙에 관한 한 민중당의 "지도급 인사"들의 공감대임을 자신하였다. 그는 여기서 사회주의에 대하여 아직도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답답해 하면서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근본적 회의를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또한 그는 레닌주의적인 정치 행동 일반에 관하여 엘리트주의라고 헐뜯으면서 자기가 주도하는 정치 행동만이 민중주체의 활동임을 강변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의 요지는 '생산수단을 개인적으로 소유한 사람들의 조합적 질서'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될 수 있는바, 이것은 여러 소심한 이른가들이 100여년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주장했던 것으로서 우리가 알기로 맑스주의야말로 이러한 소소유자적 사회주의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반동적 철학임을 폭로하면서 등장한 과학이다. 이미 비판된 것을 가지고 그것을 비판해 낸 것을 비판하는 무지. | |||
이제 이 대담에서 참고 넘길 수 없는 몇 가지 언명을 짚어 봄으로써 민중당의 위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인 사상적 위기의 진원지를 탐사해 보기로 하겠다. | |||
만약 정통 맑스-레닌주의의 관점에서 얘기하기로 한다면, 앞서서 싸우겠다는 사람에게는 무지 또한 죄악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장기표씨는 자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대"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런 비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의 악의에 찬 왜곡과 그 자신의 독특한, 아니 자신의 말로 "기묘한" 해석에 대해서만 우리의 비판적 진술을 한정시켜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말만은 분명히 해야겠다. 민중당의 정책위원장으로 견결한 맑스-레닌주의 이론가를 바라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인지 몰라도, 공공연하게 자신이 맑스-레닌주의에 반대한다고 선포하는 사람을, 유고슬라비아에서 실패한 조합적 소유, 그 "조합적 소유라는 것과 굉장히 같은" 것을 전망이라 주장하면서 그 전철을 답습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정도의 식견을 가진 사람을, 강단 학자 전부가 비합법 전위정당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안하는 이중인격자라고 몰아 붙이는 좁은 소견을 가진 사람을, 방대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들을 민중당에 끌어 들여 민중당의 민중당다운 연구 체계를 조직해야 할 사명을 띤 정책위원장의 자리에 계속 두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실제로 그가 민중당 운동의 시초부터 정책 부분의 책임자를 맡아 온 이 1년 동안 민중당의 연구 역량은 체중 미달의 상황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 운동의 연구 진영에서 민중당의 정책과 관련한 어떠한 주목할 만한 연구도 제출된 적이 없다. | |||
그는 "러시아 혁명 이후 초기에는 강압적인 조건 아래 ... 생산력이 발전"했다고 하면서 혁명의 감격 속에 새 조국 건설에 떨쳐 나섰던 러시아 인민의 신성했던 노동 의지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생산수단을 ...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생산수단의 처분권을 자기가 (개인이-인용자) 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함으로써 노등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고통스런 것으로서 그 동기 유발은 사회적 생산, 대규모의 결합노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즉 노동인민이 원하는 것은 개인적 재부 뿐이라는 부르주아지의 경제학을 강의하고 그것을 맑스의 생각이었다고 우긴다. 이것은 『경제학-철학 수고』 를 한번만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경악할 왜곡이다. 그래 놓고 다시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의 생산력 발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시 노동자계급을 속물로 만드는데 이번의 왜곡은 현재 한국의 노동자계급을 향한다. "(러시아 혁명) 당시는 노동자계급이 진짜로 선진적이고 진보적이었어요. 지금은 어떤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그에게는, 그의 시대에게는 재수 없이 선진적이지 않고 진보적이지 않은 노동자계급이 주어진 것인가. 이것이 '70년대의 영웅 장기표'가 수배망을 누비면서 "평화시장에 관여"한 수삼년 활동의 결론인가. 아, 당시의 노동자계급이 "진짜로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계급이 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전위투사들의 생명이 바쳐졌던가. 대체 어느 땅의 노동자계급이 먼저 각오한 선진적 투사들의 각고의 투쟁 없이 저절로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계급으로 섰던가? 만약 어떤 운동가가 이 땅의 노동자계급이 애석하게도 아직 선진적이고 진보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럴수록 오히려 배전의 각오를 다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 |||
장기표씨는 마치 자기만이 득도하여 "권력대체세력을 형성, 제시"하는 관념에 도달한 것처럼 행세하고 "레닌주의에 입각해서 보면 이 인식에 도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아니 당신이 읽은 레닌과 다른 사람들이 읽은 레닌은 동명이인이던가? 더욱 지적해야 할 것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합법정당은 (통일전선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무명의 투사들, 즉 민중 투쟁이 이룩한 결론이지 어떤 개인의 사유가 순수 추상으로 도달한 결론은 절대 아니란 말이다. | |||
장기표씨는 "민중당도 불법화될 수 있"다고 말하며 "저 놈들이 불법이라고 해서 안할 것 같으면 뭐 하려고 해요"라고 반문한다. 합법-비합법은 상황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은 상황이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말은 원론으로 들리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그의 총체적 결론이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 모두는 자기의 지휘에 따르라는 언명. 자기가 합법일 때는 당도 합법이요, 자기가 비합법일 때는 당도 비합법이란 말인가? 우리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비합법 당 건설운동<ref>위키 편집자 주 : 이것은 당시 노회찬이 이끌던 '인민노련'이 준비하고 있던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을 의미하는 것이다.</ref>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는 "(당내의)지도급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앞으로 노동자계급 당을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이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비합법정파의 동지들이 받는 모든 탄압에 대하여 민중당의 중앙 권력은 그 흔한 "사상의 자유"라는 슬로건 하나 똑 부러지게 주장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는 시늉 한번 안했는가? 물론 민중 운동 진영의 각 부분은 상황에 대하여, 필요한 조직체의 우선 건설 순위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기의 지금의 조직만으로 다 할 수 있다거나 자기의 지금의 조직에 모두가 따르라는 것은 운동 진영 전체가 하나의 대오로 묶여야만 한다는 지상 명령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분열주의이며, 백보를 양보하여 자기 주도의 생각을 인정한다 해도 그렇게 야멸차게 비합법의 동지들을 그가 대담에서도 표현하고 있는 바의 그 "적"에게 팔아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민중당이, 모든 운동 진영이 "우리의 합법 정당"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되는 그런 모습으로 서기를 바란다. | |||
4월 26일의 한국정치연구회 월례토론회에서 장기표, 우리 민중당의 정책위원장께서는 김세균 교수에게서 "몽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 받고, "'개혁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것을 내세우지 말고 이제까지의 변혁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라"<ref>한겨레신문 재인용</ref>는 가르침을 받았다는데, 김세균 교수가 그의 구체적 입론 여하간에 대체로 침착하게 공부하는 원칙적인 학자로 평가 받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야 그의 말을 무겁게 듣지 않을 수 없고, 우리 당의 정책위원장이 밖에 나가 그런 소리나 듣고 다니는 이러한 상황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 |||
강경대 열사 살해 사건 이후에 민중 운동 진영은 하나로 모였으며, 공개 반합법 운동 조직들은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은 이 와중에서 미리 해 오던 광역선거 준비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그것의 결과는 5월 투쟁에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 것이었다. 자기자신 투쟁으로 단련되고 그것을 통하여 민중당의 위신이 투쟁하는 민중 속에 우뚝 서기를 바란 당 실무자들을 비롯한 많은 당원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원성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민중당을 고개를 외로 꼰 채 바라보던 사람들이 드디어 민중당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낯 뜨거운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민중당 깃발 아래 모이기가 창피하다"는 것이 투쟁 대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당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으며, 가지고 나갔던 지구당의 깃발조차 감아 들고 풀 죽어 있는 당원까지 있었다. 많은 당원들이 당기와 상관 없이 행동했다. 민중당의 고문 백기완님이 "이 체제를 갈아 엎어야 한다. 민중이 주체되어 떨쳐 일어나자"고 포효하는 가두 투쟁의 현장에서, 백기완님을 사실상 당 밖으로 밀어냈으면서도 그가 민중당과 관계있는 듯이 눙치며 필요할 때마다 그의 위광 덕을 보려 하는 민중당은 그 사자후에 답하지 않았다. | |||
5월2일의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광역선거 준비를 보류하고 5월투쟁에 총력대응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고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관심을 광역선거로 돌리려는 이 지배계급의 의도를 간파한 까닭이었다. 대책회의까지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려는 부르주아지의 광역선거 방침에 반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의 중앙위원회는 선거 참여를 결정하였다. 결정 사항은 무조건 참여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바둑에서도 먼저 둔 수가 아까와 계속 악수를 둘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선거를 포기하기 곤란했던 여러 지구당들의 사정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광역선거 참여 결정 자체의 선악에 대하여서는 더 말하지 않기로 하겠다. 참여와 거부의 진영 구획이 현재의 당 개혁투쟁의 계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로서, 참여냐 거부냐의 논쟁을 재론하는 것은 우리의 당 개혁투쟁의 전선을 불분명하게 만들지 모른다. 이재오 사무총장이 이 참여 결정의 주도 인물임은 공지의 사실이고 그가 민중당의 주요한 결정의 고비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이 회의의 결정을 저 회의의 형식으로 뒤집는 것을 능사로 해 왔음<ref>지난 창당대회 직전에 백기완 당수 체제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던 창준위 상임위의 결정은 어떻게 뒤집어졌던가? 그 결정에 의거하여 일부 상임위원들이 백기완님을 찾아 갔을 때 그는 사실상 수락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소집된 비상상임위원회에서 이우재씨가 돌연 사표를 제출하여 상임위원들을 위협했으며 당이 출범하기도 전에 좌초할 것을 염려한 다수 상임위원들의 소심한 판단에 의하여 상임위원회는 백기완, 이우재, 김낙중의 3인 공동대표제를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앞서의 결의를 번복하였다. 이는 일사부재리의 기본적 의사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또 이러한 상임위원회의 제안에 1차 중앙위원회가 격론을 벌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여 재소집된 2차 중앙위원회는 의사정족수가 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차 중앙위원회에서는 선례가 없었던 의결권 위임이라는 방식을 동원하여 이재오씨, 이우재씨 등이 여러 표씩을 행사함으로써 상임위의 수정된 3인 공동대표제(백기완 배제, 이우재-김낙중-김상기)를 비롯하여 창당대회에서의 무표결 등의 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누가 있었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누가 감히 민중당에서 이런 잡한 권모술수가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ref> 또한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는 공식 기구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며 또한 거기서 선거 거부를 결정한 바 없다고 말할 것이다. 따라서 중앙위원회가 유일하게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기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바로 이 중앙위원회가 앞서 말한 대로 일정한 논리적 하자가 있는 조직이다. 정당의 최고 권력기구는 전당대회이다. 중앙위원회는 전당대회가 개최되지 않는 동안의 수임기구일 뿐이다. 그런데 민중당은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전당대회를 치러 본 적이 없다. 아직도 전당대회의 구성원인 대의원 규정이 없고, 그 대의원들을 선출할 당원의 자격조차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태는 당의 조직을 총괄 관리하는 사무총장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이 직무유기는 제대로 된 전당대회는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다수 당원 대중의 의사가 반영될 것이고 그 분위기가 소위 "좌파"적일 것을 그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이제까지의 중앙위원회를 자기가 강한 어조로 밀어 붙이면 대체로 다수결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구라고 그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중앙위원회를 개편하기 싫어서가 아닌가? 우리는 성원이 거의 비슷한 이 두 기구에 의한 상반되는 정치 방침이 일사부재리의 기초적 의사 원칙을 위배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데에 따르는 주요한 책임을, 아직도 당의 기본조직(전당대회)을 구축하지 못한 책임을 첫번째로 져야 할 직책은 당 조직의 총괄 관리직인 사무총장이다. | |||
5월 27일, 비상중앙위원회의 광역 선거에 대한 결정은 후보가 있는 지역은 후보를 내고 후보가 없는 지역은 "대중 투쟁에 적극 결합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위 제한적 선거 참여였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되고 있는가? 지구당들은 각각의 견해에 따라 선거에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중앙당 집행 권력의 태도이다. 중앙당의 실무 역량 상당수를 특정한 지구당, 선거에 특별히 집착하고 있는 중앙당 당직자들의 지구당으로 파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지구당에는 선거를 안 하니까 역량 감소를 해도 된다면서 일부 중앙당 파견 간사들의 소환이 요구되고 있다. 또 후보를 내지 않는 지구당에 대하여 인접한 선거 참여 지구당에 인력 지원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당력을 총 집중하는 선거 참여가 당론이라면 이런 역량 배치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선거 거부를 주장한 당원이더라도 인접 지구당의 선거를 헌신적으로 도와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후보가 없는 지구당에서는 대중 투쟁에 적극 결합한다는 "당론"에 비추어 이런 역량 배치 요구가 합당한 일인가? 이것들이 중앙위원회라는 기구에 의한 당론을 껍데기 뿐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중앙당 집행 권력의 권력 남용, 당론 위배의 명명백백한 증거가 아닌가? 선거 참여의 명분 또한 '노 퇴진 투쟁의 추동'이었는데 현재의 선거 투쟁은 "참여한 이상 당선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지배하고 있다. 말로 선거혁명론을 부정한다고 해도 이러한 행동이 바로 선거혁명론 아닌가? 게다가 최근 신민당 대전 집회에서 연사로 참석한 김낙중 대표는 수만 군중 앞에서 "노태우가 물러가라고 물러갑니까? 안 물러갑니다. 선거를 통해서 정권교체해야 합니다. "라고 발언하였다. 김낙중 대표는 또 누구처럼 중앙위원회에서 "그것은 사견이었다"라고 해명할 것인가? 보수 정당의 집회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민중당의 대표로서 양심의 가책도 없는가? | |||
당의 각 부문, 각 기관들이 지금까지 진출하는 대중 투쟁에 적극 결합하는 어떤 활동을 해 왔는가도 물어져야 한다. 당을 계급·계층 대중의 조직 역량에 역점을 두어 조직해 가야 한다는 것은 민중당의 창당 정신의 하나이다. 당이 선거와 대중 투쟁을 함께 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부문위원회 조직을 동원하여 대중 투쟁에 연대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당의 부문위원회 조직은 지금 선거를 돕기 위하여 선거를 치르는 지구당에 분산 배치된 채로 있다. 또한 중앙당의 각급 집행 기관들은 최근의 대중 투쟁에 어떤 식으로 응해 왔는가? 중앙당 선전국과 기관지 편집국의 활동이 선거용 홍보에 집중함으로써 『민중시대』를 비롯한 민중당의 각종선전물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민중당이 노태우 퇴진 대중 투쟁은 회피하고 총력을 기울여 선거에 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 |||
우리가 광역선거를 둘러 싼 당의 대응에서 문제로 삼는 것은 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결정한 노태우 퇴진 총력 투쟁의 방침과 중앙위원회의 일면 선거 일면 투쟁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민중당 중앙권력이 사실상 선거 준비에서 전혀 발을 뺀 적 없이 모든 운동 세력이 떨쳐 나섰던 5월 투쟁에서 독보적인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했던 사태와, 한번 정한 정치 방침이 인원 구성이 비슷한 다른 회의의 형식으로 그것도 민중당이 참여한 대책회의의 방침을 위배하면서 순식간에 뒤집어졌던 사태이다. | |||
우리 당의 대표인 김낙중씨가 앞서 백기완님이 총력 투쟁을 선동했던 그 날 그 자리에서 민중은 야권 3당의 통합을 원한다고 진단하면서 마치 야권 통합이 민중당의 당론이라도 되는 듯이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경악하였다. 야권 3당의 통합을 원하는 사람이 민중당을 지지하는 사람보다 많다는 정도의 여론 조사 따위는 우리도 숱하게 보아 왔다.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그것이 새삼스런 일이라면 김낙중씨가 민중당에 참여하던 당시에는, 아니 더 소급하여 합법정당 창설 논의가 무성하던 당시에는 안 그랬단 말인가? 왜 모든 연사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총력 투쟁을 호소하던 그 자리에서 민중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야유를 받아가면서까지 3당 통합 운운해야 했던가? 또 장기표씨는 5월 23일의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공안통치 완전 종식을 위한 시국대토론회'에서 야권통합과 실제적 구별이 모호한 소위 "범국민대책회의를 중심으로 한 야권 3당과 재야 민주세력의 정치연합"을 주장하여 참석자들의 야유를 받았다. | |||
물론 우리 자신 민중당의 외로운 투쟁으로 이 체제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다수의 반정부 세력과 연대해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든 연대 투쟁, 연대 조직들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민중 주체, 좀 더 현실적인 원칙으로 좁히면, 민중 진영의 독자성 유지이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모든 연대가 상층의 운동권 인사에게는 정치적 출세를 가져다 주었는지 모르지만 민중에게는 자신의 투쟁 성과가 부르주아지에게 돌아가는 억울함만을 주어 왔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말해야 하는가? 이런 인식의 결론이 앞서 말한 대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합법 민중 정당 아니던가? | |||
지금 공개 운동권에 조직 재편, 새로운 이합집산의 논의가 무성하다. 민중당 운동에 관해서도 친 보수야당적인 인사들과의 단일조직 건설 등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실무자 회의의 수준에서 책임 있는 고급 정보를 입수하여 폭로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이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관련된 정보들을 모아나갈 것이다. | |||
현재의 모든 야권통합 주장이라는 패에는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카드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순진한 백치는 없을 것이다. 몇몇 상층인사의 의원직과 민중의 합법정당이라는 역사의 과제를 맞바꾸는 데에까지 이르게 될 그 사태의 결말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아, 민중의 힘의 성장을 기다러 국회의원이 되길 기다릴 만큼의 최소한의 양심의 선마저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지금 민중당 안에 있다. | |||
우리는 부족한 논거를 가지고도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결의 만큼은 분명히 해야겠다. 저지해야 한다. 최소한 그들이 '민중당의 간판을 가지고' 부르주아 정치꾼 정당으로 넘어가는 것만은 저지해야 한다. 상식을 가진 운동가라면 몇몇 상층인사들이 넘어간다고 해서 실망하랴마는, 그들이 이 간판까지 가져가려는 기도만은 기필코 저지해야 한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역사의 요구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태에 실망했다는 이유로 개별적으로 당을 떠나려는 생각들은 자제되어야 한다. 민중당의 개혁을, 진정한 민중정당의 건설을 염원하는 모든 동지들은 지금 뭉쳐야 한다. 민중당 개혁파의 전국적 전 부문적 대오를 지금 즉시 형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숭고한 민중 투쟁의 역사가 우리에게 제기한 요구,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하나된 투쟁에 떨쳐 나서야 한다. | |||
촉박한 시간에 작성되는 이 글이 실무자 회의 자체의 결정과 요구에 따르는 생생한 다량의 폭로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해와 용서를 구하며, 민중당이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민중당의 개혁에 한 몸 던지려는 결의를 검토하는 모든 실무자 동지들께 먼저 만난 실무자 동지들의 세 번의 회의가 결정한 행동 방침과 구체적 결의 사항을 전하면서 부족한 글을 맺으려 한다. | |||
1. 우리는 당이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당의 실제적 주인이면서도 마치 국외자처럼 주요 당 방침의 결정 때마다 우리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에 무기력한 채로 삼삼오오 불만의 술자리에 그치고 말았던 우리 자신의 비주체적 태도를 반성한다. | |||
2. 우리는 민중당의 개혁이 소위 당권파가 항상 강요하는 "공식적 의사결정 구조"나 "공식적 의견 전달 통로" 로는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위 "공식적"이라는 수식어에 더이상 연연하는 것은 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가 불철저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간주할 길이 없다고 선언한다. | |||
3. 우리는 이 상황의 극복이 사소한 불만들의 개별적 표현에 힘입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민중당에 개혁의 새바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개인, 모든 부문의 단일한 대오에 의한 민중당 개혁 투쟁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단일 대오의 표현 형식으로 (가칭) <민중당 개혁 추진 회의>를 구성할 것을 개혁을 원하는 당내 모든 개인, 모든 부문에게 촉구한다. | |||
4. 그것을 위하여 실무자들이 먼저, 당적과 관련한 운명까지도 함께 하기로 각오하는 동지적 연대의식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먼저 만난 사람들끼리 <민중당 개혁을 위한 실무자 회의>를 구성하였으며 같은 의지로 나서고자 하는 실무자 동지 여러분의 참여를 뜨거운 가슴으로 촉구한다. | |||
5. <민중당 개혁을 위한 실무자 회의>와 (가칭) <민중당 개혁 추진회의>는 민중당을 사당화하고 있는 세력과의 이론 투쟁을 조직하고, 당 강령을 위배한 사례들에 대하여 당기위원회에 제소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소집하기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사항들을 실현해갈 실물적 힘의 표현으로서 (가칭) <민중당 열성자 대회>를 조속한 시일 안에 개최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 |||
1991년 6월 6일 |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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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1 | 출처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민중당은 개혁되어야 한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6일, 2024년 12월 5일 게시물 확인.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1 | ||
</poem> | </poem> | ||
== 관련 문서 == | |||
* [[김길오]] | |||
* [[민중당]] | |||
== 참고 문헌 == | |||
* 사회평론 창간호 (1991년 5월호) - https://www.laborsbook.org/new/book.php?uid=62&no=5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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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 [[분류 : 문서]] |
2025년 5월 11일 (일) 19:13 기준 최신판
김길오 등 민중당 내의 소장파들이 1991년에 발행한 문건. 이들 소장파의 당내 투쟁은 제명으로 막을 내린다.
주의 사항
오타나 비문 등도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옮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오타가 생겼을 수 있다.
본문
민중당은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권력 장악을 목표로 활동하는 정치 집단인데 어찌하여 반(反) 민중적인 이 6공화국 정권이 그 민중당을 가벼이 놓아 두는 것일가? 87년에 통일민주당이라는 철저히 체제내적인 정당의 창당 작업조차 물리적으로 방해했던 이 군부정권이 민중당의 창당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심지어 창당을 두호하는 듯한 인상까지 풍기면서 방관한 것일까? 독점 부르주아지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 헌법과 부르주아 지배 체제를 반대하는 모든 정치조직의 구성원을 검거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을 동원하여 언제라도 “합법적인” 모든 요건을 갖춘 정당조차 분쇄할 수 있는 이 “신식민지 파시즘” 체제가 왜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정당이 제 맘대로 활동하게 내버려 두는 것일까?
첫째는, 그 당이 투쟁으로 성장해 온 민중의 힘의 확대의 “결과물"일 뿐, 앞으로의 민중 투쟁을 선도할 "원동력"이 되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독점 부르주아지가 전반적인 힘의 관계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에 놓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민중 투쟁 진영을 “싹쓸이”하지 못하는 이상, 운동 진영의 극히 제한된 역량에 불과한 "덜 전투적인 하나의 운동 단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민중당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에는 자기의 씨앗이 된 독자후보 운동을 상징했던 거인과 그 운동을 선도했던 전투적인 기풍이 배제, 삭감되어 있으며, 그 당은 지금 선거혁명론에 입각한 온전 진보정당의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 당이 후진적인 사상이 주도하는 “순화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라는 과격한 사상으로 활동하며 체제를 전복하기 위하여 무장 투쟁까지 생각하고 게다가 다수 국민의 불만을 하나로 조직할 수 있을지도 모를" 민중 운동 진영을 순치시켜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상황처럼 "좌익을 체제내화”하는 데에 그 당이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법시행법 제28조를 보면 정당의 당헌에는 대의기관의 설치 및 소집 절차를 명시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민중당의 당헌 제7조에는 전당대회를 당의 최고의결기관이라고 규정하고 중앙위원을 비롯한 당연직 대의원 이외에 "당원 수를 기준으로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지구당에 할당된 수의 대의원"을 두도록 되어 있다.[1] 이렇게 평당원에 의하여 선출되는 평당원으로서의 대의원이야말로 당의 민주주의적 권력의 근간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당헌은 문자 그대로 당규의 보완에 의해서만 실제적 의미가 있는 것임은 누구에게나 자명하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당규 제1호에서 제11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규정을 눈을 씻고 살펴 보아도 전당대회 대의원 규정은 발견할 수 없다. 실제로 문서상의 형식에 그치고 만 지구당 대의원대회까지 "분회에서 당원 5인을 초과하는 매 5인당 대의원 1인을 기준으로 선출한 대의원"[2]에 이르도록 세세하게 규정한 그 당규에 전당대회 대의원 선출 규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당 기관을 거론하면서도 "전당대회"라는 항목조차 없다.
창당대회를 앞 둔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는 당연직 대의원이 아닌 당원 수 비례대의원, 즉 평당원 출신 대의원을 선출할 규정도 그러한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친 창준위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대의원 규정은 간부들로 이루어진 당연직 대의원 이외에 "1. 입당원서를 중앙당에 제출하고 2. 당비 3천원을 납부한 사람"을 대의원으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즉 당원의 숫자가 대의원을 선출할 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다수가 참여하는 성대한 창당대회를 위하여 당원 모두를 대의원으로 간주하기로 한 셈이다. 그런데 당시 중앙위원회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그것은 앞 선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러나 당이 "시끄러운 민주주의 조직"으로 되는 것을 싫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묘한 보완 요건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창당대회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 대의원은 적법한 의미의 대의원이 아니며, 따라서 그러한 대의원으로 구성된 창당대회는 어떠한 표결도 할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모든 사람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당을 준비하는 예비기관이었던 창준위 중앙위에서 결정한 3인 공동대표를 비롯한 중앙위원회 구성안, 강령, 당헌·당규 등을 통과시킬 권한은 창당대회에 있는데, 그 예비기관이 제출한 지도 체제, 강령, 당헌· 당규 등에 대하여 진정한 당 기관의 시작인 창당대회, 즉 당의 최고권력기관인 전당대회가 이견을 제출하거나 표결할 수도 없다니...... 당의 주인은 평당원이 아니라 최초에 당 결성을 주도한 사람들 중 소수 인물들임이 창당대회 때부터 만천하에 선포되었다. 민중당에서 당 간부가 아닌 평당원, 실무자들은 그 소수 인물들의 구미에 맞는 활동으로 승진의 기회를 잡지 않는 이상, 당의 진로에 대한 어떠한 발언도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없다는 선언이 민중당 창당대회가 당 운영방식의 제1조로 확인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후에 모든 실무자들에게는 당 운영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분파에 대한 무비판적 굴종이라는 권리만이 소위 "실무 우선, 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발언"이라는 슬로건으로 확고하게 보장되었을 뿐,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사회라는 원칙에 충성하여야 하는 운동가로서의 기본 의무는 당적을 가지고는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의 민중당의 위기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이 창당대회의 정신에서 비롯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당의 민주주의, 당의 정치 방침 들의 모든 분야에서 원칙은 오로지 하나, "당의 집행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 사람들의 견해가 곧 당론이요, 그것에 대한 반대는 '해당 행위'이다". 아직도 민중당에는 당원 수 비례 대의원의 규정이 없고, 오로지 창당대회 때의 기형적 규정과 희안한 해석만이 유일한 판례로 남아 있을 뿐이다. 평당원 출신의 정상적인 대의원이 한 명도 없는 민중당, 평당원-대의원 출신의 중앙위원은 한 명도 없는 민중당. 민연추에서 이월된 중앙위원회가 현재 민중당 당권의 형식적 소재지인 실정이다. 간부가 아니면, 어떠한 "공식적 통로"를 통하여 발언해도 쇠 귀에 경 읽는 허탈감만을 얻을 뿐인 처지에서 당의 투쟁성 회복, 당내 민주주의의 신장을 원하는 당의 살림꾼들의 목소리는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4월 혁명의 승리가 부르주아 정치꾼의 정권 장악으로 이어진 것은 그 혁명을 주도한 이념이 부르주아적 한계에 철저히 갇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새로운 "민중 이념"이 선도하였던 79-80년과 86-87년의 민중 투쟁의 결과가 여전히 김대중 등의 부르주아 정치꾼들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하여, 뒤늦게 각성한 사람들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근본적 변화를 염원하는 민중의 무정향의 열망에 권력 대안의 실체로서 대답할 것. "데모하면 뭐할꺼냐, 학생이 정치할 껀가, 결국 김대중 좋은 일이나 시킬걸". 이러한 민중의 굴절된 응어리에 긴 말이 필요 없는 분명한 표상으로 대답할 것. 비합법-반합법에 한정되어 있는 민중 운동 진영의 영역을 민중 투쟁의 진전 정도에 걸맞게 합법의 범위에까지 확산하되 부르주아 정치꾼 정당의 이미지를 제고시켜 줄 뿐인 보수 야당에의 참여가 아니라 민중 투쟁의 제도정치적 결과를 온전히 담아 낼 그릇으로서 새로운 체제의 희망찬 이념을 공공연하게 선전할 독자적인 합법정당 창설로 나아갈 것. 이러한 일반적 합의가 합법정당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합법정당-민중당은 소수 인사의 사적인 사유(思惟)의 창조물이 아니라 민중이 그 투쟁의 전진 도상에 구축한 또 하나의 진지인 것이다. 민중당은 처음부터 어떠한 개인들의 사유물이 될 수 없는 것으로서 민중당의 주인은 문자 표현 그대로 박해 받으며 투쟁하는 민중인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의 고난의 경력을 들어서 그리고 자기의 조직가로서의 능력을 동원하여 민중당이라는 주식회사의 대주주임을 주장하고 그 지위를 지키려 한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숭고한 민중투쟁의 배신자, 민중의 자산을 탈취하려는 도적임을 스스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었지만 그동안의 민중당의 여러 활동을 실무로서 담당해 온 민중의 심부름꾼으로서, 같은 기간의 우리의 비주체적인 태도가 민중당을 이 나라의 지배 계급에게는 "아직 문제될 게 없고 무척 잘 하고 있다" 는 만족을 선사하고 투쟁에 살고 죽는 민중과 그 운동 진영에게는 불만을 강제해 온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을 심각하게 반성하면서 우리 실무자들의 새로운 출발을 결의하고자 한다. 먼저 이러한 분명한 인식에 도달한 우리가 아직 이러한 판단을 유보하고 현재의 민중당의 의사 결정 구조와 정치 행동 방침에 일말의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는 동지들과 이러한 결의의 시각을 모르고 혼자 답답해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우리와 같은 판단, 같은 결의를 호소하는 것은 마땅한 우리의 의무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 아직 많지 않은 사람들의 시작으로서 앞으로 민중당의 다수 실무자들이 이 결의에 동참할 것을 확신하고 있는 이상, 다수의 사례를 취합하여 일목요연하게 말 그대로 낱낱이 성토하는 것은 차후의 사업으로 하고 우선 시급하게 우리의 회의에서 확인된 사항들만으로 일단 문제의식을 확산시켜 가는 것이 일의 순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단 최소한의 사실들에 대한 소략적 서술로 동지들의 참여를 촉구하거니와 동지들은 자신들이 여기에 함께 참여할 때까지 우리 회의의 불철저한 폭로에 따를 울화를 누르고 하루빨리 달려 와 힘을 합쳐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여기서는 먼저 그 동안 지속적인 문제가 되어 왔던, 민중당을 주도하려는 위험한 사상에 대하여, 민중당의 정책위원장으로서 민중당의 강령 작성을 사실상 주도하고 특히 그나마의 합의에 따른 민중당의 강령에 대한 유일한 해석자를 자임해 온 장기표씨가 최근 『사회평론 창간호』 대담에서 발언한 내용들을 들어서 비판하고자 한다. 장기표씨는 그 대담 이후 당내외의의 해명 요구에 접하여 중앙위원회에서 "그 대담은 철저한 사견"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민중당의 정책위원장의 직함을 가지고 밖에 나가 큰 소리로 한 얘기를 안에 들어 와 조그맣게 사견이라고 해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직함을 가지고 힘 주어 한 얘기를 여론이 좋지 않다고 "사견"이라며 뒤집었지만 그 얘기가 전혀 "사견"답지 않은 현실로 확정되는 예를 부르주아 정치꾼들의 행태에서 수도 없이 보아 왔다.
또 당내 민주주의와 당의 투쟁 의지 문제에 관해서는 동지들 모두가 그 부정성을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지겹도록 확인할 터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번 5월 투쟁 속에서의 광역 선거 참여 결정 과정과 그 이후 당 집행 권력의 역량 배치 등의 사례들만을 언급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민중당 운동을 끊임없이 괴롭혀 온 악령, "야권통합"의 기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폭로하고 이것이 합법정당-민중당의 존재 의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책동임을 선언하고자 한다.
장기표씨는 최근 『사회평론』과의 대담에서 조희연 교수의 소위 공세적 질문 공세에 대하여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기의 정치적 견해, 특히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피력하였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생각이 특히 조직 원칙에 관한 한 민중당의 "지도급 인사"들의 공감대임을 자신하였다. 그는 여기서 사회주의에 대하여 아직도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답답해 하면서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근본적 회의를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또한 그는 레닌주의적인 정치 행동 일반에 관하여 엘리트주의라고 헐뜯으면서 자기가 주도하는 정치 행동만이 민중주체의 활동임을 강변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의 요지는 '생산수단을 개인적으로 소유한 사람들의 조합적 질서'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될 수 있는바, 이것은 여러 소심한 이른가들이 100여년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주장했던 것으로서 우리가 알기로 맑스주의야말로 이러한 소소유자적 사회주의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반동적 철학임을 폭로하면서 등장한 과학이다. 이미 비판된 것을 가지고 그것을 비판해 낸 것을 비판하는 무지.
이제 이 대담에서 참고 넘길 수 없는 몇 가지 언명을 짚어 봄으로써 민중당의 위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인 사상적 위기의 진원지를 탐사해 보기로 하겠다.
만약 정통 맑스-레닌주의의 관점에서 얘기하기로 한다면, 앞서서 싸우겠다는 사람에게는 무지 또한 죄악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장기표씨는 자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대"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런 비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의 악의에 찬 왜곡과 그 자신의 독특한, 아니 자신의 말로 "기묘한" 해석에 대해서만 우리의 비판적 진술을 한정시켜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말만은 분명히 해야겠다. 민중당의 정책위원장으로 견결한 맑스-레닌주의 이론가를 바라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인지 몰라도, 공공연하게 자신이 맑스-레닌주의에 반대한다고 선포하는 사람을, 유고슬라비아에서 실패한 조합적 소유, 그 "조합적 소유라는 것과 굉장히 같은" 것을 전망이라 주장하면서 그 전철을 답습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정도의 식견을 가진 사람을, 강단 학자 전부가 비합법 전위정당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안하는 이중인격자라고 몰아 붙이는 좁은 소견을 가진 사람을, 방대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들을 민중당에 끌어 들여 민중당의 민중당다운 연구 체계를 조직해야 할 사명을 띤 정책위원장의 자리에 계속 두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실제로 그가 민중당 운동의 시초부터 정책 부분의 책임자를 맡아 온 이 1년 동안 민중당의 연구 역량은 체중 미달의 상황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 운동의 연구 진영에서 민중당의 정책과 관련한 어떠한 주목할 만한 연구도 제출된 적이 없다.
그는 "러시아 혁명 이후 초기에는 강압적인 조건 아래 ... 생산력이 발전"했다고 하면서 혁명의 감격 속에 새 조국 건설에 떨쳐 나섰던 러시아 인민의 신성했던 노동 의지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생산수단을 ...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생산수단의 처분권을 자기가 (개인이-인용자) 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함으로써 노등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고통스런 것으로서 그 동기 유발은 사회적 생산, 대규모의 결합노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즉 노동인민이 원하는 것은 개인적 재부 뿐이라는 부르주아지의 경제학을 강의하고 그것을 맑스의 생각이었다고 우긴다. 이것은 『경제학-철학 수고』 를 한번만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경악할 왜곡이다. 그래 놓고 다시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의 생산력 발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시 노동자계급을 속물로 만드는데 이번의 왜곡은 현재 한국의 노동자계급을 향한다. "(러시아 혁명) 당시는 노동자계급이 진짜로 선진적이고 진보적이었어요. 지금은 어떤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그에게는, 그의 시대에게는 재수 없이 선진적이지 않고 진보적이지 않은 노동자계급이 주어진 것인가. 이것이 '70년대의 영웅 장기표'가 수배망을 누비면서 "평화시장에 관여"한 수삼년 활동의 결론인가. 아, 당시의 노동자계급이 "진짜로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계급이 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전위투사들의 생명이 바쳐졌던가. 대체 어느 땅의 노동자계급이 먼저 각오한 선진적 투사들의 각고의 투쟁 없이 저절로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계급으로 섰던가? 만약 어떤 운동가가 이 땅의 노동자계급이 애석하게도 아직 선진적이고 진보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럴수록 오히려 배전의 각오를 다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장기표씨는 마치 자기만이 득도하여 "권력대체세력을 형성, 제시"하는 관념에 도달한 것처럼 행세하고 "레닌주의에 입각해서 보면 이 인식에 도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아니 당신이 읽은 레닌과 다른 사람들이 읽은 레닌은 동명이인이던가? 더욱 지적해야 할 것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합법정당은 (통일전선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무명의 투사들, 즉 민중 투쟁이 이룩한 결론이지 어떤 개인의 사유가 순수 추상으로 도달한 결론은 절대 아니란 말이다.
장기표씨는 "민중당도 불법화될 수 있"다고 말하며 "저 놈들이 불법이라고 해서 안할 것 같으면 뭐 하려고 해요"라고 반문한다. 합법-비합법은 상황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은 상황이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말은 원론으로 들리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그의 총체적 결론이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 모두는 자기의 지휘에 따르라는 언명. 자기가 합법일 때는 당도 합법이요, 자기가 비합법일 때는 당도 비합법이란 말인가? 우리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비합법 당 건설운동[3]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는 "(당내의)지도급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앞으로 노동자계급 당을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이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비합법정파의 동지들이 받는 모든 탄압에 대하여 민중당의 중앙 권력은 그 흔한 "사상의 자유"라는 슬로건 하나 똑 부러지게 주장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는 시늉 한번 안했는가? 물론 민중 운동 진영의 각 부분은 상황에 대하여, 필요한 조직체의 우선 건설 순위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기의 지금의 조직만으로 다 할 수 있다거나 자기의 지금의 조직에 모두가 따르라는 것은 운동 진영 전체가 하나의 대오로 묶여야만 한다는 지상 명령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분열주의이며, 백보를 양보하여 자기 주도의 생각을 인정한다 해도 그렇게 야멸차게 비합법의 동지들을 그가 대담에서도 표현하고 있는 바의 그 "적"에게 팔아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민중당이, 모든 운동 진영이 "우리의 합법 정당"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되는 그런 모습으로 서기를 바란다.
4월 26일의 한국정치연구회 월례토론회에서 장기표, 우리 민중당의 정책위원장께서는 김세균 교수에게서 "몽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 받고, "'개혁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것을 내세우지 말고 이제까지의 변혁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라"[4]는 가르침을 받았다는데, 김세균 교수가 그의 구체적 입론 여하간에 대체로 침착하게 공부하는 원칙적인 학자로 평가 받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야 그의 말을 무겁게 듣지 않을 수 없고, 우리 당의 정책위원장이 밖에 나가 그런 소리나 듣고 다니는 이러한 상황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경대 열사 살해 사건 이후에 민중 운동 진영은 하나로 모였으며, 공개 반합법 운동 조직들은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은 이 와중에서 미리 해 오던 광역선거 준비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그것의 결과는 5월 투쟁에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 것이었다. 자기자신 투쟁으로 단련되고 그것을 통하여 민중당의 위신이 투쟁하는 민중 속에 우뚝 서기를 바란 당 실무자들을 비롯한 많은 당원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원성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민중당을 고개를 외로 꼰 채 바라보던 사람들이 드디어 민중당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낯 뜨거운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민중당 깃발 아래 모이기가 창피하다"는 것이 투쟁 대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당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으며, 가지고 나갔던 지구당의 깃발조차 감아 들고 풀 죽어 있는 당원까지 있었다. 많은 당원들이 당기와 상관 없이 행동했다. 민중당의 고문 백기완님이 "이 체제를 갈아 엎어야 한다. 민중이 주체되어 떨쳐 일어나자"고 포효하는 가두 투쟁의 현장에서, 백기완님을 사실상 당 밖으로 밀어냈으면서도 그가 민중당과 관계있는 듯이 눙치며 필요할 때마다 그의 위광 덕을 보려 하는 민중당은 그 사자후에 답하지 않았다.
5월2일의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광역선거 준비를 보류하고 5월투쟁에 총력대응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고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관심을 광역선거로 돌리려는 이 지배계급의 의도를 간파한 까닭이었다. 대책회의까지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려는 부르주아지의 광역선거 방침에 반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민중당의 중앙위원회는 선거 참여를 결정하였다. 결정 사항은 무조건 참여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바둑에서도 먼저 둔 수가 아까와 계속 악수를 둘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선거를 포기하기 곤란했던 여러 지구당들의 사정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광역선거 참여 결정 자체의 선악에 대하여서는 더 말하지 않기로 하겠다. 참여와 거부의 진영 구획이 현재의 당 개혁투쟁의 계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로서, 참여냐 거부냐의 논쟁을 재론하는 것은 우리의 당 개혁투쟁의 전선을 불분명하게 만들지 모른다. 이재오 사무총장이 이 참여 결정의 주도 인물임은 공지의 사실이고 그가 민중당의 주요한 결정의 고비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이 회의의 결정을 저 회의의 형식으로 뒤집는 것을 능사로 해 왔음[5] 또한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는 공식 기구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며 또한 거기서 선거 거부를 결정한 바 없다고 말할 것이다. 따라서 중앙위원회가 유일하게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기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바로 이 중앙위원회가 앞서 말한 대로 일정한 논리적 하자가 있는 조직이다. 정당의 최고 권력기구는 전당대회이다. 중앙위원회는 전당대회가 개최되지 않는 동안의 수임기구일 뿐이다. 그런데 민중당은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전당대회를 치러 본 적이 없다. 아직도 전당대회의 구성원인 대의원 규정이 없고, 그 대의원들을 선출할 당원의 자격조차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태는 당의 조직을 총괄 관리하는 사무총장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이 직무유기는 제대로 된 전당대회는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다수 당원 대중의 의사가 반영될 것이고 그 분위기가 소위 "좌파"적일 것을 그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이제까지의 중앙위원회를 자기가 강한 어조로 밀어 붙이면 대체로 다수결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구라고 그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중앙위원회를 개편하기 싫어서가 아닌가? 우리는 성원이 거의 비슷한 이 두 기구에 의한 상반되는 정치 방침이 일사부재리의 기초적 의사 원칙을 위배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데에 따르는 주요한 책임을, 아직도 당의 기본조직(전당대회)을 구축하지 못한 책임을 첫번째로 져야 할 직책은 당 조직의 총괄 관리직인 사무총장이다.
5월 27일, 비상중앙위원회의 광역 선거에 대한 결정은 후보가 있는 지역은 후보를 내고 후보가 없는 지역은 "대중 투쟁에 적극 결합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위 제한적 선거 참여였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되고 있는가? 지구당들은 각각의 견해에 따라 선거에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중앙당 집행 권력의 태도이다. 중앙당의 실무 역량 상당수를 특정한 지구당, 선거에 특별히 집착하고 있는 중앙당 당직자들의 지구당으로 파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지구당에는 선거를 안 하니까 역량 감소를 해도 된다면서 일부 중앙당 파견 간사들의 소환이 요구되고 있다. 또 후보를 내지 않는 지구당에 대하여 인접한 선거 참여 지구당에 인력 지원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당력을 총 집중하는 선거 참여가 당론이라면 이런 역량 배치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선거 거부를 주장한 당원이더라도 인접 지구당의 선거를 헌신적으로 도와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후보가 없는 지구당에서는 대중 투쟁에 적극 결합한다는 "당론"에 비추어 이런 역량 배치 요구가 합당한 일인가? 이것들이 중앙위원회라는 기구에 의한 당론을 껍데기 뿐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중앙당 집행 권력의 권력 남용, 당론 위배의 명명백백한 증거가 아닌가? 선거 참여의 명분 또한 '노 퇴진 투쟁의 추동'이었는데 현재의 선거 투쟁은 "참여한 이상 당선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지배하고 있다. 말로 선거혁명론을 부정한다고 해도 이러한 행동이 바로 선거혁명론 아닌가? 게다가 최근 신민당 대전 집회에서 연사로 참석한 김낙중 대표는 수만 군중 앞에서 "노태우가 물러가라고 물러갑니까? 안 물러갑니다. 선거를 통해서 정권교체해야 합니다. "라고 발언하였다. 김낙중 대표는 또 누구처럼 중앙위원회에서 "그것은 사견이었다"라고 해명할 것인가? 보수 정당의 집회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민중당의 대표로서 양심의 가책도 없는가?
당의 각 부문, 각 기관들이 지금까지 진출하는 대중 투쟁에 적극 결합하는 어떤 활동을 해 왔는가도 물어져야 한다. 당을 계급·계층 대중의 조직 역량에 역점을 두어 조직해 가야 한다는 것은 민중당의 창당 정신의 하나이다. 당이 선거와 대중 투쟁을 함께 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부문위원회 조직을 동원하여 대중 투쟁에 연대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당의 부문위원회 조직은 지금 선거를 돕기 위하여 선거를 치르는 지구당에 분산 배치된 채로 있다. 또한 중앙당의 각급 집행 기관들은 최근의 대중 투쟁에 어떤 식으로 응해 왔는가? 중앙당 선전국과 기관지 편집국의 활동이 선거용 홍보에 집중함으로써 『민중시대』를 비롯한 민중당의 각종선전물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민중당이 노태우 퇴진 대중 투쟁은 회피하고 총력을 기울여 선거에 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우리가 광역선거를 둘러 싼 당의 대응에서 문제로 삼는 것은 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결정한 노태우 퇴진 총력 투쟁의 방침과 중앙위원회의 일면 선거 일면 투쟁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민중당 중앙권력이 사실상 선거 준비에서 전혀 발을 뺀 적 없이 모든 운동 세력이 떨쳐 나섰던 5월 투쟁에서 독보적인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했던 사태와, 한번 정한 정치 방침이 인원 구성이 비슷한 다른 회의의 형식으로 그것도 민중당이 참여한 대책회의의 방침을 위배하면서 순식간에 뒤집어졌던 사태이다.
우리 당의 대표인 김낙중씨가 앞서 백기완님이 총력 투쟁을 선동했던 그 날 그 자리에서 민중은 야권 3당의 통합을 원한다고 진단하면서 마치 야권 통합이 민중당의 당론이라도 되는 듯이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경악하였다. 야권 3당의 통합을 원하는 사람이 민중당을 지지하는 사람보다 많다는 정도의 여론 조사 따위는 우리도 숱하게 보아 왔다.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그것이 새삼스런 일이라면 김낙중씨가 민중당에 참여하던 당시에는, 아니 더 소급하여 합법정당 창설 논의가 무성하던 당시에는 안 그랬단 말인가? 왜 모든 연사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총력 투쟁을 호소하던 그 자리에서 민중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야유를 받아가면서까지 3당 통합 운운해야 했던가? 또 장기표씨는 5월 23일의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공안통치 완전 종식을 위한 시국대토론회'에서 야권통합과 실제적 구별이 모호한 소위 "범국민대책회의를 중심으로 한 야권 3당과 재야 민주세력의 정치연합"을 주장하여 참석자들의 야유를 받았다.
물론 우리 자신 민중당의 외로운 투쟁으로 이 체제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다수의 반정부 세력과 연대해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든 연대 투쟁, 연대 조직들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민중 주체, 좀 더 현실적인 원칙으로 좁히면, 민중 진영의 독자성 유지이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모든 연대가 상층의 운동권 인사에게는 정치적 출세를 가져다 주었는지 모르지만 민중에게는 자신의 투쟁 성과가 부르주아지에게 돌아가는 억울함만을 주어 왔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말해야 하는가? 이런 인식의 결론이 앞서 말한 대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합법 민중 정당 아니던가?
지금 공개 운동권에 조직 재편, 새로운 이합집산의 논의가 무성하다. 민중당 운동에 관해서도 친 보수야당적인 인사들과의 단일조직 건설 등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실무자 회의의 수준에서 책임 있는 고급 정보를 입수하여 폭로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이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관련된 정보들을 모아나갈 것이다.
현재의 모든 야권통합 주장이라는 패에는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카드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순진한 백치는 없을 것이다. 몇몇 상층인사의 의원직과 민중의 합법정당이라는 역사의 과제를 맞바꾸는 데에까지 이르게 될 그 사태의 결말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아, 민중의 힘의 성장을 기다러 국회의원이 되길 기다릴 만큼의 최소한의 양심의 선마저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지금 민중당 안에 있다.
우리는 부족한 논거를 가지고도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결의 만큼은 분명히 해야겠다. 저지해야 한다. 최소한 그들이 '민중당의 간판을 가지고' 부르주아 정치꾼 정당으로 넘어가는 것만은 저지해야 한다. 상식을 가진 운동가라면 몇몇 상층인사들이 넘어간다고 해서 실망하랴마는, 그들이 이 간판까지 가져가려는 기도만은 기필코 저지해야 한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역사의 요구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태에 실망했다는 이유로 개별적으로 당을 떠나려는 생각들은 자제되어야 한다. 민중당의 개혁을, 진정한 민중정당의 건설을 염원하는 모든 동지들은 지금 뭉쳐야 한다. 민중당 개혁파의 전국적 전 부문적 대오를 지금 즉시 형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숭고한 민중 투쟁의 역사가 우리에게 제기한 요구,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하나된 투쟁에 떨쳐 나서야 한다.
촉박한 시간에 작성되는 이 글이 실무자 회의 자체의 결정과 요구에 따르는 생생한 다량의 폭로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해와 용서를 구하며, 민중당이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민중당의 개혁에 한 몸 던지려는 결의를 검토하는 모든 실무자 동지들께 먼저 만난 실무자 동지들의 세 번의 회의가 결정한 행동 방침과 구체적 결의 사항을 전하면서 부족한 글을 맺으려 한다.
1. 우리는 당이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당의 실제적 주인이면서도 마치 국외자처럼 주요 당 방침의 결정 때마다 우리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에 무기력한 채로 삼삼오오 불만의 술자리에 그치고 말았던 우리 자신의 비주체적 태도를 반성한다.
2. 우리는 민중당의 개혁이 소위 당권파가 항상 강요하는 "공식적 의사결정 구조"나 "공식적 의견 전달 통로" 로는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위 "공식적"이라는 수식어에 더이상 연연하는 것은 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가 불철저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간주할 길이 없다고 선언한다.
3. 우리는 이 상황의 극복이 사소한 불만들의 개별적 표현에 힘입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민중당에 개혁의 새바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개인, 모든 부문의 단일한 대오에 의한 민중당 개혁 투쟁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단일 대오의 표현 형식으로 (가칭) <민중당 개혁 추진 회의>를 구성할 것을 개혁을 원하는 당내 모든 개인, 모든 부문에게 촉구한다.
4. 그것을 위하여 실무자들이 먼저, 당적과 관련한 운명까지도 함께 하기로 각오하는 동지적 연대의식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먼저 만난 사람들끼리 <민중당 개혁을 위한 실무자 회의>를 구성하였으며 같은 의지로 나서고자 하는 실무자 동지 여러분의 참여를 뜨거운 가슴으로 촉구한다.
5. <민중당 개혁을 위한 실무자 회의>와 (가칭) <민중당 개혁 추진회의>는 민중당을 사당화하고 있는 세력과의 이론 투쟁을 조직하고, 당 강령을 위배한 사례들에 대하여 당기위원회에 제소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소집하기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사항들을 실현해갈 실물적 힘의 표현으로서 (가칭) <민중당 열성자 대회>를 조속한 시일 안에 개최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1991년 6월 6일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 ↑ 당헌 제10조에는 중앙위원회 또한 대표위원을 비롯한 당연직 중앙위원 외에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지구당이 선출한 중앙위원"으로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 ↑ '당규 제4호 : 지방조직 규정' 중 제16조 지구당 대의원대회
- ↑ 위키 편집자 주 : 이것은 당시 노회찬이 이끌던 '인민노련'이 준비하고 있던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을 의미하는 것이다.
- ↑ 한겨레신문 재인용
- ↑ 지난 창당대회 직전에 백기완 당수 체제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던 창준위 상임위의 결정은 어떻게 뒤집어졌던가? 그 결정에 의거하여 일부 상임위원들이 백기완님을 찾아 갔을 때 그는 사실상 수락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소집된 비상상임위원회에서 이우재씨가 돌연 사표를 제출하여 상임위원들을 위협했으며 당이 출범하기도 전에 좌초할 것을 염려한 다수 상임위원들의 소심한 판단에 의하여 상임위원회는 백기완, 이우재, 김낙중의 3인 공동대표제를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앞서의 결의를 번복하였다. 이는 일사부재리의 기본적 의사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또 이러한 상임위원회의 제안에 1차 중앙위원회가 격론을 벌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여 재소집된 2차 중앙위원회는 의사정족수가 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차 중앙위원회에서는 선례가 없었던 의결권 위임이라는 방식을 동원하여 이재오씨, 이우재씨 등이 여러 표씩을 행사함으로써 상임위의 수정된 3인 공동대표제(백기완 배제, 이우재-김낙중-김상기)를 비롯하여 창당대회에서의 무표결 등의 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누가 있었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누가 감히 민중당에서 이런 잡한 권모술수가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출처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민중당은 개혁되어야 한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6일, 2024년 12월 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1
관련 문서
참고 문헌
- 사회평론 창간호 (1991년 5월호) - https://www.laborsbook.org/new/book.php?uid=62&no=5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