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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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주대환이 발표한 문건. 이 문건을 시작으로 인민노련의 <노동계급 지하 정당 건설 노선><합법적 노동자 정당 건설 노선>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노선 전환을 통칭 '신노선'이라고 부른다.
1991년 주대환이 발표한 문건. 이 문건을 시작으로 인민노련의 '노동계급 지하 정당 건설 노선''합법적 노동자 정당 건설 노선'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노선 전환을 통칭 '신노선'이라고 부른다.<ref> 이광호, [http://aladin.kr/p/v4VIB 『노회찬 평전』], 사회평론, 2023. pp.195-200.</ref>
 
== 주의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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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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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이 시점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으며, 창립대회 이후 회사의 노선으로 되어 있는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대중의 지지를
  1. 나는 이 시점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으며, 창립대회 이후 회사의 노선으로 되어 있는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획득하는 문제다.
 
   (1)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문제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그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는 세 개의 난관이 있다. 달리 말해서 그 과정에는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문제가 있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그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는 세 개의 난관이 있다. 달리 말해서 그 과정에는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지하조직들을 만들어 활동해온 인텔리겐챠 사회주의자들을 하나의 큰 조직으로 모으는 문제이다. 항상 경찰의 추적을 피하며 활동해야 하는 조건은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뭉쳐나가는 것을 기본적으로 막아왔으며, 그렇지 않아도 많은 약점을 가진 유아기의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분산시켜왔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결집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회사의 창립과 동시에 해결의 큰 실마리를 풀었거나 반은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문제는 우리에게 크게 어렵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문제는 어차피 당장 완전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즉 현시점에서 이 문제의 해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우리가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하여 강력한 권위와 인력을 만들어내어야만이 현재의 객관적 한계를 넘어 이 문제의 거의 완전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추진 중인 몇 그룹의 합류를 늦어도 연말 안에 마무리지은 후에는 당분간 이 문제를 중심적인 과제로 생각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첫째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지하조직들을 만들어 활동해온 인텔리겐챠 사회주의자들을 하나의 큰 조직으로 모으는 문제이다. 항상 경찰의 추적을 피하며 활동해야 하는 조건은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뭉쳐나가는 것을 기본적으로 막아왔으며, 그렇지 않아도 많은 약점을 가진 유아기의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분산시켜왔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결집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회사의 창립과 동시에 해결의 큰 실마리를 풀었거나 반은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문제는 우리에게 크게 어렵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문제는 어차피 당장 완전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즉 현시점에서 이 문제의 해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우리가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하여 강력한 권위와 인력을 만들어내어야만이 현재의 객관적 한계를 넘어 이 문제의 거의 완전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추진 중인 몇 그룹의 합류를 늦어도 연말 안에 마무리지은 후에는 당분간 이 문제를 중심적인 과제로 생각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둘째는 그간의 계급투쟁이 배출한 선진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을 조직의 중심적 주체로 세우며 나아가 조직의 기풍과 체질을 프롤레타리아화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우리는 지금까지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표현으로도 말해왔는데 말하자면 주로 선전활동으로 해결할 문제이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부족하나마 다소간의 경험도 가지고 있으며 활용할 기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문제의 해결을 중심적 과제로 설정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이 방면에서 착실한 성과를 얻고 있다.이 문제 역시 현재의 활동역량이나 방식으로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겠으나 그 한계내에서는 꾸준히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얻을 것이다.
   둘째는 그간의 계급투쟁이 배출한 선진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을 조직의 중심적 주체로 세우며 나아가 조직의 기풍과 체질을 프롤레타리아화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우리는 지금까지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표현으로도 말해왔는데 말하자면 주로 선전활동으로 해결할 문제이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부족하나마 다소간의 경험도 가지고 있으며 활용할 기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문제의 해결을 중심적 과제로 설정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이 방면에서 착실한 성과를 얻고 있다.이 문제 역시 현재의 활동역량이나 방식으로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겠으나 그 한계내에서는 꾸준히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얻을 것이다.
   세째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문제이다. 노동자대중이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로 인정할 때만이 명실상부한 노동자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말하자면 주로 선동활동을 통해 해결할 문제인데, 세 문제 가운데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며 특히 우리에게는 어려운 문제로 되어있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가 좁은 폭으로 제한되어 있는 우리의 활동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세째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문제이다. 노동자대중이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로 인정할 때만이 명실상부한 노동자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말하자면 주로 선동활동을 통해 해결할 문제인데, 세 문제 가운데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며 특히 우리에게는 어려운 문제로 되어있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가 좁은 폭으로 제한되어 있는 우리의 활동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세계적인 사회주의운동의 위기라는 시대적 환경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난관을 돌파하지 않고서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교과서도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부터 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 문제이며 가장 창조적인 자세로 연구해야 할 문제도 이 문제이다.
인한 세계적인 사회주의운동의 위기라는 시대적 환경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난관을 돌파하지 않고서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교과서도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부터 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 문제이며 가장 창조적인 자세로 연구해야 할 문제도 이 문제이다.
   창립대회는 회사 존재의 공개와 그 이름을 내건 활동을 유보하되 스스로 그 시기를 정하지 않고 이사회에 시기결정의 권한을 위임하였다. 창립대회의 결의는 당분간 첫째, 둘째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여 일정한 성과를 얻은 후에 그 성과 위에 세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계획, 바로 그것이다.또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결정의 권한을 이사회에 위임하였으나, 광범한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 공개적 활동을 개시하기에는 자금, 조직역량 등 모든 조건에서 회사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우리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된다든지 하지 않는 한) 신중한 발걸음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창립대회의 암묵적 합의였다. 그런데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창립대회 당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몇 배나 더 힘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솔직히 말해서 사노맹처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허황된 말로 선동하고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의 관심을 끄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 시대에 지하 조직이 스스로의 존재나 주의주장을 대중에게 광범하게 알리기도 힘들다. 이 점은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우리의 주관적인 결의로 뛰어넘을 수 없는 객관적 한계를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창립대회는 회사 존재의 공개와 그 이름을 내건 활동을 유보하되 스스로 그 시기
 
  (2)창립대회의 결의에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노동자정당의 건설 문제에 대해서 김대중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정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정당법의) 법정 지구당 문제나 국가보안법같은 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또 무엇보다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자정당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처음에 페비안협회를 창립하여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한편, 자유당을 지지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확보해나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노동당을 창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바로 노동당을 창당할 줄 몰라서 자유당을 지지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봅니다. 적어도 자기 정당을 가지려면 정치적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것 같습니다. "(주간전국노동자신문 1991년 9월 27일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김대중의 지론인데 선노론자들의 시기상조론이나 장명국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견해와도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이하에서 이들 모두를 시기상조론이라 칭하겠다)
  그러면 이런 류의 시기상조론적인 생각들에는 전혀 현실을 반영하는바가 없는가? 아니다. 현실의 한 측면을 방영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도 충분히 깊이 인식해야 한다.
  시기상조론은 노동조합이 충분히 발전한 후에 그 힘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그들 사고의 일면성을 잘 알고 있다.우리는 '노동조합 먼저 노동자정당 나중'이라는 생각에는 명백히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87년이래 계급투쟁이 낳은 유명한 대중적 지도자들을 노동자정당의 한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법, 그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울산에서는 권용목씨가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정당이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거꾸로 권용목씨가 참여할 때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단병호위원장이 지지한다면 노동자정당이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쉬울 것이다.그래서 회사는 각지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우리는 이 분들에게 우리의 관점과 사상을 선전하고 우리의 노동자정당 창당의 계획을 설명하고 참여의 당위를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의 성과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빠트려서는 안될 문제가 있다. 그 분들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데 까지는 비교적 쉬운 일이나(우리의 주장은 바로 그 분들이 경험으로 절감했던 것들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직접 노동자정당 건설에 한 주체로 참여하는 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분들에게는 이미 대중운동의 지도자로서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있다.그런만큼 전노협 등 노동조합운동 자체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일정한 안정성을 획득해야만 그 분들도 노동자정당 건설에 자유스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즉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 창당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3)회사가 어떤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첫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비단 회사의 운명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참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무겁다. 지금 현존사회주의의 위기로 일대 혼란에 처한 '운동권'은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다. 모두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의 책임이 무겁다. 또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의 앞길은 상당 기간 동안 험난하기 비할 데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견지할 확신의 노선을 선택해야 하며 충분한 논의로 야무진 결의를 모아야 한다. 이런 점들에 생각이 미칠 때 아무래도 우리의 창립대회를 전후한 논의과정은 충분히 철저하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모든 논점들이 뚜렷이 부각되어 모든 사원이 대회결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대의원의 3분의1이 창당준비위원회라는 명칭에 반대하고 그 전단계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건설추진위원회 또는 건설준비위원회라는 명칭을 당분간 사용하자는 안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이 소수 의견에게는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사정들 또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노선 자체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4)창립대회 이후에 커다란 정세 변화가 있었다.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정세의 변화를 추적하고 주체적 역량을 파악하여 공개적 활동개시 시기를 결정할 판단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에 있었던 정세변화는 남북한의 유엔가입, 소련에서의 쿠데타와 소련공산당의 해체, 부르주아 야당의 통합 등의 사건으로 대표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은 역시 소련공산당의 해체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우리의 활동조건을 크게 바꾸어놓았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운동이 이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강령과 전술을 바꾸고 있다. 사실 세계사회주의운동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새출발하는 시점이 세계사회주의운동이 완전히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새출발 역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새출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노맹이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활동방식, 조직체계, 당건설 전망 등에 이르는 총체적 혁신을 통해 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태어나는 과제는 사노맹만의 것이 아니고,전체 사회주의진영이 공동으로 떠맡아야할 중대한 과제.... "(말지 10월호 111쪽)라고 읖조리고 있는 것을 보라. 이 말이 우리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옳지 못하나, 말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그간에 회사의 존재 및 활동계획이 경찰에 알려지는 예기치못한 사고도 있었다. 이 사고에 의해서 회사창립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경찰의 공격이 앞당겨지고 광범해지게 되었다. 요컨대 회사는 창립대회 당시의 예상보다도 더 좋지못한 조건에서 향후 진로를 모색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창립대회에서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합의하고 결정한 사항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않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5)창립대회의 결의는 전통적 사고에 입각해 있다.
 
  우리 운동의 역사는 짧지만 하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무시하면서 운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이 전통에 나름대로 충실했던 흐름들이 합류하여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 역시 그 전통에 입지하고 있다. 이 전통은 외부의 비판자들에 의해 '레닌주의'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파쇼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하고 투쟁해온 우리의 땀과 눈물이 섞여있는 우리의 전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규정이 전혀 무근거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또한 엄격히 말하면 틀렸다. 우리가 20세기 초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의 '낡은' 이론에서 뭔가 영감을 얻으려 했던 것은 러시아혁명 이래 러시아혁명이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어온 전통을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처하고 있던 조건이 그 시대 러시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혁명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처하고 있는 조건이 혁명 당시 중국과 비슷하기 느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 머리로 생각하려 했고 창조적으로 우리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토양에 발을 딛고, 70년대 이래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풍토안에서 레닌적 개념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 점이 우리를 씨에이-사노맹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피상적 관찰자들은 흔히 그 차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닌주의적인 실천을 해왔다고 하는 규정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든지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은 어디까지나 70년대 이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전통이며 또한 87년 이래 우리가, 그리고 노동운동의 많은 운동가들과 그 집단들이 만들어온 우리 나름의 전통이다.
  우리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를 결성한다고 결의한 것은 철저히 우리의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의를 다수가 무리없이 수용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가장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체, 거듭된 좌절에도 아무런 새로운 고민도 하지 않은 체 짐짓 변함없이 우리의 과거 노선을 고수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으나 전통 역시 하나의 힘이라는 고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전통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6)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는 1987년 이전 시대의 유물도 섞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너리즘이나 굳은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정치상황은 전형적인 '개발독재' 였으며 '종속파시즘체제'였다. 이 폭압통치 기간을 통해서 한국 자본주의는 양적 성장과 질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운동이 싹트고 자라나온 밭은 이 시대의 이른바 '민족민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이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형성된 관습과 관념을 아직도 많이 물려받고 있다. 예를 들면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는 정치적 자유의 한계상황에서 잡혀들어가는 것, 구속되는 것이 운동이었고 투쟁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운동은 선전가도 선동가도 조직가도 키우지 못했다. 요컨대 유능한 정치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다만 지사를 키웠을 뿐이다. 지사는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고 독불장군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질이 다소간 남아있다. 또다른 예를 든다면 [[민중당]]을 무시하고 백안시하는 '운동권'의 태도에는 어떤 이론적 근거보다는 1972-87년이라는 시대에 형성된 관념과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두 개의 큰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그 하나는 국내적인 변화로 1987년의 대변화였다. 그리고 그 둘은 1989년부터 개시되어 1991년 여름에 그 극에 달한 세계사적 대변혁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 두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89년 10월에 구속된 동지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하는 문제에서 주저했었는데 그 때 그 동지들은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임을 인정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형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동지들은 87년 이전 시기에 형성된 관습-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고 용공조작이라고 반박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관습-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설사 형량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쨌든 그 관습은 연이어 구속된 여러 동지들에 의해 이제 완전히 타파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관습의 강한 힘이며 그것을 깨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사회주의자를 '빨갱이'라고 하면서 뿔달린 사람으로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물론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자가 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지독한 레드콤플렉스의 시대 역시 갔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회주의를 선전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잡아가두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이다. 같은 법률도 시대와 사회적 통념이 바뀌면 해석이 달리 되고 적용이 달리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금도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많은가? 아마 북한과 관련되어서는 과거와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관련해서는 분명히 달라졌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요즈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조직의 활동 내용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구속하지 못했을 그런 내용이다. 비밀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 활동내용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므로 경찰이나 검찰이 이적행위를 한 이적단체라고 규정하면 그런가 보다하고 큰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것이다. 지하조직=이적단체 내지는 반국가단체, 이것은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요 사회적 통념이다. 이것은 지하조직활동=혁명적 활동, 비밀활동=혁명적 활동, 비합법투쟁=혁명적 투쟁, 이런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운동권의 굳은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다. 이 낡은 관습과 사회적 통념은 새로운 실천에 의해 타파되어야한다. 만약 [[민중당]]이 사회주의를 지향함을 강령에 명시한다든지 당명에 명시한다고해서 정부가 [[민중당]]을 불법화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거꾸로 뒤집어보면, 요즈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의 조직활동 내용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굳이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전 조직원을 구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그럴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이적단체사건들은 관성에 의한 행동이며 그 활동내용을 문제삼는다기 보다 안보이는 곳에서 했다는 것을 문제삼는 듯하게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굳이 지하에서 할 필요가 없는 활동을 지하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기괴한 현상들은 이 과도기의 시대적 특징이며, 행위자들 스스로도 그 의미를 정확히 몰라 헛갈리면서 일관성 없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들은 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도 지금은 필요없게 된 구시대의 유물이 혹시 있지나 않는가 살펴보자는 뜻에서 다소간 현실을 단순화 내지는 과장한 측면도 있다.그러나 이런 새로운 관점으로 한번쯤은 창립대회의 결의에도 구시대의 유물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나는 00지역 신입사원 동지의 "회사는 언제까지 지하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 지하활동만 계속해서는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00지역의 간부동지로부터 노동운동의 대중적 지도자들을 회사로 인입하기 위한 계획과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00지역 간부 사원들과 회사의 발전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보았다.그것은 다음과같다.
  "회사의 공공연한 활동의 개시는 총선 시기에 한다. 총선 시기에 회사를 공개하고 대선에서 [[민중당]](총선에서 당이 해체된다면 아마 민중정당재건 추진위원회가 될 것이다)과 공동후보(백기완?)를 추대하여 100만표 이상을 획득하여 정치적 입지를 만든다.이 전 기간 동안 꾸준히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유명한 지도자들을 설득, 결집하여 대선 이후에 창준위, [[민중당]] 좌파, 노동운동의 지도자들 이 3요소를 결합하여 '한국노동당'을 창당한다." 여기서 당명의 부분은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광범하게 참여시키기 위해서라면 '사회주의'를 당명에 넣지 않는 선까지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상상화가 하나의 구상이 되기에는 헛점이 많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견지해왔던 '노동자정당의 건설경로'에 대한 생각의 구체화, 현실화이면서 동시에 상당히 변화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체화 및 현실화와 변화는 기획부의 두 동지들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한 문제제기에 접하면서 그와 화합하여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전략구상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는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발전시키고 견지해왔던 전략에 의거하고 있다. 그 전략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운동의 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면서 사회민주주의적 내지는 혁명적 민주주의적 좌익 세력들과 연대한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기 위해 우리는 지하조직을 해소하지 않고 독자적 창당을 준비해왔으며, 다양한 좌익 세력들과의 연대를 위해 우리는 [[민중당]]에 참여해왔다. 여기서 재검토가 요구되는 부분은 '독자성의 고수'라는 부분이다. 과연 이 시대에 우리가 처한 주객관적 조건속에서 맑스주의자가 독자적으로 대중적 기초를 가진 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아니 최초로 실제적인 문제로서 직면하게 되었다. 영원히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앞으로 수년간은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동지들이 있다. 만약 그 동지들의 생각이 올바르다면 수년 동안 사민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좌익 세력들과 하나의 당안에서 동거하면서 공생을 도모하는 방법은 어떤가? 그런데 이것은 노동자정당 건설에 대한 새로운 전략 개념을 요구한다. 그 새로운 전략개념은 "사회민주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좌익세력들과 연합하여 하나의 대중정당을 만든 후에 조직적 독립을 도모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맑스주의자가 자신의 힘이 미약하거나 조건이 불리할 때 하나의 섹트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좌익 세력 또는 다른 사상을 가진 노동운동세력과 어울려 하나의 당을 만들어 대중적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전략을 쓴 것은 제1인터내셔널 이래 흔하게 있었던 일이다. 특히 19세기의 유럽에서는 이런 전략을 통해서 맑스주의는 노동운동의 지배적 조류로 서서히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조류들과 공존, 공생하는 방법을 통해 우리의 세력이 미약하고 상황이 불리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전략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뭔가 좀 해보려면 우리를 가로 막아왔던 보위문제는 다시금 우리의 앞길에 커다란 장애로 나타나고 있다. 항상 보위문제는 우리에게 넘어야할 또하나의 장애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번번이 이 장애에 걸려서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으며, 그래서 조직 자체의 활동은 매우 빈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실제활동은 다른 합법 또는 '반합법'조직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직의 지도중심은 지하에 있어 햇볕도 못보고 신선한 공기도 숨쉬지 못하니 정보는 늦고 감각은 뒤쳐져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해내기가 어려웠다. 이것은 우리의 활동방식이 가진 최대의 모순이었다.
  "지하조직운동으로 세력을 키운 후에 합법성쟁취로 나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계획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전술방침은 말하자면 정면돌파 즉 '우리 입장을 밝히고 선전하며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탄압에 장기적으로 저항하여 이를 극복해내는 것'이었다. 전술을 도덕이 아니라 과학으로서 대하는 기본태도로 이 기본계획과 전술방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정면돌파가 아닌 우회전술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본다. 보위문제를 활동방식의 변화로서 보다 근원적으로 해결- 구체적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 국가보안법이든 뭐든 적용하는 조건에서 활동하게 됨으로써 지금처럼 조직전체의 보위문제가 항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더욱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의 변화 가능성에 큰 관심을 갖게 하였다.
  새로운 전략개념을 현재 조건에 적용해보면 "민중당과 (총선전에) 합당을 하여 합법성을 획득하고 민중당을 장기적으로 노동자정당으로 전화시켜나간다"는 계획이 도출된다. 이러한 계획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는 예를 들면 [[민중당]]이 지금 내어놓고있는 '새로운 민중정당의 건설' 제안에 호응하는 형식을 취해 (1)[[민중당]] 현지도부의 전원 사퇴와 전당대회의 개최 (2)당명을 노동당으로 개칭 및 강령과 규약의 개정 (3)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그 핵심은 당내 세력분포를 반영하는 지도부,의결기관 구성이다) 등을 조건으로 회사의 중심적 역량이 [[민중당]]에 입당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합당의 형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싫으면 정정당당히 회사를 공개하고 [[민중당]]과 합당교섭을 벌여 정부의 인내심과 [[민중당]] 지도부의 용기를 시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렇게 회사의 중심역량이 합법공간으로 진출한 후, 회사의 지도중심을 합법정당 내로 이동시켜 나가면서도 수배자 등 일부는 당외에서 말하자면 비밀당원으로(각지역의 조직가, 선전가로) 활동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를 정하지 않고 이사회에 시기결정의 권한을 위임하였다. 창립대회의 결의는 당분
간 첫째, 둘째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여 일정한 성과를 얻은 후에 그 성과 위에 세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계획, 바로 그것이다.또
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결정의 권한을 이사회에 위임하였으나, 광범한 선동
의 단계로 넘어가 공개적 활동을 개시하기에는 자금, 조직역량 등 모든 조건에서 회
사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우리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정세가 급박하게 전
개된다든지 하지 않는 한) 신중한 발걸음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창립대회의
암묵적 합의였다.그런데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창립대회 당시 우리가 생각했
던 것보다도 몇 배나 더 힘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솔직히 말해서 사노맹처럼 비정
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허황된 말로 선동하고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의 관심을
끄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 시대에 지하 조직이 스스로의 존재나 주의주장을 대중에
게 광범하게 알리기도 힘들다. 이 점은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우리의
주관적인 결의로 뛰어넘을 수 없는 객관적 한계를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2)창립대회의 결의에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이 충분히 고
려되지 않았다.
노동자정당의 건설 문제에 대해서 김대중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만든다
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이치에 맞습니다.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는 전혀 맞지 않
는 이야기입니다.왜냐하면 노동자정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정당법의) 법정 지
구당 문제나 국가보안법같은 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또 무엇보
다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노동자정당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 · 영국의 노동자들은 처음에 페비안협회를 창립하여 진보적인 정
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한편, 자유당을 지지하면서 자신
들의 권익을 확보해나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노동당을 창당하
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바로 노동당을 창당할 줄 몰라서 자유당을 지지했을까요?아
닙니다. ····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봅니다.적어도 자기 정당을 가지려면 정치적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것
같습니다. "(주간전국노동자신문 1991년 9월 27일자)라고 말하고 있다.이는 김대중의
지론인데 선노론자들의 시기상조론이나 장명국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견해와도 기본
적으로 일치한다. (이하에서 이들 모두를 시기상조론이라 칭하겠다)
그러면 이런 류의 시기상조론적인 생각들에는 전혀 현실을 반영하는바가 없는가?
아니다. 현실의 한 측면을 방영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기상조론
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도 충분히 깊이 인식해야 한다.
시기상조론은 노동조합이 충분히 발전한 후에 그 힘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그들 사고의 일면성을 잘 알고 있다.우리는 '노동조합 먼저
노동자정당 나중'이라는 생각에는 명백히 반대한다.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
고 87년이래 계급투쟁이 낳은 유명한 대중적 지도자들을 노동자정당의 한 주체로 참
여시키는 방법,그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울산에서
는 권용목씨가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정당이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거꾸로 권용목씨가 참여할 때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노동자정당으
로 인정받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단병호위원장이 지지한다면 노동
자정당이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쉬울 것이다.그래서 회사는 각지역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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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우리는 이 분들에게 우리
의 관점과 사상을 선전하고 우리의 노동자정당 창당의 계획을 설명하고 참여의 당위
를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의 성과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그
러나 여기서 우리가 빠트려서는 안될 문제가 있다.그 분들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지
지하게 만드는데 까지는 비교적 쉬운 일이나(우리의 주장은 바로 그 분들이 경험으
로 절감했던 것들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직접 노동자정당 건설에 한 주체
로 참여하는 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그 분들에게는 이
미 대중운동의 지도자로서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있다.그런만큼 전노협 등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일정한 안정성을 획득해야만 그 분들
도 노동자정당 건설에 자유스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점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즉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 창
당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3)회사가 어떤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첫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비단 회사의 운명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참
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무겁다. 지금 현존사회주의의 위기
로 일대 혼란에 처한 '운동권'은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다.모두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의 책임이 무겁다. 또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의 앞길은 상당 기간 동안 험난하기 비할 데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견지할 확신의
노선을 선택해야 하며 충분한 논의로 야무진 결의를 모아야 한다. 이런 점들에 생각
이 미칠 때 아무래도 우리의 창립대회를 전후한 논의과정은 충분히 철저하게 진행되
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모든 논점들이 뚜렷이 부각되어 모든 사원이
대회결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여지가 있는 것
이다. 더욱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대의원의 3분의1이 창당준비위원회라는 명칭에 반
대하고 그 전단계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건설추진위원회 또는 건설준비위원회라
는 명칭을 당분간 사용하자는 안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이 소수 의견에게는 현시점
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사정들 또
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노선 자체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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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 이러한 노동자정당 건설의 새로운 전략개념과 그에 입각한 새로운 행동계획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논의의 심화를 위해 예상되는 의문에 대해서는 미리 답변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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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창립대회 이후에 커다란 정세 변화가 있었다.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정세의 변화를 추적하고 주체적 역량을 파악하여 공개
적 활동개시 시기를 결정할 판단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에 있었던
정세변화는 남북한의 유엔가입, 소련에서의 쿠데타와 소련공산당의 해체, 부르주아
야당의 통합 등의 사건으로 대표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은 역시 소련공산
당의 해체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우리의 활동조건을 크게 바
꾸어놓았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모든 나
라의 사회주의운동이 이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강령과 전술을 바꾸고 있다.사실 세계사회주의
운동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새출발하는 시
점이 세계사회주의운동이 완전히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과 일
치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새출발 역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사회주의운동의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노맹이 " 사회주의 사상
새출발의 일부가 ····
으로부터 활동방식,조직체계, 당건설 전망 등에 이르는 총체적 혁신을 통해 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태어나는 과제는 사노맹만
의 것이 아니고,전체 사회주의진영이 공동으로 떠맡아야할 중대한 과제.... "(말지
10월호 111쪽)라고 읖조리고 있는 것을 보라. 이 말이 우리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
서는 옳지 못하나, 말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그간에 회사의 존재 및 활동계획이 경찰에 알려지는 예기치못한 사고도 있었
다. 이 사고에 의해서 회사창립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경찰의 공격이 앞당겨지고 광
범해지게 되었다. 요컨대 회사는 창립대회 당시의 예상보다도 더 좋지못한 조건에서
향후 진로를 모색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창립대회에서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합의하고 결정한 사항까지
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않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논의하
지 않을 없게 하고 있다.
(5)창립대회의 결의는 전통적 사고에 입각해 있다.
우리 운동의 역사는 짧지만 하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무시하면서 운
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이 전통에 나름대로 충실했던 흐름들이 합류하
여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 역시 그 전통에 입지하고 있다. 이 전통은 외부의
비판자들에 의해 '레닌주의'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파
쇼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하고 투쟁해온 우리의 땀과 눈물이 섞여있는 우리의
전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규정이 전혀 무근거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또한 엄
격히 말하면 틀렸다. 우리가 20세기 초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의 '낡은' 이론에서
뭔가 영감을 얻으려 했던 것은 러시아혁명 이래 러시아혁명이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
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어온 전통을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처하
고 있던 조건이 그 시대 러시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공산주의자들이 중
국 혁명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처하고 있는 조건이 혁명 당시 중국과 비슷하기 느꼈기 때문인 것과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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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전위조직노선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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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 머리로 생각하려 했고 창조적으
로 우리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토양에 발을 딛고,70년대 이
래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풍토안에서 레닌적 개념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 점이
우리를 씨에이-사노맹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피상적 관찰자
들은 흔히 그 차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닌주의적인 실천을 해왔다고 하는 규정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
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든지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
통은 어디까지나 70년대 이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전통이며 또한 87년 이래 우리
가,그리고 노동운동의 많은 운동가들과 그 집단들이 만들어온 우리 나름의 전통이
다.
우리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를 결성한다고 결의한 것은 철저히 우리의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의를 다수가
무리없이 수용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
다. 우리는 가장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체, 거듭된 좌절에도 아무런 새로운 고민도
하지 않은 체 짐짓 변함없이 우리의 과거 노선을 고수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
으나 전통 역시 하나의 힘이라는 고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전통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6)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는 1987년 이전 시대의 유물도 섞여있다. 그러므로 우
리는 메너리즘이나 굳은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정치상황은 전형적인 '개발독재' 였으며 '종속파시즘
체제'였다. 이 폭압통치 기간을 통해서 한국 자본주의는 양적 성장과 질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운동이 싹트고 자라나온 밭은 이 시대의 이른바 '민
족민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이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형성된 관습과
관념을 아직도 많이 물려받고 있다. 예를 들면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는 정치적 자
유의 한계상황에서 잡혀들어가는 것, 구속되는 것이 운동이었고 투쟁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운동은 선전가도 선동가도 조직가도 키우지 못했다. 요컨대 유능한 정치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다만 지사를 키웠을 뿐이다. 지사는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고
독불장군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질이 다소간 남아있다. 또다른 예를 든다
면 민중당을 무시하고 백안시하는 '운동권'의 태도에는 어떤 이론적 근거보다는
1972-87년이라는 시대에 형성된 관념과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두 개의 큰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그 하나는 국내적인 변화로 1987
년의 대변화였다. 그리고 그 둘은 1989년부터 개시되어 1991년 여름에 그 극에 달한
세계사적 대변혁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 두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89년 10월에 구속된 동지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선언
하는 문제에서 주저했었는데 그 때 그 동지들은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있
다. 사회주의자임을 인정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형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는 것을 그 동지들은 87년 이전 시기에 형성된 관습-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고 용공
조작이라고 반박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관습-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다. 물론 설사 형량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지만,어
쨌든 그 관습은 연이어 구속된 여러 동지들에 의해 이제 완전히 타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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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금까지 '전위조직노선'이라는 말로서 표현되어온 것은 소수정예주의이며, 혁명가집단으로서의 당이다. 당이 엄혹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소수정예주의로 가게 된다. 그러나 당이 대중과의 결합도를 높이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직업적 혁명가'에 한정되어서는 안되고 일정한 한계내에서는 가능한 한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당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러시아사민당(볼세비키) 자신에 대해서도 1905년 혁명기에는 이른바 '전위조직노선'이라는 기준을 들이댈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이사회가 지금까지 강조해온 노동자에게 보다 문턱이 낮고 친근한 조직은 이 '전위조직노선'으로부터의 탈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위조직노선'과 '대중조직노선'을 대립시켜 사이에 뛰어넘지 못할 심연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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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지금 합법노동당으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입당하려고 하겠는가? 아마도 선진노동자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이 범위는 지금 우리 회사 기준으로 본다면 관련 노동자 (견습사원 후보) 에서 약간 벗어나는 정도의 범위이다. 그리고 우리 사원들은 간부당원, 또는 고참 당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지금 장교들만 있는 군대와 같은데 어차피 우리 회사 역시 앞으로 병사를 모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의 발전하고자 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의 질문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지가 말하는 바와 같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전위조직노선'은 합법공간으로 진출하는 문제와 관계없이 회사가 진정한 노동자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버려야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관습의 강한 힘이며 그것을 깨는데는 용기가 필요하
다는 사실이다.
이제 사회주의자를 '빨갱이'라고 하면서 뿔달린 사람으로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
다. 물론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자가 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시에 지독한 레드콤플렉스의 시대 역시 갔다.그러므로 이제는 사회주의를 선전했다
고 해서,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잡아가두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이다. 같은 법률도 시대와 사회적 통념이 바뀌면 해석이 달리 되고 적용이 달리 될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금도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많은가? 아마 북한과 관련되어
서는 과거와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지 모른다.그러나 '사회주의'와 관련해
서는 분명히 달라졌거나 달라질 있다고 본다.
사실 요즈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조직의 활동 내용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구속하지 못했을 그런 내용이다. 비밀로 활동했기 때문에 활동
내용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므로 경찰이나 검찰이 이적행위를 한 이적단체라고
규정하면 그런가 보다하고 큰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것이다. 지하조직=이적단
체 내지는 반국가단체,이것은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요 사회적 통념이다.이
것은 지하조직활동=혁명적 활동,비밀활동=혁명적 활동, 비합법투쟁=혁명적 투쟁, 이
런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운동권의 굳은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다.이 낡은 관습과
사회적 통념은 새로운 실천에 의해 타파되어야한다. 만약 민중당이 사회주의를 지향
함을 강령에 명시한다든지 당명에 명시한다고해서 정부가 민중당을 불법화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거꾸로 뒤집어보면, 요즈
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의 조직활동 내용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굳이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전 조직원을 구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그
럴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이적단체사건들은 관성에 의한 행동
이며 그 활동내용을 문제삼는다기 보다 안보이는 곳에서 했다는 것을 문제삼는 듯하
게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굳이 지하에서 할 필요가 없는 활동을 지
하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이런 기괴한 현상들은 이 과도기의 시대적
특징이며, 행위자들 스스로도 그 의미를 정확히 몰라 헛갈리면서 일관성 없게 행동
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들은 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도 지금은 필요없게 된 구시대의 유물
이 혹시 있지나 않는가 살펴보자는 뜻에서 다소간 현실을 단순화 내지는 과장한 측
면도 있다.그러나 이런 새로운 관점으로 한번쯤은 창립대회의 결의에도 구시대의 유
물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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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합법공간으로 진출하면 경찰의 감시에 완전히 우리 조직을 노출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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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00지역 신입사원 동지의 "회사는 언제까지 지하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
지하활동만 계속해서는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00지역의 간부동지로부터 노동운동의 대중적 지도자들을 회사로 인입하기
위한 계획과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00지역 간부 사원들
과 회사의 발전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보았다.그것은 다음과
같다.
"회사의 공공연한 활동의 개시는 총선 시기에 한다. 총선 시기에 회사를 공개하고
대선에서 민중당(총선에서 당이 해체된다면 아마 민중정당재건 추진위원회가 될 것
이다)과 공동후보(백기완?)를 추대하여 100만표 이상을 획득하여 정치적 입지를 만
든다.이 전 기간 동안 꾸준히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유명
한 지도자들을 설득, 결집하여 대선 이후에 창준위, 민중당 좌파,노동운동의 지도자들
이 3요소를 결합하여 '한국노동당'을 창당한다. '' 여기서 당명의 부분은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광범하게 참여시키기 위해서라면 '사회주의'를 당명에 넣지 않는 선까지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상상화가 하나의 구상이 되기에는 헛점이 많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
다보면 그것이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견지해왔던 · 노동자정당의 건설경로'에 대한
생각의 구체화, 현실화이면서 동시에 상당히 변화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이
러한 구체화 및 현실화와 변화는 기획부의 두 동지들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에 대한 문제제기에 접하면서 그와 화합하여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전략구상으로까
지 나아가게 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는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발전시키고 견지해왔던 전략에 의거하
고 있다.그 전략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운동의 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면서 사회
민주주의적 내지는 혁명적 민주주의적 좌익 세력들과 연대한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기 위해 우리는 지하조직을 해소하지 않고 독자적
창당을 준비해왔으며,다양한 좌익 세력들과의 연대를 위해 우리는 민중당에 참여해
왔다.여기서 재검토가 요구되는 부분은 ' 독자성의 고수'라는 부분이다.과연 이 시대
에 우리가 처한 주객관적 조건속에서 맑스주의자가 독자적으로 대중적 기초를 가진
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아니 최초로 실
제적인 문제로서 직면하게 되었다. 영원히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는 그 누구도 생
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당분간, 앞으로 수년간은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동
지들이 있다. 만약 그 동지들의 생각이 올바르다면 수년 동안 사민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좌익 세력들과 하나의 당안에서 동거하면서 공생을 도모하는 방법은 어떤가?
그런데 이것은 노동자정당 건설에 대한 새로운 전략 개념을 요구한다.그 새로운 전
략개념은 "사회민주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좌익세력들과 연합하여 하나의 대중정당
을 만든 후에 조직적 독립을 도모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맑스주의자가 자신의 힘이 미약하거나 조건이 불리할 때 하나의 섹트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좌익 세력 또는 다른 사상을 가진 노동운동세력과 어울려 하나의 당을
만들어 대중적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전략을 쓴 것은 제1인터내셔널 이래 흔하게 있
었던 일이다. 특히 19세기의 유럽에서는 이런 전략을 통해서 맑스주의는 노동운동의
지배적 조류로 서서히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조류들과 공존, 공생
하는 방법을 통해 우리의 세력이 미약하고 상황이 불리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전략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뭔가 좀 해보려면 우리를 가로 막아왔던 보위문제는 다시금 우리의 앞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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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국가에 의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든지(예를 들면 기업체를 생각해보라), 아니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든지 관계없이 자신의 비밀-비밀조직은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정당들도 비밀조직을 가지고 있다. 50년대 진보당의 경우에도 수천명의 비밀당원(주로 청년 학생들)있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우리가 합법정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조건하에서는 비밀당원, 비밀조직을 가지지 않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법공간으로의 진출을 '명단을 경찰서에 갖다바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노출되겠으나(특히 지도적인 간부들의 경우) 우리 조직이 모두 노출되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 아니 하부 조직은 기본적으로 '비밀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할 있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는 그런 방면에서는 다년간 훈련된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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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장애로 나타나고 있다. 항상 보위문제는 우리에게 넘어야할 또하나의 장애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번번이 장애에 걸려서 · 선동의 단
였다.
계'로 넘어가지 못했으며,그래서 조직 자체의 활동은 매우 빈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실제활동은 다른 합법 또는 '반합법'조직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방식을 취할
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직의 지도중심은 지하에 있어 햇볕도 못보고 신선한 공기
도 숨쉬지 못하니 정보는 늦고 감각은 뒤쳐져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해내기가 어려웠
다. 이것은 우리의 활동방식이 가진 최대의 모순이었다.
"지하조직운동으로 세력을 키운 후에 합법성쟁취로 나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계획이며,이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전술방침은 말하자면 정면돌파 즉 '우리 입장
을 밝히고 선전하며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탄압에 장기적으로 저항하여 이를 극
복해내는 것'이었다. 전술을 도덕이 아니라 과학으로서 대하는 기본태도로 이 기본계
획과 전술방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정면돌파가 아닌 우회전술을 고려해볼 수
도 있다고 본다.보위문제를 활동방식의 변화로서 보다 근원적으로 해결- 구체적 행
동 하나 하나에 대해 국가보안법이든 뭐든 적용하는 조건에서 활동하게 됨으로써 지
금처럼 조직전체의 보위문제가 항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더욱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의
변화 가능성에 큰 관심을 갖게 하였다.
새로운 전략개념을 현재 조건에 적용해보면 "민중당과 (총선전에) 합당을 하여
합법성을 획득하고 민중당을 장기적으로 노동자정당으로 전화시켜나간다"는 계획이
도출된다.이러한 계획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는 예를 들면 민중당이 지금 내어놓고
있는 '새로운 민중정당의 건설' 제안에 호응하는 형식을 취해 (1)민중당 현지도부의
전원 사퇴와 전당대회의 개최 (2)당명을 노동당으로 개칭 및 강령과 규약의 개정
(3)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그 핵심은 당내 세력분포를 반영하는 지도부,의결기관 구
성이다) 등을 조건으로 회사의 중심적 역량이 민중당에 입당하는 방법이 있을
.이런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합당의 형식이 되지 않는 것이다.이것이 싫으면 정
정당당히 회사를 공개하고 민중당과 합당교섭을 벌여 정부의 인내심과 민중당 지도
부의 용기를 시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어떻든 이렇게 회사의 중심역량이 합법공
간으로 진출한 후, 회사의 지도중심을 합법정당 내로 이동시켜 나가면서도 수배자
등 일부는 당외에서 말하자면 비밀당원으로(각지역의 조직가, 선전가로) 활동할 필요
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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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사민주의와 한 당에서 동거하게 되면 사민주의와 분명한 일선을 긋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장차 당의 주도권을 사민주의자들에게 빼앗긴다든지 사민주의가 우리 대오를 오염시켜 우리의 사상적 순수성을 빼앗기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사민주의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또 강령에서는 사민주의적 내용으로 타협이 되고 모든 당 선전의 수위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로 제한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존재는 묻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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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러한 노동자정당 건설의 새로운 전략개념과 그에 입각한 새로운 행동계획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논의의 심화를 위해 예상되는 의문에
대해서는 미리 답변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1)전위조직노선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전위조직노선'이라는 말로서 표현되어온 것은 소수정예주의이며, 혁명가
집단으로서의 당이다. 당이 엄혹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소수정예주
의로 가게 된다. 그러나 당이 대중과의 결합도를 높이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
하려면 '직업적 혁명가'에 한정되어서는 안되고 일정한 한계내에서는 가능한 한 보
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당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러시아사민당(볼세비키) 자신에 대해서도 1905년 혁명기에는 이른바 '전위조직노선'
이라는 기준을 들이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이사회가 지금까지 강조해온
노동자에게 보다 문턱이 낮고 친근한 조직은 이 '전위조직노선'으로부-터의 탈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위조직노선'과 '대중조직노선'을 대립시켜 그 사이
에 뛰어넘지 못할 심연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지금 합법노동당으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입당
하려고 하겠는가? 아마도 선진노동자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이 범위는
지금 우리 회사 기준으로 본다면 관련 노동자 (견습사원 후보) 에서 약간 벗어나는
정도의 범위이다.그리고 우리 사원들은 간부당원,또는 고참 당원이 될 것이다.그런
데 우리 회사는 지금 장교들만 있는 군대와 같은데 어차피 우리 회사 역시 앞으로
병사를 모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의 발전하고자 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앞의 질문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지가
말하는 바와 같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전위조직노선'은 합법공간으로 진출하는 문제
와 관계없이 회사가 진정한 노동자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버려야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한다.
(2)합법공간으로 진출하면 경찰의 감시에 완전히 우리 조직을 노출하는 것은 아닌
가?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국가에 의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든지(예를 들면 기업체를
생각해보라), 아니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든지 관계없이 자신의 비밀-비밀조
직은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정당들도 비밀조직을 가지고 있다.50년대 진보당의 경우
에도 수천명의 비밀당원(주로 청년 학생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우리가 합
법정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조건하에서는 비밀당원,비밀조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법공간으로의 진출을 '명단을 경찰서에 갖다바치는 것'
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노출되겠으나(특히 지도적인 간부
들의 경우) 우리 조직이 모두 노출되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아니 하부 조직은 기본
적으로 '비밀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는
그런 방면에서는 다년간 훈련된 사람들이 아닌가?
(3)사민주의와 한 당에서 동거하게 되면 사민주의와 분명한 일선을 긋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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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맑스주의자든 사민주의자든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하여 공생을 도모해야할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민중당]]이 출마한 지역에서는 상당한 득표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1%의 득표도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이런 상황조건에서 우리의 사민주의에 대한 태도가 서로 제1당, 제2당을 다투는 위치에 있는 공산당의 사민당에 대한 태도와 같을 수 없다. 더욱이 사회민주주의를 사회파시즘으로 규정하고 부르주아정당들보다 더 적대시하다가 나중에 파시즘이 대두하자 태도를 바꾸어 뒤늦게 인민전선정책으로 전환했던 20년대의 제3인터내셔널의 잘못된 정책을 따를 필요야 있겠는가? 이것은 사민주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에 관한 문제인바 우리는 당분간 공생을 전제로한 선의의 경쟁을 위주로 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추상적인 이론논쟁으로 보다는 실천에서 그리고 구체적 정책에서 제압하고 그들의 한계를 폭로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이다. 맑스주의자의 우위는 이론에서보다도 실천에서 더 잘 드러나는 법이며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뚜렷이 구별되는 것 또한 실천의 영역이다. 또한 민중운동 내부사정을 놓고 보더라도 주사파에 대항하는데에는 그들이 동맹군이 될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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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우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사민주의와의 공개적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것은 조직적 독자성을 유지하든 안하든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민주의와의 접촉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접촉하여 그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민주의는 아직 현실적인 정치세력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학파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학파에서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전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 정책으로 임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사민주의로 진화할 수 있는, 라쌀레주의와 같은 토착적이며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 없다. 사민주의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은 사실 그렇게 기름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여러 세력들이 터를 잡고 있는 노동운동에서 사민주의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은 추상적 가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민주의가 우리 대오를 오염시킬 가능성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소심함의 발로가 아닌가?
될 뿐만 아니라 장차 당의 주도권을 사민주의자들에게 빼앗긴다든지 사민주의가 우
  물론 통합당의 강령은 민중운동의 모든 유파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최소강령 만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낙착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선전의 내용이 그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통합당은 아마도 이런 방면에서는 보다 덜 엄격한 규율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의 선전 이론 기관을 우리가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본사회당에서도 당의 사무국,선전이론 기관은 좌파가 장악하고 있고 의원단은 우파가 장악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일정한 한계내에서는 어느 정당에든 적용될 수 있는 자연법칙이 아닐까?
리 대오를 오염시켜 우리의 사상적 순수성을 빼앗기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사민주의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계보를 형성할 것이며, 우리 회사는 그대로 그 계보의 지도 핵심 대오로 전화되어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민중당]]의 최대 주주이다. 물론 우리의 지분은 지도부 구성에서 정확히 반영되고 있지 않고 지분만큼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므로 당내 민주주의만 제대로 실천된다면 우리는 당의 지도권을 잡을 수 있고 또 잡아야 한다. 우리가 [[민중당]]을 장대로 삼아 비약을 하고자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것도 우리가 이런 개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종속되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또 강령에서는 사민주의적 내용으로 타협이 되고
모든 당 선전의 수위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로 제한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존재는 묻
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맑스주의자든 사민주의자든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하여 공생을 도모해야할 상황이다.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민중당이
출마한 지역에서는 상당한 득표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1%의 득표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이런 상황조건에서 우리의 사민주의에 대한 태도가
서로 제1당, 제2당을 다투는 위치에 있는 공산당의 사민당에 대한 태도와 같을 수
. 더욱이 사회민주주의를 사회파시즘으로 규정하고 부르주아정당들보다 더 적대시
하다가 나중에 파시즘이 대두하자 태도를 바꾸어 뒤늦게 인민전선정책으로 전환했던
20년대의 제3인터내셔널의 잘못된 정책을 따를 필요야 있겠는가? 이것은 사민주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에 관한 문제인바 우리는 당분간 공생을 전제로한 선의의
경쟁을 위주로 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추상적인 이론논쟁으로
다는 실천에서 그리고 구체적 정책에서 제압하고 그들의 한계를 폭로하는 것을 위주
해야 할 것이다. 맑스주의자의 우위는 이론에서보다도 실천에서 더 잘 드러나는
법이며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뚜렷이 구별되는 것 또한 실천의 영역이다. 또한 민중
운동 내부사정을 놓고 보더라도 주사파에 대항하는데에는 그들이 동맹군이 될 수
되어 있다.
어차피 우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사민주의와의 공개적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아남지 못한다.이것은 조직적 독자성을 유지하든 안하든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
사민주의와의 접촉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접촉하여 그에 대한
항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그리고 사민주의는 아직 현실적인 정치세력
아니다.그것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학파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
그것이 학파에서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전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 정책으로
임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사민주의로 진화할 수 있는, 라쌀레
주의와 같은 토착적이며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 없다. 사민주의가
수 있는 토양은 사실 그렇게 기름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여러
세력들이 터를 잡고 있는 노동운동에서 사민주의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은 추상적 가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민주의가 우리 대오를
염시킬 가능성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소심함의 발로가 아닌가?
물론 통합당의 강령은 민중운동의 모든 유파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최소강령
명시하는 방향으로 낙착되기 쉬울 것이다.그러나 선전의 내용이 그에 국한될
요는 없다. 통합당은 아마도 이런 방면에서는 보다 덜 엄격한 규율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의 선전 이론 기관을 우리가 장악하게 될 것이라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본사회당에서도 당의 사무국,선전이론 기관은
파가 장악하고 있고 의원단은 우파가 장악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일정한 한계내에서
어느 정당에든 적용될 수 있는 자연법칙이 아닐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계보를 형성할 것이며,우리 회사는 그대로 그 계보의
지도 핵심 대오로 전화되어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민중당의 최
주주이다. 물론 우리의 지분은 지도부 구성에서 정확히 반영되고 있지 않고 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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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Korea Democracy Foundation
만큼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그러므로 당내 민주주의만 제대로 실천된다
면 우리는 당의 지도권을 잡을 수 있고 또 잡아야 한다. 우리가 민중당을 장대로 삼
아 비약을 하고자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이런 개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다.
1991. 9. 29.
1991.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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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3458
출처 : 주대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9월 29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3458
</poem>
</poem>


== 관련 문서 ==
* [[민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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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기타]]
[[분류:문서]]

2025년 5월 11일 (일) 19:19 기준 최신판

1991년 주대환이 발표한 문건. 이 문건을 시작으로 인민노련의 '노동계급 지하 정당 건설 노선'은 '합법적 노동자 정당 건설 노선'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노선 전환을 통칭 '신노선'이라고 부른다.[1]

주의 사항

OCR 프로그램을 통해 텍스트화하였다. 오탈자가 있을 수 있다.

본문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A)


   우리는 이제 조직통합작업을 거의 완료했다. 이제 하나의 실천력있는 회사로서 앞으로의 진로문제를 논의결정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하나의 종파(SECT)가 한 계급을 대변하는 당이 되는 문제이며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결코 쉽지않은 문제이다.
   우리의 당면 목표는 맑스주의, 즉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의 건설이라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이미 몇년 전부터 이 목표를 내걸고 활동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회사를 창립함으로써 이 목표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맑스주의적 노동자정당의 건설은 앞으로도 지나간 활동기간(4-5년)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대사업이다. 그리고 이 대사업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기적 관점에서, 최소한 앞으로 4-5년을 내다보면서 노동자정당의 건설전략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창립대회의 결의는 이미 하나의 건설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나는 열흘쯤 전에 기획부의 두 사원동지로부터 이 건설전략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문제제기를 받았다. 나는 이 문제제기에 대해 "창립대회의 결의는이미 하나의 건설전략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창립대회의 결의로서 우리는 이미 하나의 길로 들어섰으며 이제 그 방향은 수정될 수 없다. 고로 이 문제제기는 때늦은 것이며 지금 논의하기에는 시기 적절치 못하다."라는 요지의 답변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날 이후 며칠 동안을 이 문제로 고심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가 간단히 처리되어서는 안되는 심각한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제기한 동지들에게 회사내 선동의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도록 격려하였다. 동시에 나는 회사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외부의 무책임한 사람들에 의해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벌어져 문제의 핵심이 왜곡되거나 회사가 조용히 심사숙고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 후 나의 생각은 더욱 문제제기를 한 동지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나의 사내 위치는 이 문제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고심을 하였다. 그러나 결국 두분의 문제제기 동지들과 별도로 먼저 이사회에 나의 생각을, 부분적으로는 확신이 안섰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기존노선에 대한 비판 쪽으로 꾸부려서 밝히고 논의에 부칠지 여부와 적절한 논의절차에 대한 심의, 결정을 요청하기로 결심하였다.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꾸부린 것은 문제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1. 나는 이 시점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으며, 창립대회 이후 회사의 노선으로 되어 있는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문제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그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의 건설과정에는 세 개의 난관이 있다. 달리 말해서 그 과정에는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지하조직들을 만들어 활동해온 인텔리겐챠 사회주의자들을 하나의 큰 조직으로 모으는 문제이다. 항상 경찰의 추적을 피하며 활동해야 하는 조건은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뭉쳐나가는 것을 기본적으로 막아왔으며, 그렇지 않아도 많은 약점을 가진 유아기의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분산시켜왔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사회주의 운동역량을 결집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회사의 창립과 동시에 해결의 큰 실마리를 풀었거나 반은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문제는 우리에게 크게 어렵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문제는 어차피 당장 완전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즉 현시점에서 이 문제의 해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우리가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하여 강력한 권위와 인력을 만들어내어야만이 현재의 객관적 한계를 넘어 이 문제의 거의 완전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추진 중인 몇 그룹의 합류를 늦어도 연말 안에 마무리지은 후에는 당분간 이 문제를 중심적인 과제로 생각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둘째는 그간의 계급투쟁이 배출한 선진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을 조직의 중심적 주체로 세우며 나아가 조직의 기풍과 체질을 프롤레타리아화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우리는 지금까지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표현으로도 말해왔는데 말하자면 주로 선전활동으로 해결할 문제이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부족하나마 다소간의 경험도 가지고 있으며 활용할 기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문제의 해결을 중심적 과제로 설정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이 방면에서 착실한 성과를 얻고 있다.이 문제 역시 현재의 활동역량이나 방식으로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겠으나 그 한계내에서는 꾸준히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얻을 것이다.
   세째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문제이다. 노동자대중이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로 인정할 때만이 명실상부한 노동자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말하자면 주로 선동활동을 통해 해결할 문제인데, 세 문제 가운데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며 특히 우리에게는 어려운 문제로 되어있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가 좁은 폭으로 제한되어 있는 우리의 활동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세계적인 사회주의운동의 위기라는 시대적 환경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난관을 돌파하지 않고서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동자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교과서도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부터 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 문제이며 가장 창조적인 자세로 연구해야 할 문제도 이 문제이다.
   창립대회는 회사 존재의 공개와 그 이름을 내건 활동을 유보하되 스스로 그 시기를 정하지 않고 이사회에 시기결정의 권한을 위임하였다. 창립대회의 결의는 당분간 첫째, 둘째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여 일정한 성과를 얻은 후에 그 성과 위에 세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계획, 바로 그것이다.또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결정의 권한을 이사회에 위임하였으나, 광범한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 공개적 활동을 개시하기에는 자금, 조직역량 등 모든 조건에서 회사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우리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된다든지 하지 않는 한) 신중한 발걸음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창립대회의 암묵적 합의였다. 그런데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창립대회 당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몇 배나 더 힘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솔직히 말해서 사노맹처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허황된 말로 선동하고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의 관심을 끄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 시대에 지하 조직이 스스로의 존재나 주의주장을 대중에게 광범하게 알리기도 힘들다. 이 점은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우리의 주관적인 결의로 뛰어넘을 수 없는 객관적 한계를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2)창립대회의 결의에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노동자정당의 건설 문제에 대해서 김대중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정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정당법의) 법정 지구당 문제나 국가보안법같은 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또 무엇보다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자정당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처음에 페비안협회를 창립하여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한편, 자유당을 지지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확보해나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노동당을 창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바로 노동당을 창당할 줄 몰라서 자유당을 지지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봅니다. 적어도 자기 정당을 가지려면 정치적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것 같습니다. "(주간전국노동자신문 1991년 9월 27일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김대중의 지론인데 선노론자들의 시기상조론이나 장명국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견해와도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이하에서 이들 모두를 시기상조론이라 칭하겠다)
   그러면 이런 류의 시기상조론적인 생각들에는 전혀 현실을 반영하는바가 없는가? 아니다. 현실의 한 측면을 방영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도 충분히 깊이 인식해야 한다.
   시기상조론은 노동조합이 충분히 발전한 후에 그 힘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그들 사고의 일면성을 잘 알고 있다.우리는 '노동조합 먼저 노동자정당 나중'이라는 생각에는 명백히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87년이래 계급투쟁이 낳은 유명한 대중적 지도자들을 노동자정당의 한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법, 그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울산에서는 권용목씨가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정당이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거꾸로 권용목씨가 참여할 때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노동자정당으로 인정받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단병호위원장이 지지한다면 노동자정당이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쉬울 것이다.그래서 회사는 각지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우리는 이 분들에게 우리의 관점과 사상을 선전하고 우리의 노동자정당 창당의 계획을 설명하고 참여의 당위를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의 성과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빠트려서는 안될 문제가 있다. 그 분들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데 까지는 비교적 쉬운 일이나(우리의 주장은 바로 그 분들이 경험으로 절감했던 것들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직접 노동자정당 건설에 한 주체로 참여하는 데에는 일정한 객관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분들에게는 이미 대중운동의 지도자로서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있다.그런만큼 전노협 등 노동조합운동 자체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일정한 안정성을 획득해야만 그 분들도 노동자정당 건설에 자유스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즉 시기상조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 창당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3)회사가 어떤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첫 발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비단 회사의 운명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의 운명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참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무겁다. 지금 현존사회주의의 위기로 일대 혼란에 처한 '운동권'은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다. 모두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의 책임이 무겁다. 또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의 앞길은 상당 기간 동안 험난하기 비할 데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견지할 확신의 노선을 선택해야 하며 충분한 논의로 야무진 결의를 모아야 한다. 이런 점들에 생각이 미칠 때 아무래도 우리의 창립대회를 전후한 논의과정은 충분히 철저하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모든 논점들이 뚜렷이 부각되어 모든 사원이 대회결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대의원의 3분의1이 창당준비위원회라는 명칭에 반대하고 그 전단계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건설추진위원회 또는 건설준비위원회라는 명칭을 당분간 사용하자는 안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이 소수 의견에게는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사정들 또한 창립대회의 결의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노선 자체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4)창립대회 이후에 커다란 정세 변화가 있었다.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정세의 변화를 추적하고 주체적 역량을 파악하여 공개적 활동개시 시기를 결정할 판단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에 있었던 정세변화는 남북한의 유엔가입, 소련에서의 쿠데타와 소련공산당의 해체, 부르주아 야당의 통합 등의 사건으로 대표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은 역시 소련공산당의 해체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우리의 활동조건을 크게 바꾸어놓았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운동이 이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강령과 전술을 바꾸고 있다. 사실 세계사회주의운동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새출발하는 시점이 세계사회주의운동이 완전히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새출발 역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새출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노맹이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활동방식, 조직체계, 당건설 전망 등에 이르는 총체적 혁신을 통해 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태어나는 과제는 사노맹만의 것이 아니고,전체 사회주의진영이 공동으로 떠맡아야할 중대한 과제.... "(말지 10월호 111쪽)라고 읖조리고 있는 것을 보라. 이 말이 우리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옳지 못하나, 말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그간에 회사의 존재 및 활동계획이 경찰에 알려지는 예기치못한 사고도 있었다. 이 사고에 의해서 회사창립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경찰의 공격이 앞당겨지고 광범해지게 되었다. 요컨대 회사는 창립대회 당시의 예상보다도 더 좋지못한 조건에서 향후 진로를 모색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창립대회에서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합의하고 결정한 사항까지도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지않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5)창립대회의 결의는 전통적 사고에 입각해 있다.

   우리 운동의 역사는 짧지만 하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무시하면서 운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이 전통에 나름대로 충실했던 흐름들이 합류하여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 역시 그 전통에 입지하고 있다. 이 전통은 외부의 비판자들에 의해 '레닌주의'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파쇼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하고 투쟁해온 우리의 땀과 눈물이 섞여있는 우리의 전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규정이 전혀 무근거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또한 엄격히 말하면 틀렸다. 우리가 20세기 초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기의 '낡은' 이론에서 뭔가 영감을 얻으려 했던 것은 러시아혁명 이래 러시아혁명이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어온 전통을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처하고 있던 조건이 그 시대 러시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혁명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처하고 있는 조건이 혁명 당시 중국과 비슷하기 느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 머리로 생각하려 했고 창조적으로 우리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토양에 발을 딛고, 70년대 이래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풍토안에서 레닌적 개념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 점이 우리를 씨에이-사노맹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피상적 관찰자들은 흔히 그 차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닌주의적인 실천을 해왔다고 하는 규정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든지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은 어디까지나 70년대 이래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전통이며 또한 87년 이래 우리가, 그리고 노동운동의 많은 운동가들과 그 집단들이 만들어온 우리 나름의 전통이다.
   우리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를 결성한다고 결의한 것은 철저히 우리의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의를 다수가 무리없이 수용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가장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체, 거듭된 좌절에도 아무런 새로운 고민도 하지 않은 체 짐짓 변함없이 우리의 과거 노선을 고수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으나 전통 역시 하나의 힘이라는 고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전통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6)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는 1987년 이전 시대의 유물도 섞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너리즘이나 굳은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정치상황은 전형적인 '개발독재' 였으며 '종속파시즘체제'였다. 이 폭압통치 기간을 통해서 한국 자본주의는 양적 성장과 질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운동이 싹트고 자라나온 밭은 이 시대의 이른바 '민족민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이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형성된 관습과 관념을 아직도 많이 물려받고 있다. 예를 들면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는 정치적 자유의 한계상황에서 잡혀들어가는 것, 구속되는 것이 운동이었고 투쟁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운동은 선전가도 선동가도 조직가도 키우지 못했다. 요컨대 유능한 정치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다만 지사를 키웠을 뿐이다. 지사는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고 독불장군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질이 다소간 남아있다. 또다른 예를 든다면 민중당을 무시하고 백안시하는 '운동권'의 태도에는 어떤 이론적 근거보다는 1972-87년이라는 시대에 형성된 관념과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두 개의 큰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그 하나는 국내적인 변화로 1987년의 대변화였다. 그리고 그 둘은 1989년부터 개시되어 1991년 여름에 그 극에 달한 세계사적 대변혁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 두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89년 10월에 구속된 동지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하는 문제에서 주저했었는데 그 때 그 동지들은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임을 인정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형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동지들은 87년 이전 시기에 형성된 관습-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고 용공조작이라고 반박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관습-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설사 형량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쨌든 그 관습은 연이어 구속된 여러 동지들에 의해 이제 완전히 타파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관습의 강한 힘이며 그것을 깨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사회주의자를 '빨갱이'라고 하면서 뿔달린 사람으로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물론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자가 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지독한 레드콤플렉스의 시대 역시 갔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회주의를 선전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잡아가두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이다. 같은 법률도 시대와 사회적 통념이 바뀌면 해석이 달리 되고 적용이 달리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금도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많은가? 아마 북한과 관련되어서는 과거와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관련해서는 분명히 달라졌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요즈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조직의 활동 내용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구속하지 못했을 그런 내용이다. 비밀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 활동내용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므로 경찰이나 검찰이 이적행위를 한 이적단체라고 규정하면 그런가 보다하고 큰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것이다. 지하조직=이적단체 내지는 반국가단체, 이것은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요 사회적 통념이다. 이것은 지하조직활동=혁명적 활동, 비밀활동=혁명적 활동, 비합법투쟁=혁명적 투쟁, 이런 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운동권의 굳은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다. 이 낡은 관습과 사회적 통념은 새로운 실천에 의해 타파되어야한다. 만약 민중당이 사회주의를 지향함을 강령에 명시한다든지 당명에 명시한다고해서 정부가 민중당을 불법화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거꾸로 뒤집어보면, 요즈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자의 조직활동 내용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굳이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전 조직원을 구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그럴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이적단체사건들은 관성에 의한 행동이며 그 활동내용을 문제삼는다기 보다 안보이는 곳에서 했다는 것을 문제삼는 듯하게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굳이 지하에서 할 필요가 없는 활동을 지하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기괴한 현상들은 이 과도기의 시대적 특징이며, 행위자들 스스로도 그 의미를 정확히 몰라 헛갈리면서 일관성 없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들은 우리의 관념과 활동방식에도 지금은 필요없게 된 구시대의 유물이 혹시 있지나 않는가 살펴보자는 뜻에서 다소간 현실을 단순화 내지는 과장한 측면도 있다.그러나 이런 새로운 관점으로 한번쯤은 창립대회의 결의에도 구시대의 유물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나는 00지역 신입사원 동지의 "회사는 언제까지 지하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 지하활동만 계속해서는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00지역의 간부동지로부터 노동운동의 대중적 지도자들을 회사로 인입하기 위한 계획과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00지역 간부 사원들과 회사의 발전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보았다.그것은 다음과같다.
   "회사의 공공연한 활동의 개시는 총선 시기에 한다. 총선 시기에 회사를 공개하고 대선에서 민중당(총선에서 당이 해체된다면 아마 민중정당재건 추진위원회가 될 것이다)과 공동후보(백기완?)를 추대하여 100만표 이상을 획득하여 정치적 입지를 만든다.이 전 기간 동안 꾸준히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유명한 지도자들을 설득, 결집하여 대선 이후에 창준위, 민중당 좌파, 노동운동의 지도자들 이 3요소를 결합하여 '한국노동당'을 창당한다." 여기서 당명의 부분은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광범하게 참여시키기 위해서라면 '사회주의'를 당명에 넣지 않는 선까지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상상화가 하나의 구상이 되기에는 헛점이 많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견지해왔던 '노동자정당의 건설경로'에 대한 생각의 구체화, 현실화이면서 동시에 상당히 변화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체화 및 현실화와 변화는 기획부의 두 동지들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한 문제제기에 접하면서 그와 화합하여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전략구상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창립대회의 결의는 우리가 지난 몇년 동안 발전시키고 견지해왔던 전략에 의거하고 있다. 그 전략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운동의 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면서 사회민주주의적 내지는 혁명적 민주주의적 좌익 세력들과 연대한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조직적 독자성을 고수하기 위해 우리는 지하조직을 해소하지 않고 독자적 창당을 준비해왔으며, 다양한 좌익 세력들과의 연대를 위해 우리는 민중당에 참여해왔다. 여기서 재검토가 요구되는 부분은 '독자성의 고수'라는 부분이다. 과연 이 시대에 우리가 처한 주객관적 조건속에서 맑스주의자가 독자적으로 대중적 기초를 가진 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아니 최초로 실제적인 문제로서 직면하게 되었다. 영원히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앞으로 수년간은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동지들이 있다. 만약 그 동지들의 생각이 올바르다면 수년 동안 사민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좌익 세력들과 하나의 당안에서 동거하면서 공생을 도모하는 방법은 어떤가? 그런데 이것은 노동자정당 건설에 대한 새로운 전략 개념을 요구한다. 그 새로운 전략개념은 "사회민주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좌익세력들과 연합하여 하나의 대중정당을 만든 후에 조직적 독립을 도모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맑스주의자가 자신의 힘이 미약하거나 조건이 불리할 때 하나의 섹트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좌익 세력 또는 다른 사상을 가진 노동운동세력과 어울려 하나의 당을 만들어 대중적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전략을 쓴 것은 제1인터내셔널 이래 흔하게 있었던 일이다. 특히 19세기의 유럽에서는 이런 전략을 통해서 맑스주의는 노동운동의 지배적 조류로 서서히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조류들과 공존, 공생하는 방법을 통해 우리의 세력이 미약하고 상황이 불리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전략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뭔가 좀 해보려면 우리를 가로 막아왔던 보위문제는 다시금 우리의 앞길에 커다란 장애로 나타나고 있다. 항상 보위문제는 우리에게 넘어야할 또하나의 장애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번번이 이 장애에 걸려서 '선동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으며, 그래서 조직 자체의 활동은 매우 빈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실제활동은 다른 합법 또는 '반합법'조직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직의 지도중심은 지하에 있어 햇볕도 못보고 신선한 공기도 숨쉬지 못하니 정보는 늦고 감각은 뒤쳐져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해내기가 어려웠다. 이것은 우리의 활동방식이 가진 최대의 모순이었다.
   "지하조직운동으로 세력을 키운 후에 합법성쟁취로 나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계획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전술방침은 말하자면 정면돌파 즉 '우리 입장을 밝히고 선전하며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탄압에 장기적으로 저항하여 이를 극복해내는 것'이었다. 전술을 도덕이 아니라 과학으로서 대하는 기본태도로 이 기본계획과 전술방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정면돌파가 아닌 우회전술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본다. 보위문제를 활동방식의 변화로서 보다 근원적으로 해결- 구체적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 국가보안법이든 뭐든 적용하는 조건에서 활동하게 됨으로써 지금처럼 조직전체의 보위문제가 항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더욱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의 변화 가능성에 큰 관심을 갖게 하였다.
   새로운 전략개념을 현재 조건에 적용해보면 "민중당과 (총선전에) 합당을 하여 합법성을 획득하고 민중당을 장기적으로 노동자정당으로 전화시켜나간다"는 계획이 도출된다. 이러한 계획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는 예를 들면 민중당이 지금 내어놓고있는 '새로운 민중정당의 건설' 제안에 호응하는 형식을 취해 (1)민중당 현지도부의 전원 사퇴와 전당대회의 개최 (2)당명을 노동당으로 개칭 및 강령과 규약의 개정 (3)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그 핵심은 당내 세력분포를 반영하는 지도부,의결기관 구성이다) 등을 조건으로 회사의 중심적 역량이 민중당에 입당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합당의 형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싫으면 정정당당히 회사를 공개하고 민중당과 합당교섭을 벌여 정부의 인내심과 민중당 지도부의 용기를 시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렇게 회사의 중심역량이 합법공간으로 진출한 후, 회사의 지도중심을 합법정당 내로 이동시켜 나가면서도 수배자 등 일부는 당외에서 말하자면 비밀당원으로(각지역의 조직가, 선전가로) 활동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이러한 노동자정당 건설의 새로운 전략개념과 그에 입각한 새로운 행동계획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논의의 심화를 위해 예상되는 의문에 대해서는 미리 답변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1)전위조직노선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전위조직노선'이라는 말로서 표현되어온 것은 소수정예주의이며, 혁명가집단으로서의 당이다. 당이 엄혹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소수정예주의로 가게 된다. 그러나 당이 대중과의 결합도를 높이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직업적 혁명가'에 한정되어서는 안되고 일정한 한계내에서는 가능한 한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당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러시아사민당(볼세비키) 자신에 대해서도 1905년 혁명기에는 이른바 '전위조직노선'이라는 기준을 들이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이사회가 지금까지 강조해온 노동자에게 보다 문턱이 낮고 친근한 조직은 이 '전위조직노선'으로부터의 탈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위조직노선'과 '대중조직노선'을 대립시켜 그 사이에 뛰어넘지 못할 심연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지금 합법노동당으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입당하려고 하겠는가? 아마도 선진노동자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이 범위는 지금 우리 회사 기준으로 본다면 관련 노동자 (견습사원 후보) 에서 약간 벗어나는 정도의 범위이다. 그리고 우리 사원들은 간부당원, 또는 고참 당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지금 장교들만 있는 군대와 같은데 어차피 우리 회사 역시 앞으로 병사를 모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의 발전하고자 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의 질문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지가 말하는 바와 같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전위조직노선'은 합법공간으로 진출하는 문제와 관계없이 회사가 진정한 노동자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버려야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한다.

   (2)합법공간으로 진출하면 경찰의 감시에 완전히 우리 조직을 노출하는 것은 아닌가?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국가에 의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든지(예를 들면 기업체를 생각해보라), 아니면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든지 관계없이 자신의 비밀-비밀조직은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정당들도 비밀조직을 가지고 있다. 50년대 진보당의 경우에도 수천명의 비밀당원(주로 청년 학생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우리가 합법정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조건하에서는 비밀당원, 비밀조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법공간으로의 진출을 '명단을 경찰서에 갖다바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노출되겠으나(특히 지도적인 간부들의 경우) 우리 조직이 모두 노출되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 아니 하부 조직은 기본적으로 '비밀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는 그런 방면에서는 다년간 훈련된 사람들이 아닌가?

   (3)사민주의와 한 당에서 동거하게 되면 사민주의와 분명한 일선을 긋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장차 당의 주도권을 사민주의자들에게 빼앗긴다든지 사민주의가 우리 대오를 오염시켜 우리의 사상적 순수성을 빼앗기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사민주의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또 강령에서는 사민주의적 내용으로 타협이 되고 모든 당 선전의 수위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로 제한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존재는 묻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맑스주의자든 사민주의자든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하여 공생을 도모해야할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민중당이 출마한 지역에서는 상당한 득표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1%의 득표도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이런 상황조건에서 우리의 사민주의에 대한 태도가 서로 제1당, 제2당을 다투는 위치에 있는 공산당의 사민당에 대한 태도와 같을 수 없다. 더욱이 사회민주주의를 사회파시즘으로 규정하고 부르주아정당들보다 더 적대시하다가 나중에 파시즘이 대두하자 태도를 바꾸어 뒤늦게 인민전선정책으로 전환했던 20년대의 제3인터내셔널의 잘못된 정책을 따를 필요야 있겠는가? 이것은 사민주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에 관한 문제인바 우리는 당분간 공생을 전제로한 선의의 경쟁을 위주로 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추상적인 이론논쟁으로 보다는 실천에서 그리고 구체적 정책에서 제압하고 그들의 한계를 폭로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이다. 맑스주의자의 우위는 이론에서보다도 실천에서 더 잘 드러나는 법이며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뚜렷이 구별되는 것 또한 실천의 영역이다. 또한 민중운동 내부사정을 놓고 보더라도 주사파에 대항하는데에는 그들이 동맹군이 될 수 있게 되어 있다.
   어차피 우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사민주의와의 공개적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것은 조직적 독자성을 유지하든 안하든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민주의와의 접촉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접촉하여 그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민주의는 아직 현실적인 정치세력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학파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학파에서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전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 정책으로 임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사민주의로 진화할 수 있는, 라쌀레주의와 같은 토착적이며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 없다. 사민주의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은 사실 그렇게 기름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여러 세력들이 터를 잡고 있는 노동운동에서 사민주의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은 추상적 가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민주의가 우리 대오를 오염시킬 가능성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소심함의 발로가 아닌가?
   물론 통합당의 강령은 민중운동의 모든 유파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최소강령 만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낙착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선전의 내용이 그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통합당은 아마도 이런 방면에서는 보다 덜 엄격한 규율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의 선전 이론 기관을 우리가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본사회당에서도 당의 사무국,선전이론 기관은 좌파가 장악하고 있고 의원단은 우파가 장악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일정한 한계내에서는 어느 정당에든 적용될 수 있는 자연법칙이 아닐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계보를 형성할 것이며, 우리 회사는 그대로 그 계보의 지도 핵심 대오로 전화되어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민중당의 최대 주주이다. 물론 우리의 지분은 지도부 구성에서 정확히 반영되고 있지 않고 지분만큼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므로 당내 민주주의만 제대로 실천된다면 우리는 당의 지도권을 잡을 수 있고 또 잡아야 한다. 우리가 민중당을 장대로 삼아 비약을 하고자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전략 개념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것도 우리가 이런 개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991. 9. 29.


출처 : 주대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9월 29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3458

관련 문서


  1. 이광호, 『노회찬 평전』, 사회평론, 2023. pp.195-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