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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창당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화를 시도한 운동권 분파 중, 일정한 성과를 보인 최초의 사례였다. | 1990년 창당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화를 시도한 운동권 분파 중, 일정한 성과를 보인 최초의 사례였다. | ||
== | == 발기취지문 == | ||
{|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 {|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style="width:100%; text-align:left; background:#f9f4e6; border:1px solid #0a0a0a; padding:10px; word-wrap:break-word;" | ||
! 민중당(가칭) 발기취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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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와 전세계 자유인들의 이목이 주시하는 가운데 ‘민중당’의 창당발기를 힘차게 선언한다. ‘민중당’의 출범선언은 국민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여성, 중간계층, 중소상공인 등 민중이 수탈과 억압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정치의 주인됨을 선언하는 것이며 분단과 예속의 체제를 타파하여 자주, 민주, 통일, 민중복지의 민족사를 개척하는 주체가 됨을 선포하는 것이다. | |||
분단이후 우리의 정치사는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외세와 군사독재에 의해 권력이 장악되어 왔으며, 보수야당은 타협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였다. 민중이 배제된 정치는 결국 가진 자들을 위한 야합의 정치였으며 민중억압의 정치였다. | |||
이땅의 노동자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려왔으며, 농촌은 저곡가와 수입개방으로 황폐화되고 있다. 도시서민은 부동산투기로 보금자리를 잃고 있으며 중간계층은 향락과 퇴폐의 사회속에서 참된 삶의 방향을 잃고 있다. | |||
그러나 혹독한 탄압과 수탈 속에서도 민중은 굳세게 일어서고 있다. 4월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 7∙8월의 노동자 대투쟁 등 험난한 민족민주투쟁의 대오에 민중은 항시 선봉에 섰으며 빼앗긴 자유를 되찾고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힘차게 전진하여 왔다. | |||
고난에 찬 투쟁의 가시밭길을 헤쳐오면서 민중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교사, 청년학생 등 전국적인 조직 대열을 갖춘 민중은 이제 사회운동 차원에서 더 나아가 민중의 이익과 정치적 의사를 실현하고 민족민주운동을 국민적 차원에서 고양시킬 수 있는 민중의 정당 출현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세계사적으로 민족운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민중정당을 출현시키고 있다. | |||
우리 당은 분단 이후 끊임없이 전개되어 온 민족민주운동의 찬란한 전통을 이어받아 80년대 이후 고도성장하고 있는 민중운동의 역량을 토대로 하면서 4월혁명 이래 축적된 각계각층의 민주세력을 결집하여 ‘민중당’을 창당하려 한다. | |||
우리는 민중주체의 당을 건설할 것이며, 민주세력 연합의 실현을 통해 민주화투쟁과 민중기본권수호에 앞장설 것이다. 또한 건전한 민중재정의 확립 등을 통해 진취적인 당 기풍을 확립할 것이다. | |||
우리 당의 기본목표는 외세와 군사독재의 통치를 완전하게 종식시키고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정부를 수립함에 있다. 또한 우리는 야당 및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하여 내각제개헌 기도를 통해 노골화되고 있는 민자당의 장기집권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할 것이며 민중생존권투쟁에 대한 지원, 제반악법 개폐투쟁, 양심수 석방, 한반도 긴장완화와 자주∙평화통일을 위해 매진할 것이다. | |||
우리 당의 주인은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여성, 중간계층, 중소상공인 등 민중 자신이다. 우리 당은 민중의 이익과 정치적 의사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고 온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위력적인 대체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민중이 있는 곳에 항시 있으며 민중과 더불어 고통과 눈물을 나눌 것이며, 찬란한 민주 승리의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 |||
이제 그동안 정치적 들러리에 불과하였던 이땅의 민중은 ‘민중당’의 출범과 함께 정치의 주인이자 역사 발전의 주체가 되었다. 희망찬 민중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새 역사의 여명이 ‘민중당’과 함께 찬연히 밝아오고 있다. | |||
온 국민의 참여와 격려, 성원을 바란다. | |||
1990. 6. 21 | |||
민중당(가칭)창당준비위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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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정당사 제4집』 , 2000년. pp.580~581.<br>https://library.nec.go.kr/neweps/epdata/EP24/EBM2024/01/EBM0120240255/index.htm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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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당선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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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당 창당선언문 | ! 민중당 창당선언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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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째 줄: | 59번째 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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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출처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p.3~5.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05383<ref name="OCR">OCR 프로그램을 통해 텍스트화하였다. 오탈자가 있을 수 있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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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령 == | == 강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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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당 강령 | ! 민중당 강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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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middle"><font size="4">오늘의 세계와 한국사회</font></div> | <div align="middle"><font size="4">오늘의 세계와 한국사회</font></div> | ||
47번째 줄: | 79번째 줄: | ||
현대 자본주의는 20세기 초중엽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단계에 있다. 전후 선진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위기를 겪으면서도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임노동관계에 의한 착취와 억압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전후 새로운 생산력의 발전,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성장, 사회주의권의 압력으로 선진자본주의는 사회적 개량이 확대되고 의회민주주의도 정착되었다. 70년대 중반 이후의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은 생산의 국제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제분업구조와 경제질서를 형성하고 있으며, 자본의 소유구조와 임노동의 내부구조에도 현저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자본주의의 지배세력은 새로운 생산력을 바탕으로 민중진영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선진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성 또한 다국적기업의 세계경제 지배, 국가권력의 패권주의적 행태와 함께 의연히 유지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 고유한 일체의 착취와 억압을 물리치고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진보를 앞당기는 길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보호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진보적 정당들이 광범한 연합을 이루어 전진하는 데 있다. | 현대 자본주의는 20세기 초중엽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단계에 있다. 전후 선진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위기를 겪으면서도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임노동관계에 의한 착취와 억압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전후 새로운 생산력의 발전,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성장, 사회주의권의 압력으로 선진자본주의는 사회적 개량이 확대되고 의회민주주의도 정착되었다. 70년대 중반 이후의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은 생산의 국제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제분업구조와 경제질서를 형성하고 있으며, 자본의 소유구조와 임노동의 내부구조에도 현저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자본주의의 지배세력은 새로운 생산력을 바탕으로 민중진영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선진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성 또한 다국적기업의 세계경제 지배, 국가권력의 패권주의적 행태와 함께 의연히 유지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 고유한 일체의 착취와 억압을 물리치고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진보를 앞당기는 길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보호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진보적 정당들이 광범한 연합을 이루어 전진하는 데 있다. | ||
식민지 민중의 줄기찬 민족해방투쟁으로 제국주의의 오랜 구식민지 체제는 붕괴되고 마침내 식민지 민족은 정치적 독립을 쟁취했다. 세계사의 무대에 식민지 민족의 역사주체로의 등장은 세계의 세력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의 달성 이후 신생독립국의 민중은 곧바로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발전도상국 민중은 경제적 후진성과 정치적 독재,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종속을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오늘의 발전도상국들 가운데 현저한 분화가 진행되어 한편에는 다수의 극빈국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신흥공업국이 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도상국들의 민중은 민주주의와 민족자주를 위한 공통의 과제를 안고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의 승리만이 인류의 평화와 진보를 보장할 수 있다. | 식민지 민중의 줄기찬 민족해방투쟁으로 제국주의의 오랜 구식민지 체제는 붕괴되고 마침내 식민지 민족은 정치적 독립을 쟁취했다. 세계사의 무대에 식민지 민족의 역사주체로의 등장은 세계의 세력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의 달성 이후 신생독립국의 민중은 곧바로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발전도상국 민중은 경제적 후진성과 정치적 독재,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종속을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오늘의 발전도상국들 가운데 현저한 분화가 진행되어 한편에는 다수의 극빈국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신흥공업국이 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도상국들의 민중은 민주주의와 민족자주를 위한 공통의 과제를 안고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의 승리만이 인류의 평화와 진보를 보장할 수 있다. | ||
한편 소련의 10월혁명과 동구 및 식민지 종속국에서의 일련의 혁명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민족억압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이들 나라들의 혁명과 사회건설은 세계사의 진보에 직간접적으로 공헌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회주의국가에서의 스탈린주의적 모델은 관료주의, 개인의 자유 억압, 민주주의의 왜곡, 경제적 효율의 결여 등으로 60년대 이후 정체와 위기를 낳았고 개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현존 사회주의국가에서의 개혁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70년 동안 구축된 체제의 자기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주의권의 개혁은 숱한 어려움과 복잡성을 지니면서 진행되고 있다. 이 개혁의 미래는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민중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질적으로 더 높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평등을 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한편 소련의 10월혁명과 동구 및 식민지 종속국에서의 일련의 혁명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민족억압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이들 나라들의 혁명과 사회건설은 세계사의 진보에 직간접적으로 공헌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회주의국가에서의 스탈린주의적 모델은 관료주의, 개인의 자유 억압, 민주주의의 왜곡, 경제적 효율의 결여 등으로 60년대 이후 정체와 위기를 낳았고 개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현존 사회주의국가에서의 개혁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70년 동안 구축된 체제의 자기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주의권의 개혁은 숱한 어려움과 복잡성을 지니면서 진행되고 있다. 이 개혁의 미래는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민중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질적으로 더 높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평등을 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
현대 세계의 이같은 현실은 세계의 모든 민중운동에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달성해 인간해방의 새세상을 열 수 있는 민중의 지적·정치적 역량은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이 남김없이 발휘될 때 민중주체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진정한 민중시대가 올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 현대 세계의 이같은 현실은 세계의 모든 민중운동에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달성해 인간해방의 새세상을 열 수 있는 민중의 지적·정치적 역량은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이 남김없이 발휘될 때 민중주체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진정한 민중시대가 올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 ||
2.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 우리 민중은 민족해방을 위해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투쟁해 왔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체제의 붕괴와 해방은 우리 자체의 주체적 역량에 의해서만 쟁취된 것이 아니라, 2차대전에서의 연합국의 승리의 산물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8.15와 함께 즉각 이땅은 우리 민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으며 남한에서 일제의 식민지통치는 미군정으로 대체되었다. 구식민지체제는 붕괴되었지만 외세의 지배는 신식민지적 형태로 지속되었다. 새로운 외세의 탄압 앞에서 우리 민중 자신에 의한 자주적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주체적 노력은 좌절되고, 미국의 절대적 비호 아래서 지주, 매판자본가, 매판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대미종속적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민족분단은 더욱 고착되었다.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민중운동이 궤멸한 토대 위에서 남한은 미국의 대소 반공군사기지로 전락하고 대외종속과 민중억압과 독재를 기본적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구조가 정착·확대재생산되어 왔다. | 2.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 우리 민중은 민족해방을 위해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투쟁해 왔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체제의 붕괴와 해방은 우리 자체의 주체적 역량에 의해서만 쟁취된 것이 아니라, 2차대전에서의 연합국의 승리의 산물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8.15와 함께 즉각 이땅은 우리 민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으며 남한에서 일제의 식민지통치는 미군정으로 대체되었다. 구식민지체제는 붕괴되었지만 외세의 지배는 신식민지적 형태로 지속되었다. 새로운 외세의 탄압 앞에서 우리 민중 자신에 의한 자주적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주체적 노력은 좌절되고, 미국의 절대적 비호 아래서 지주, 매판자본가, 매판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대미종속적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민족분단은 더욱 고착되었다.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민중운동이 궤멸한 토대 위에서 남한은 미국의 대소 반공군사기지로 전락하고 대외종속과 민중억압과 독재를 기본적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구조가 정착·확대재생산되어 왔다. | ||
60년대 이후 한국자본주의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고도성장은 저임금, 장시간노동, 저곡가의 강요에 의한 가혹한 민중수탈과 광범한 특혜 지원에 의한 소수 재벌의 육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진자본주의의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의 빠른 흡수도 한 요인이었다. 그리하여 반봉건제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상품경제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 위에서 국가권력과 결탁한 소수 독점재벌이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사회가 형성되었다. 한국사회의 지배구조는 독재정권과 독점자본가가 외세와 종속적 동맹을 강고하게 유지하는 기본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 60년대 이후 한국자본주의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고도성장은 저임금, 장시간노동, 저곡가의 강요에 의한 가혹한 민중수탈과 광범한 특혜 지원에 의한 소수 재벌의 육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진자본주의의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의 빠른 흡수도 한 요인이었다. 그리하여 반봉건제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상품경제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 위에서 국가권력과 결탁한 소수 독점재벌이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사회가 형성되었다. 한국사회의 지배구조는 독재정권과 독점자본가가 외세와 종속적 동맹을 강고하게 유지하는 기본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 ||
국내외 독점자본의 지위는 독재정권의 정치적 억압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서 성립된 군사독재정권은 민중을 정치적 무권리 상태로 묶어 둠으로써 재벌의 부와 민중의 빈곤을 확대재생산해 왔다. 6월항쟁의 결과 부분적인 정치적 자유가 형식상 허용되었으나 현 독재정권은 여전히 민중의 기본권을 부정하고 주로 물리적 폭력에 매달려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 국내외 독점자본의 지위는 독재정권의 정치적 억압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서 성립된 군사독재정권은 민중을 정치적 무권리 상태로 묶어 둠으로써 재벌의 부와 민중의 빈곤을 확대재생산해 왔다. 6월항쟁의 결과 부분적인 정치적 자유가 형식상 허용되었으나 현 독재정권은 여전히 민중의 기본권을 부정하고 주로 물리적 폭력에 매달려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 ||
세계는 탈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나 한반도에는 여전히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군사적 종속국, 미국의 대소 반공군사기지로서의 한국의 지위와 남북분단의 현실은 끊임없는 군비경쟁을 통해서 우리 민중에게 냉전의 십자군 역할을 강요해 왔다. 한국전쟁 직후에 체결된 휴전협정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으며, 주한미군과 나라의 요소요소에 배치된 엄청난 규모의 핵무기는 우리 민중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대미종속과 남북분단은 이땅의 평화정착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물이며, 우리 사회의 이같은 특수한 조건 때문에 반전반핵, 평화군축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민족자주화 및 통일의 문제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 | 세계는 탈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나 한반도에는 여전히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군사적 종속국, 미국의 대소 반공군사기지로서의 한국의 지위와 남북분단의 현실은 끊임없는 군비경쟁을 통해서 우리 민중에게 냉전의 십자군 역할을 강요해 왔다. 한국전쟁 직후에 체결된 휴전협정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으며, 주한미군과 나라의 요소요소에 배치된 엄청난 규모의 핵무기는 우리 민중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대미종속과 남북분단은 이땅의 평화정착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물이며, 우리 사회의 이같은 특수한 조건 때문에 반전반핵, 평화군축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민족자주화 및 통일의 문제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 | ||
우리나라의 성장지상주의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민중의 건강과 생명, 생활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물과 공기와 토지의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은 공해강산으로 변했으며 매일 먹고 마시는 식품에는 각종 유해물질이 들어 있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하여 민중은 부의 불평등에다 전쟁의 위협, 환경파괴로 인해 이중삼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환경오염경제를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환경보전경제로 재편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의 문제로 되었다. | 우리나라의 성장지상주의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민중의 건강과 생명, 생활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물과 공기와 토지의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은 공해강산으로 변했으며 매일 먹고 마시는 식품에는 각종 유해물질이 들어 있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하여 민중은 부의 불평등에다 전쟁의 위협, 환경파괴로 인해 이중삼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환경오염경제를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환경보전경제로 재편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의 문제로 되었다. | ||
독재정권과 독점재벌, 외세의 지배는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물이자 우리 민중의 고통의 근원이다. 따라서 현단계 우리운동의 변혁과제는 이땅에서 독재정권과 독점재벌, 외세의 지배를 청산하고 민족분단의 비극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 독재정권과 독점재벌, 외세의 지배는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물이자 우리 민중의 고통의 근원이다. 따라서 현단계 우리운동의 변혁과제는 이땅에서 독재정권과 독점재벌, 외세의 지배를 청산하고 민족분단의 비극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 ||
173번째 줄: | 205번째 줄: | ||
네째, 성차별 없는 평등한 교육을 실시한다. 여성에 대한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남녀평등이념이 교육에 뿌리내리도록 한다. | 네째, 성차별 없는 평등한 교육을 실시한다. 여성에 대한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남녀평등이념이 교육에 뿌리내리도록 한다. | ||
다섯째, 국가는 가족공동체를 보호하고 가족공동체내에서 남녀의 연대와 건강한 자녀양육 및 풍부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각종의 물질적 . 문화적 사업과 지원을 수행한다. 우선적으로 탁아소와 유아원을 공공부문으로 확립하여 교육내용을 풍부화하며 가족공동체를 위협하는 성폭력문화와 퇴폐문화를 근절한다. | 다섯째, 국가는 가족공동체를 보호하고 가족공동체내에서 남녀의 연대와 건강한 자녀양육 및 풍부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각종의 물질적 . 문화적 사업과 지원을 수행한다. 우선적으로 탁아소와 유아원을 공공부문으로 확립하여 교육내용을 풍부화하며 가족공동체를 위협하는 성폭력문화와 퇴폐문화를 근절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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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회복지의 실현을 위하여 | 9. 사회복지의 실현을 위하여</font> | ||
사회복지의 실현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발전시키고 책임있는 사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사회복지는 누군가의 시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민중의 당연한 권리이다. | 사회복지의 실현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발전시키고 책임있는 사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사회복지는 누군가의 시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민중의 당연한 권리이다. | ||
187번째 줄: | 219번째 줄: | ||
여덟째, 노인, 장애자, 아동, 청소년 등에 대한 사회적 개별 서비스정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전달체계의 구축과 제반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국가는 노인·장애자·아동수당을 지급한다. | 여덟째, 노인, 장애자, 아동, 청소년 등에 대한 사회적 개별 서비스정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전달체계의 구축과 제반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국가는 노인·장애자·아동수당을 지급한다. | ||
아홉째,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위한 교통정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도로망 및 전철망의 확대를 비롯한 대중교통수단의 확충 등에 우선 주력한다. | 아홉째,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위한 교통정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도로망 및 전철망의 확대를 비롯한 대중교통수단의 확충 등에 우선 주력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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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민중문화의 창조를 위하여 | 10. 민중문화의 창조를 위하여</font> | ||
문화는 문명의 척도이자 사회발전의 가늠자이다. 우리는 소수의 특권층이 향유하고 이윤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문화가 아니라 다수 민중이 참여하고 향유하며, 사회적 연대를 발전시키는 문화를 원한다. 우리는 민족적 생활양식 속에서 형성되어 온 건강한 민족문화의 자양분을 흡수한 자주적인 민족문화를 건설하고자 한다. | 문화는 문명의 척도이자 사회발전의 가늠자이다. 우리는 소수의 특권층이 향유하고 이윤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문화가 아니라 다수 민중이 참여하고 향유하며, 사회적 연대를 발전시키는 문화를 원한다. 우리는 민족적 생활양식 속에서 형성되어 온 건강한 민족문화의 자양분을 흡수한 자주적인 민족문화를 건설하고자 한다. | ||
문화생활에서 민중의 참여와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는 민중들 자신에 의해서 전개되는 문화활동과 문화운동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문화적 다원주의에 입각한 부분문화의 활성화가 전체 문화의 풍부화를 위한 조건이 된다. | 문화생활에서 민중의 참여와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는 민중들 자신에 의해서 전개되는 문화활동과 문화운동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문화적 다원주의에 입각한 부분문화의 활성화가 전체 문화의 풍부화를 위한 조건이 된다. | ||
인간의 창조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전문예술 분야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예술의 분야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양자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 건강한 여가활용과 스포츠 활동은 건강한 노동생활의 연장임을 인식하여 그 사회적 기회를 다양화하고 넓히는 데 노력한다. | 인간의 창조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전문예술 분야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예술의 분야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양자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 건강한 여가활용과 스포츠 활동은 건강한 노동생활의 연장임을 인식하여 그 사회적 기회를 다양화하고 넓히는 데 노력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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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간해방을 위한 교육 | 11. 인간해방을 위한 교육</font> | ||
민중주체의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의식과 실천력을 높여야 한다. | 민중주체의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의식과 실천력을 높여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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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째, 통합교육의 원리에 입각하여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통합, 학습과 노동의 통합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 이에 따라 학제와 교과과정 그리고 입시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 네째, 통합교육의 원리에 입각하여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통합, 학습과 노동의 통합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 이에 따라 학제와 교과과정 그리고 입시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 ||
다섯째, 졸업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계속 학습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평생교육의 조건을 마련하다. | 다섯째, 졸업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계속 학습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평생교육의 조건을 마련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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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자연과 인간의 공생으로서의 환경보전 | 12. 자연과 인간의 공생으로서의 환경보전</font> | ||
환경보전이란 자연을 단순히 정복·지배·개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사회의 모든 발전을 자연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 환경보전이란 자연을 단순히 정복·지배·개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사회의 모든 발전을 자연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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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출처 : 민중당, 「민중당 강령·기본정책」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p.3~19.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91<ref name="OCR"></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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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헌 == | |||
{|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style="width:100%; text-align:left; background:#f9f4e6; border:1px solid #0a0a0a; padding:10px; word-wrap:break-word;" | |||
! 민중당 당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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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hite-space: normal; word-break: break-wor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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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middle"><font size="4">전 문</font></div> | |||
우리는 이땅에 민중주체의 참다운 민주세상을 건설하고 7천만겨레의 염원인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민중당을 창당한다. | |||
우리는 분단이후 계속되어온 독재체제를 종식시키고 민중주체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며, 국내외 독점자본 위주의 경제구조를 혁신하고 민중주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삶을 누리도록 할 것이다. | |||
우리는 노동자와 농·어민, 도시서민, 중간계층, 지식인, 여성, 청년학생, 중소상공인 등 각계각층 민중이 민중당의 주인으로 결집하여 정치와 역사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당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한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행동의 통일은 당운영의 생명이다. | |||
또한 우리는 민중에게 봉사하고 민중으로부터 배우는 자세를 항상 지켜 나갈 것이다. 이에 모든 당원의 규범이 될 이 당헌을 제정한다. | |||
1990. 11. 10. | |||
<div align="middle"><font size="4">제1장 총 칙</font></div> | |||
제1조 (명칭) 우리 당의 명칭은 민중당 이라 한다. | |||
제2조 (목적) 우리 당은 민중주체의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완수함으로써 이 땅에 자유·평등·평화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가 보장되는 사회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 |||
제 3조 (조직) ① 우리 당은 중앙당을 서울특별시에 두고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 단위로 지구당을 둔다. | |||
② 중앙당은 서울특별시와 직할시 및 도에 시·도지부를, 지구당은 그 구역 내 구·시·군에 연락소를 둘 수 있다. | |||
<div align="middle"><font size="4">제2장 당 원</font></div> | |||
제 4조 (요건) ① 법령에 의하여 정당원이 될 자격이 있는자로서 우리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동의하고, 당의 활동에 참가하는 자는 누구든 소정의 절차를 밟아 당원이 될 수 있다. | |||
② 당원의 입당과 탈당, 복당, 이적 등에 관한 사항은 당규로 정한다. | |||
제5조 (당원의 권리) ① 당원은 당헌 · 당규가 정하는바에 따라 선거권 · 피선거권과 당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 |||
② 당원은 당의 회의 또는 당의 출판물을 통하여 당 정책의 결정과 실시에 관한 토의에 균등하게 참가할 권리를 가진다. | |||
③ 당원은 전당대회에 이르기까지 여하한 당기관에 대해서도 제안 및 의견을 제출 할 수 있다. | |||
④ 당원은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권리침해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청원할 수 있다. | |||
제6조 (당원의 의무) ① 당원은 당헌 · 당규를 준수하고 당론과 당명에 충실하며, 당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 | |||
② 당원은 당무수행 중 알게된 기밀을 지키며 당이 실시하는 소정의 교육훈련을 이수하고 당비를 납부할 의무를 진다. | |||
<div align="middle"><font size="4">제3장 대의기관</font></div> | |||
<font size="3">제1절 전당대회</font> | |||
제7조 (지위와 구성) ① 전당대회는 당의 최고 의결기관이며 다음의 대의원으로 구성한다. | |||
1. 중앙위원 | |||
2. 당소속 시·군·구 의회의원 | |||
3. 중앙당의 부장급 이상 간부 | |||
4. 시·도지부의 국장급 이상 간부 | |||
5. 지구당 사무국장 | |||
6. 당원수를 기준으로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지구당에 할당된 수의 대의원 | |||
7.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승인된 지지단체에 할당된 수의 대의원 | |||
② 전당대회에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둔다. | |||
③ 전당대회 대의원의 자격, 기타 필요한 사항은 당규로 정한다. | |||
제8조 (권한) ① 전당대회는 다음의 사항을 의결한다. | |||
1. 대표위원의 선출과 소환 | |||
2. 전당대회 의장 및 부의장의 선출 | |||
3. 대통령 후보자의 지명 | |||
4. 상임고문 및 고문의 추대 | |||
5. 강령의 채택 및 수정 | |||
6. 당헌의 제정 및 개정 | |||
7. 당의 해산 및 합당에 관한 사항 | |||
8. 중앙위원회 또는 중앙집행위원회가 제출한 안건의 처리 | |||
9. 기타 중요한 당무 | |||
② 전당대회는 전항 제4호 제8호 및 제9호의 권한을 중앙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다. | |||
제9조 (소집 및 의결) ① 정기 전당대회는 2년에 1회, 3월 중에 전당대회 의장이 소집한다. 단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중앙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90일 한도 내에서 그 개최를 연기할 수 있다. | |||
② 전당대회 의장은 중앙위원회 또는 중앙집행위원회의 의결이 있거나 전당대회 재적 대의원 3분의 1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2개월 이내에 임시전당대회를 소집하여야 한다. | |||
③ 전당대회가 대표위원을 소환하고자 할 때에는 재적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 |||
④ 전당대회의 의사 기타 필요한 사항은 당규로 정한다. | |||
<font size="3">제2절 중앙위원회</font> | |||
제10조 (지위와 구성) ① 중앙위원회는 다음의 중앙위원으로 구성한다. | |||
1. 대표위원 | |||
2. 상임고문 및 고문 | |||
3. 전당대회 의장 및 부의장 | |||
4. 중앙집행위원 | |||
5. 시·도지부장 대표이동 | |||
6. 지구당 위원장 | |||
7. 중앙당의 국장급 이상 간부 | |||
8. 시· 도지부 사무처장 | |||
9. 당소속 국회의원 | |||
10. 당소속 지방자치단체장 및 서울특별시 · 직할시 . 도 의회 의원 | |||
11.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지구당이 선출한 중앙위원 | |||
12. 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승인된 지지단체에 할당된 수의 중앙위원 | |||
② 중앙위원회에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둔다. | |||
제11조 (권한) ① 중앙위원회는 다음의 사항을 의결한다. | |||
1. 중앙위원회 의장 및 부의장의 선출 | |||
2. 전당대회에서 위임받은 사항의 처리 | |||
3. 당규의 제정 및 개정 | |||
4. 예산과 결산의 승인 | |||
5. 주요 정책 및 당 방침의 수립 | |||
6. 중앙 당기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의 선출 | |||
7. 당연직이 아닌 중앙집행위원의 선출 | |||
8. 궐위된 대표위원의 선출 | |||
② 중앙위원회는 전항 제3호 내지 제5호의 권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중앙집행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다. | |||
제12조 (소집 및 의결) ① 정기 중앙위원회는 3개월에 1회 이상 중앙위원회 의장이 소집한다. 단 중앙위원회 의장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의결이 있거나 재적 중앙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때에는 30일 이내에 임시 중앙위원회를 소집하여야 한다. | |||
② 중앙위원회의 의사 기타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당규로 정한다. | |||
<div align="middle"><font size="4">제4장 집행기관</font></div> | |||
<font size="3">제1절 대표위원</font> | |||
제13조 (대표위원) ① 당에 대표위원 수인을 두며, 필요에 따라 상임대표위원을 둘 수 있다. 상임대표위원은 대표위원중 호선한다. | |||
② 대표위원은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총괄한다. | |||
제14조 (선출) ① 대표위원은 전당대회에서 다수결로 선출한다. | |||
② 대표위원이 궐위된 때에는 중앙위원회에서 후임자를 선출하며, 그 임기는 전임자의 잔임기간으로 한다. | |||
제15조 (직무대행) 대표위원이 유고 또는 궐위된 때에는 전당대회의장, 중앙위원회 의장의 순으로 그 직무를 대행한다. | |||
제16조 (고문) ① 주요 당무 및 당정책에 관한 자문역으로 고문 수인을 두며, 필요에 따라 상임고문을 둘 수 있다. | |||
② 상임고문 및 고문은 대표위원의 추천으로 전당대회가 추대한다. | |||
제17조 (비서실) 대표위원의 당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비서실을 두며, 필요에 따라 특별 보좌역을 둘 수 있다. | |||
<font size="3">제2절 중앙집행위원회</font> | |||
제18조 (구성) ① 중앙집행위원회는 당의 최고 집행기관이며 다음의 위원으로 | |||
①②③④⑤⑥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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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p.6~24.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05383<ref name="OCR"></ref> | |||
</poem> | </poem> | ||
</div> | |||
|} | |} | ||
<div style="clear:both"></div> | |||
== 당규 ==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05383 | |||
== 당가 == | |||
{|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style="width:60%; text-align:left; background:#f9f4e6; border:1px solid #0a0a0a; padding:10px; word-wrap:break-word;" | |||
! 민중당 당가 <민중의 나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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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hite-space: normal; word-break: break-wor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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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민중의나라로.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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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당동대문구(갑)지구당, 「민중당 동대문구(갑)지구당 창당대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10일, 2025년 2월 22일 게시물 확인. p.8.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11300 | |||
</div> | |||
|} | |||
<div style="clear:both"></div> | <div style="clear:both"></div> | ||
== 로고 == | |||
{|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style="width:100%; text-align:left; background:#f9f4e6; border:1px solid #0a0a0a; padding:10px; word-wrap:break-word;" | |||
! 민중당 로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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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hite-space: normal; word-break: break-wor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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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민중당 로고.jpg]] | |||
* 민중당의 심벌은 전체적으로 '인간해방'을 상징한다. | |||
* 위쪽의 원형 테두리는 태양을 단순화시킨 것으로 '떠오르는 민중의 새시대'를 의미한다. | |||
* 원 안쪽의 사람형상은 '인간존중'의 이념을 나타낸다. | |||
* 아랫부분의 삼선은 각각 위로부터 민권·민생·평화를 상징한다. | |||
* 민중당은 90년 11월 창당 전, 한달 여의 기간 동안 심볼 공모를 받았다. 이후 공모된 작품들의 장점들을 합쳐 새롭게 합성하여 심볼을 제작하였다. | |||
*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직선보다는 곡선을 주로 사용하였다.<ref>이상 로고 해설에 대한 출처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202120014374893 </ref><ref>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노동당 통합 이후 이 심볼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한국노동당과의 통합 이후인 1992년 총선에서도 이 로고를 사용하였다. 1992년 총선에 출마한 민중당 후보들의 공보물을 보면 이 로고가 사용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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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1.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05383 | |||
</div> | |||
|} | |||
<div style="clear:both"></div> | |||
== 구조 == | |||
=== 중앙당 === | |||
[[파일:민중창준위.png]] | |||
▲ 창당준비위원회 시절 | |||
[[파일:0053987 0031.jpg]] | |||
▲ 창당 이후 | |||
=== 지구당 === | |||
== 정책 == | == 정책 ==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91 | * 민중당, 「민중당 강령·기본정책」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91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7487 |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1」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4월 27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7487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82 |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Ⅱ」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82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830 |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III: 지방자치제와 사회복지-지자체 선거시 민주후보의 사회복지부문 선거공약을 위한 정책 제안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830 | ||
== | == 기관지 == | ||
== 연혁 == | == 연혁 == | ||
=== 1990년 === | === 1990년 === | ||
==== 6월 21일 ==== | |||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민중당(가칭)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는 1천2백여 명의 창당발기인이 참석했다. 이날 인선된 당직자들은 다음과 같다.<ref name="창당발기인대회">작성자 불명, 「민중당 창당 발기인 대회」 , 『한겨레』 , 1990년 6월 22일, 2024년 12월 27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62200289101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6-22&officeId=00028&pageNo=1&printNo=651&publishType=00010</ref> | |||
* 공동창당준비위원장 : 이우재 민연추 공동대표, 김상기 경북대 교수 (선출) | |||
* 상임고문 : 백기완 민연추 공동대표, 김윤환 고려대 명예교수, 김한림 민가협 초대의장, 권처흥 노동자<ref>훗날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맡게 되는 권용목의 아버지이다. 본인 스스로도 노동운동가로 활약했다. 훗날 부자 모두 뉴라이트 활동에 참여하며 전향했다. | |||
<br>김혜선 기자, 「"민노총은 남탓말고 스스로 반성해라"」 , 『뉴데일리』 , 2009년 3월 13일, 2009년 5월 19일 수정, 2025년 2월 13일 기사 확인. | |||
<br>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9/03/13/2009031300005.html</ref> (추대) | |||
* 정책위원장 : 장기표 (임명) | |||
* 사무처장 : 이재오 (임명) | |||
* 조직위원장 : 조춘구 (임명) | |||
* 농민위원장 : 정수일 (임명) | |||
* 노동위원장 : 김문수 (임명) | |||
* 여성위원장 : 지은희 (임명) | |||
* 교수위원장 : 오세철 (임명) | |||
* 대변인 : 정문화 (임명) | |||
==== 7월 7일 ==== | |||
당사에서 현판식을 가졌다.<ref>민중당 현판식 현장 사진 모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7월 7일, 2024년 12월 27일 게시물 확인.) <br>https://archives.kdemo.or.kr/photo-archives/view/00757118</ref> | |||
==== 11월 10일 ==== | |||
서울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이날 인선된 당직자들은 다음과 같다.<ref name="창당대회">작성자 불명, 「"민중주체 민주사회 건설"」 , 『한겨레』 , 1990년 11월 11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1110028910100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11&officeId=00028&pageNo=1&printNo=772&publishType=00010</ref> | |||
* 상임대표 : 이우재 창당준비위원장 (선출) | |||
* 공동대표 : 김상기 경북대 교수, 김낙중 전 고려대 교수 (선출) | |||
* 상임고문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선출) | |||
* 사무총장 : 이재오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처장 (선출) | |||
* 정책위원장 : 장기표 정강기초위원장 (선출) | |||
* 대변인 : 정문화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 (선출) | |||
창당대회에서 창당선언문, 강령, 기본정책, 당헌이 채택되었고 당을 각계위원회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는 것과 당직의 20%를 여성으로 채우는 것이 결정되었다. 창당대회에는 3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창당대회의 시점에서 민중당은 총 51개의 지구당을 가지고 있었다.<ref name="창당대회"></ref><ref>선관위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지구당은 총 48개였다. 대한민국정당사 4집 184p.</ref> <br><br>창당대회 현장에서 소란이 있었다. 창당대회에 사노맹을 지지하는 학생과 노동자 20여명이 참석해 '사회주의 만세' 등의 문구가 써진 플랜카드를 내걸려다 민중당 당원들과 마찰을 빚었다.<ref>전영배 기자, 「오늘 진보적 민중당 창당, 대표 선출」 , 『MBC』 ,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br>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40847_30436.html</ref> | |||
==== 11월 19일 ==== | |||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여 법적인 창당을 완료하였다.<ref>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정당사 제4집』 , 2000년, 183p. <br>https://library.nec.go.kr/neweps/epdata/EP24/EBM2024/01/EBM0120240255/index.html</ref> 창당 당시 당사의 위치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4-6 신영빌딩 4층이었다.<ref>대한민국정당사 4집 184p.</ref> | |||
==== 12월 27일 ==== | |||
제3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했다. | |||
=== 1991년 === | === 1991년 === | ||
==== 2월 11일 ==== | |||
제4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했다. | |||
==== 3월 8일 ==== | |||
제5차 (임시)중앙위원회를 개최했다. | |||
==== 5월 1일 ==== | |||
당사를 마포에서 여의도(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호성빌딩 201호)로 이전했다.<ref>작성자 불명, 「민중당 당사 여의도 이전」 , 『한겨레』 , 1991년 5월 22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50200289102009&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5-02&officeId=00028&pageNo=2&printNo=914&publishType=00010</ref> | |||
==== 6월 20일 ==== | |||
시·도의회의원 선거 결과 성희직 1명만이 당선되었다. | |||
==== 11월 18일 ==== | |||
이우재 대표를 비롯한 민중당 간부들이 노태우 대통령을 접견해 대화를 나눴다. | |||
=== 1992년 === | === 1992년 === | ||
==== 2월 6일 ==== | |||
한국노동당(가칭)과의 통합에 성공했다.<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2020600289103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2-06&officeId=00028&pageNo=3&printNo=1150&publishType=00010</ref> | |||
== 선거 결과 == | |||
=== 1991년 광역의원 선거 === | |||
=== 1992년 국회의원 선거 === | |||
== 출신 인물 == | == 출신 인물 == | ||
* [[김길오]] | * [[김길오]] | ||
* 김낙중<ref name="창당대회"></ref> | |||
* 김두관<ref name="민중계">김기영 기자, 「한나라당 ‘민중계’가 잘 나가는 이유」 , 『신동아』 2002년 10월호, 2002년 10월 4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br>https://shindonga.donga.com/politics/article/all/13/101888/6</ref> | * 김두관<ref name="민중계">김기영 기자, 「한나라당 ‘민중계’가 잘 나가는 이유」 , 『신동아』 2002년 10월호, 2002년 10월 4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br>https://shindonga.donga.com/politics/article/all/13/101888/6</ref> | ||
* 김문수<ref name="민중계"></ref> | * 김문수<ref name="민중계"></ref> | ||
* 김상기<ref name="창당대회"></ref> | |||
* 김성식<ref name="민중계"></ref> | * 김성식<ref name="민중계"></ref> | ||
* 서형원<ref name="민중계"></ref> | * 서형원<ref name="민중계"></ref> | ||
* 성희직 | * 성희직<ref>https://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199114061&queryText=&zone=&fieldText=&prevQueryText=%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3AALL_NI_TOC%3AAND&prevPubYearFieldText=&languageCode=&synonymYn=&refineSearchYn=&pageNum=&pageSize=&orderBy=&topMainMenuCode=&topSubMenuCode=&totalSize=6&totalSizeByMenu=6&seqNo=&hanjaYn=Y&knowPub=&isdb=&isdbsvc=&tt1=&down=&frgnLangMtrlYn=&targetLangCode=&checkedDbIdList=&baseDbId=&selectedDbIndexIdList=&caller=&asideState=&dpBranch=ALL&journalKind=&selZone=ALL_NI_TOC&searchQuery=%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none p.287.</ref> | ||
* 안영근<ref name="민중계"></ref> | * 안영근<ref name="민중계"></ref> | ||
* 오세철 | * 오세철<ref name="창당발기인대회"></ref> | ||
* 이우재<ref name="민중계"></ref> | * 이우재<ref name="민중계"></ref> | ||
273번째 줄: | 536번째 줄: | ||
* 최혁<ref name="민중계"></ref> | * 최혁<ref name="민중계"></ref> | ||
* 허경영 | * 허경영<ref>https://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199114061&queryText=&zone=&fieldText=&prevQueryText=%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3AALL_NI_TOC%3AAND&prevPubYearFieldText=&languageCode=&synonymYn=&refineSearchYn=&pageNum=&pageSize=&orderBy=&topMainMenuCode=&topSubMenuCode=&totalSize=6&totalSizeByMenu=6&seqNo=&hanjaYn=Y&knowPub=&isdb=&isdbsvc=&tt1=&down=&frgnLangMtrlYn=&targetLangCode=&checkedDbIdList=&baseDbId=&selectedDbIndexIdList=&caller=&asideState=&dpBranch=ALL&journalKind=&selZone=ALL_NI_TOC&searchQuery=%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none p.162.</ref> | ||
== 여담 == | == 여담 == | ||
* 당의 공동대표이자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1번 후보로 공천을 받았던 김낙중 전 고려대 교수는 이후 간첩 사건에 연루되었다.<ref>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558</ref> 그 외에 권두영 민중당 고문 등도 간첩 사건에 연루되었다. | |||
== | == 참고 문헌 == | ||
=== 중앙위원회 문건 === | === 중앙위원회 문건 === | ||
* 민중당, 「민중당 제3차 중앙위원회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2월 27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45 | * 민중당, 「민중당 제3차 중앙위원회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2월 27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45 | ||
340번째 줄: | 604번째 줄: | ||
* 민중당, 「제18차 중집,제19차(통합1차)중집,제77차(통합1차)상집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2월 15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2610 | * 민중당, 「제18차 중집,제19차(통합1차)중집,제77차(통합1차)상집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2월 15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2610 | ||
=== 지구당 문건 === | |||
* 민중당동대문구(갑)지구당, 「민중당 동대문구(갑)지구당 창당대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10일, 2025년 2월 22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11300 | |||
* 민중당 안산시옹진군지구당, 「민중당 제5차 임시당원대회 자료집」<ref>문서의 제목은 「민중당 제5차 임시당원대회 자료집」으로 되어있으나, 정확히는 민중당 '안산시옹진군지구당'의 5차 임시당원대회 자료집인 것으로 추측됨.</ref>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4월 28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843 | |||
=== 실무자회의 관련 문건 === | === 실무자회의 관련 문건 === | ||
348번째 줄: | 617번째 줄: | ||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회의 제3차 전원회의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23일, 2024년 12월 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5 |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회의 제3차 전원회의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23일, 2024년 12월 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5 | ||
* 오세철, | * 오세철, 「[[더 이상 당개혁을 늦출수 없습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24일, 2024년 12월 1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68099 | ||
* 제명 당원 6인(김정하, 김길오, 김선식, 김흥균, 최혁, 한승인), 「재심청구 사유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23일, 2024년 12월 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36168 | * 제명 당원 6인(김정하, 김길오, 김선식, 김흥균, 최혁, 한승인), 「재심청구 사유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23일, 2024년 12월 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36168 | ||
355번째 줄: | 624번째 줄: | ||
* 민중당 중앙당기위원장, 「김걸오 외 5인에 대한 징계 재심 의결서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8월 14일, 2024년 12월 8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1 | * 민중당 중앙당기위원장, 「김걸오 외 5인에 대한 징계 재심 의결서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8월 14일, 2024년 12월 8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1 | ||
=== 기타 당 공식 문건 === | |||
*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민중당 창당발기인대회 자료집」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6월 21일, 2025년 2월 12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976929 | |||
* 민중당, 「자료집-민중당 창당대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13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3987 | |||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05383 | |||
* 민중당, 「민중당 강령·기본정책」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91 | |||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1」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4월 27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7487 | |||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Ⅱ」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82 | |||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III: 지방자치제와 사회복지-지자체 선거시 민주후보의 사회복지부문 선거공약을 위한 정책 제안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830 | |||
=== 신문 기사 === | === 신문 기사 === | ||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62200289101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6-22&officeId=00028&pageNo=1&printNo=651&publishType=00010 | * 작성자 불명, 「민중당 창당 발기인 대회」 , 『한겨레』 , 1990년 6월 22일, 2024년 12월 27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62200289101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6-22&officeId=00028&pageNo=1&printNo=651&publishType=00010 | ||
* 서명숙 기자, 「야권통합 바람 속 “흔들리지 않게”」 , 『시사저널』 , 1990년 8월 30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201 | |||
* 전영배 기자, 「오늘 진보적 민중당 창당, 대표 선출」 , 『MBC』 ,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40847_30436.html | |||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1110028910100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11&officeId=00028&pageNo=1&printNo=772&publishType=00010 | * 작성자 불명, 「"민중주체 민주사회 건설"」 , 『한겨레』 , 1990년 11월 11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1110028910100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11&officeId=00028&pageNo=1&printNo=772&publishType=00010 | ||
* 작성자 불명, 「민중당 당사 여의도 이전」 , 『한겨레』 , 1991년 5월 22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50200289102009&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5-02&officeId=00028&pageNo=2&printNo=914&publishType=00010 | |||
* 작성자 불명, 「개혁추진위 관련 민중당 6명 제명」 , 『한겨레』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5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600289101008&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7-16&officeId=00028&pageNo=1&printNo=978&publishType=00010 | * 작성자 불명, 「개혁추진위 관련 민중당 6명 제명」 , 『한겨레』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5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600289101008&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7-16&officeId=00028&pageNo=1&printNo=978&publishType=00010 | ||
368번째 줄: | 658번째 줄: | ||
* 작성자 불명, 「左派(좌파)제거로 內部(내부)정리」 , 『경향신문』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800329105009&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7-18&officeId=00032&pageNo=5&printNo=14114&publishType=00010 | * 작성자 불명, 「左派(좌파)제거로 內部(내부)정리」 , 『경향신문』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800329105009&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7-18&officeId=00032&pageNo=5&printNo=14114&publishType=00010 | ||
* 이계성 기자, 「정당 심벌마크 무엇을 의미하나 (화제추적)」 , 『한국일보』 , 1992년 2월 12일, 2025년 3월 7일 기사 확인.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202120014374893 | |||
*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846 | |||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2020600289103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2-06&officeId=00028&pageNo=3&printNo=1150&publishType=00010 | |||
* 김기영 기자, 「한나라당 ‘민중계’가 잘 나가는 이유」 , 『신동아』 2002년 10월호, 2002년 10월 4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shindonga.donga.com/politics/article/all/13/101888/6 | * 김기영 기자, 「한나라당 ‘민중계’가 잘 나가는 이유」 , 『신동아』 2002년 10월호, 2002년 10월 4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shindonga.donga.com/politics/article/all/13/101888/6 | ||
=== | *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_id=18834&dept=113 | ||
* | |||
=== 도서 === | |||
* 이정로, 정기상, 박노해, 한승호, 김태윤, 박정식, 김영교, 정영훈, 김창희, 김현수, 『민중당, 국민연합 그리고 민중통일전선』 , 노동문학사, 1990년. | |||
* 시도의회의원선거총람 1991년 https://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199114061&queryText=&zone=&fieldText=&prevQueryText=%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3AALL_NI_TOC%3AAND&prevPubYearFieldText=&languageCode=&synonymYn=&refineSearchYn=&pageNum=&pageSize=&orderBy=&topMainMenuCode=&topSubMenuCode=&totalSize=6&totalSizeByMenu=6&seqNo=&hanjaYn=Y&knowPub=&isdb=&isdbsvc=&tt1=&down=&frgnLangMtrlYn=&targetLangCode=&checkedDbIdList=&baseDbId=&selectedDbIndexIdList=&caller=&asideState=&dpBranch=ALL&journalKind=&selZone=ALL_NI_TOC&searchQuery=%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none | |||
* 제14대국회의원선거총람 1992년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resultType=&pageNum=1&pageSize=30&order=&sort=&srchTarget=&kwd=&systemType=&lnbTypeName=&category=%EB%8F%84%EC%84%9C&hanjaFlag=&reSrchFlag=&licYn=&kdcName1s=&manageName=&langName=&ipubYear=&pubyearName=&detailSearch=true&mediaCode=&offerDbcode2s=&f1=title&v1=%EC%A0%9C14%EB%8C%80+%EA%B5%AD%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f2=author&v2=&f3=publisher&v3=&isbnOp=isbn&isbnCode=&f4=keyword&v4=&and3=&and4=&and5=&and6=&and7=&and8=&and9=&and10=&and11=&and12=&guCode3=&guCode4=&guCode5=&guCode6=&guCode7=&guCode8=&guCode11=&gu12=&gu13=&gu14=&gu15=&gu16=&subject=&sYear=&eYear=&sRegDate=&eRegDate=&typeCode=&acConNo=&acConNoSubject=&classCodeType=&classCodeValue=#viewKey=256396&viewType=AH1&category=%EB%8F%84%EC%84%9C&pageIdx=1&jourId= | |||
*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정당사 제4집』 , 2000년. https://library.nec.go.kr/neweps/epdata/EP24/EBM2024/01/EBM0120240255/index.html | ||
* | === 논문 === | ||
* 김보현,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내부정치 - "연대의 결여"와 "지체된 성장"」 , 『기억과 전망』 18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2876761 | |||
* https:// | === 광고 === | ||
* 이우재, 김낙중, 장영근, 김종신, 김결, 이재오, 장기표, 지은희, 김문수, 신철영, 임수태, 정태윤, 유인열, 이원주, 염만숙, 송경평, 「민중당을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 『한겨레』 , 1992년 4월 15일, 2025년 2월 13일 광고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204150028910201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04-15&officeId=00028&pageNo=2&printNo=1210&publishType=00010 | |||
* https://archives.kdemo.or.kr/ | === 기타 === | ||
* 민중당 현판식 현장 사진 모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7월 7일, 2024년 12월 27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photo-archives/view/00757118 |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 | * 양달섭, 「중앙집행위원들께 드리는 글[민중당 창당 발기인 참여 징계관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9월 ?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30134 |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 | * 주대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9월 29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3458 | ||
*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 | *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원회, 「민중당접촉 공동확인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12월 ?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29576 | ||
*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 「통합에 관한 해법」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월 ?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5655 | |||
* https://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singleData=Y&archiveEventId=0028270375 28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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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정당]] | [[분류:정당]] |
2025년 6월 16일 (월) 17:07 기준 최신판
1990년 창당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화를 시도한 운동권 분파 중, 일정한 성과를 보인 최초의 사례였다.
발기취지문
민중당(가칭) 발기취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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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와 전세계 자유인들의 이목이 주시하는 가운데 ‘민중당’의 창당발기를 힘차게 선언한다. ‘민중당’의 출범선언은 국민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여성, 중간계층, 중소상공인 등 민중이 수탈과 억압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정치의 주인됨을 선언하는 것이며 분단과 예속의 체제를 타파하여 자주, 민주, 통일, 민중복지의 민족사를 개척하는 주체가 됨을 선포하는 것이다.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정당사 제4집』 , 2000년. pp.580~581. |
창당선언문
민중당 창당선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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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민중주체의 참다운 민주사회를 건설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민중의 염원과 역량을 한데 모아 역사적인 민중당의 창당을 7천만 국내외 겨레와 세계만방에 힘차게 선언한다. 출처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p.3~5. |
강령
민중당 강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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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와 한국사회
우리는 어떤 사회를 추구하는가
출처 : 민중당, 「민중당 강령·기본정책」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p.3~19. |
당헌
민중당 당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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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문
제1장 총 칙
제2장 당 원
제3장 대의기관
제4장 집행기관
출처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p.6~24. |
당규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05383
당가
민중당 당가 <민중의 나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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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당동대문구(갑)지구당, 「민중당 동대문구(갑)지구당 창당대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10일, 2025년 2월 22일 게시물 확인. p.8. |
로고
민중당 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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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p.1. |
구조
중앙당
▲ 창당준비위원회 시절
▲ 창당 이후
지구당
정책
- 민중당, 「민중당 강령·기본정책」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91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1」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4월 27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7487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Ⅱ」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82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III: 지방자치제와 사회복지-지자체 선거시 민주후보의 사회복지부문 선거공약을 위한 정책 제안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830
기관지
연혁
1990년
6월 21일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민중당(가칭)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는 1천2백여 명의 창당발기인이 참석했다. 이날 인선된 당직자들은 다음과 같다.[4]
- 공동창당준비위원장 : 이우재 민연추 공동대표, 김상기 경북대 교수 (선출)
- 상임고문 : 백기완 민연추 공동대표, 김윤환 고려대 명예교수, 김한림 민가협 초대의장, 권처흥 노동자[5] (추대)
- 정책위원장 : 장기표 (임명)
- 사무처장 : 이재오 (임명)
- 조직위원장 : 조춘구 (임명)
- 농민위원장 : 정수일 (임명)
- 노동위원장 : 김문수 (임명)
- 여성위원장 : 지은희 (임명)
- 교수위원장 : 오세철 (임명)
- 대변인 : 정문화 (임명)
7월 7일
당사에서 현판식을 가졌다.[6]
11월 10일
서울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이날 인선된 당직자들은 다음과 같다.[7]
- 상임대표 : 이우재 창당준비위원장 (선출)
- 공동대표 : 김상기 경북대 교수, 김낙중 전 고려대 교수 (선출)
- 상임고문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선출)
- 사무총장 : 이재오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처장 (선출)
- 정책위원장 : 장기표 정강기초위원장 (선출)
- 대변인 : 정문화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 (선출)
창당대회에서 창당선언문, 강령, 기본정책, 당헌이 채택되었고 당을 각계위원회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는 것과 당직의 20%를 여성으로 채우는 것이 결정되었다. 창당대회에는 3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창당대회의 시점에서 민중당은 총 51개의 지구당을 가지고 있었다.[7][8]
창당대회 현장에서 소란이 있었다. 창당대회에 사노맹을 지지하는 학생과 노동자 20여명이 참석해 '사회주의 만세' 등의 문구가 써진 플랜카드를 내걸려다 민중당 당원들과 마찰을 빚었다.[9]
11월 19일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여 법적인 창당을 완료하였다.[10] 창당 당시 당사의 위치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4-6 신영빌딩 4층이었다.[11]
12월 27일
제3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했다.
1991년
2월 11일
제4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했다.
3월 8일
제5차 (임시)중앙위원회를 개최했다.
5월 1일
당사를 마포에서 여의도(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호성빌딩 201호)로 이전했다.[12]
6월 20일
시·도의회의원 선거 결과 성희직 1명만이 당선되었다.
11월 18일
이우재 대표를 비롯한 민중당 간부들이 노태우 대통령을 접견해 대화를 나눴다.
1992년
2월 6일
한국노동당(가칭)과의 통합에 성공했다.[13]
선거 결과
1991년 광역의원 선거
1992년 국회의원 선거
출신 인물
- 김낙중[7]
- 김두관[14]
- 김문수[14]
- 김상기[7]
- 김성식[14]
- 서형원[14]
- 성희직[15]
- 안영근[14]
- 오세철[4]
- 이우재[14]
- 이재오[14]
- 장기표[14]
- 정태윤[14]
- 최혁[14]
- 허경영[16]
여담
- 당의 공동대표이자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1번 후보로 공천을 받았던 김낙중 전 고려대 교수는 이후 간첩 사건에 연루되었다.[17] 그 외에 권두영 민중당 고문 등도 간첩 사건에 연루되었다.
참고 문헌
중앙위원회 문건
- 민중당, 「민중당 제3차 중앙위원회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2월 27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45
- 민중당, 「민중당 제4차 중앙위원회 회의내용」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2월 11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30
- 민중당, 「기초의회선거에 대한 민중당의 방침-제5차 중앙위원회 회의 보고」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월 ?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68039
- 민중당, 「제5차(임시)중앙위원회 결정사항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3월 13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25
- 민중당, 「제9차 중앙위원회 안건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4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9
- 민중당 사무총장, 「제9차 중앙위원회 회의내용」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10일, 2024년 12월 8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6
-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원회, 「민중당 중앙위 소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월 ?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68387
- 민중당중앙위원회 준비소위원회, 「민중당 제15차 중앙위원회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4월 9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72419
중앙집행위원회 문건
- 민중당 사무총장, 「제2차 중앙집행위원회 제7차 중앙상임위원회 회의내용 송부 및 중앙집행위원회 소집 공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2월 27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43
- 민중당, 「민중당 제3차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내용」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1월 7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39
- 민중당 사무총장, 「제6차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내용 송부에 관한 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3월 14일, 2024년 12월 1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27
- 민중당 사무총장, 「제8차 중앙집행위원회 소집공고 및 제2차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록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4월 22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21
- 민중당 사무총장, 「제32차 상집 회의록 및 제11차 중집회의록등에 관한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2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9
- 민중당, 「제18차 중집,제19차(통합1차)중집,제77차(통합1차)상집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2월 15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2610
중앙상임집행위원회 문건
- 민중당, 「제5차 중상집 및 12. 13 임시 중상집 회의내용 공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2월 14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44
- 민중당 사무총장, 「제2차 중앙집행위원회 제7차 중앙상임위원회 회의내용 송부 및 중앙집행위원회 소집 공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2월 27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43
- 민중당, 「민중당 임시상임집행위원회 회의내용」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1월 10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49
- 민중당, 「민중당 제9차 상임집행위원회 회의내용」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1월 14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38
- 민중당, 「제11차 상집회의 내용(요약)」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1월 31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33
- 민중당 대표위원, 「제16차 상집회의내용 송부 및 제5차 중앙위 소집공고에 관한 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3월 4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29
- 민중당 사무총장, 「제18차 상임집행위원회 회의내용 송부등에 관한 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3월 27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24
- 민중당 사무총장, 「제19차 상임집행위원회 회의내용 송부등에 관한 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4월 3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23
- 민중당 사무총장, 「제20차 상임집행위원 회의록 및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록 송부등에 관한 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4월 16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20
- 민중당 사무총장, 「제32차 상집 회의록 및 제11차 중집회의록등에 관한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2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9
- 민중당 사무총장, 「제33차 상집 회의내용 요약」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4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8
- 민중당 사무총장, 「제34차 상집 회의내용 요약」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8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7
- 민중당 사무총장, 「제37차 상임집행위원회 회의내용 요약」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19일, 2024년 1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4
- 민중당 사무총장, 「제38차 상집위 회의록 요약발송 등」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22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3
- 민중당 사무총장, 「제61차 상집회의록 송부 등」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12월 10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396
- 민중당, 「제18차 중집,제19차(통합1차)중집,제77차(통합1차)상집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2월 15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2610
지구당 문건
- 민중당동대문구(갑)지구당, 「민중당 동대문구(갑)지구당 창당대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10일, 2025년 2월 22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11300
- 민중당 안산시옹진군지구당, 「민중당 제5차 임시당원대회 자료집」[18]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4월 28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843
실무자회의 관련 문건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회의 제2차 전원회의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6일, 2024년 12월 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36169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민중당은 개혁되어야 한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6일, 2024년 12월 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1
-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 회의, 「민중당 개혁을 위한 당 실무자회의 제3차 전원회의 결정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23일, 2024년 12월 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7935
- 오세철, 「더 이상 당개혁을 늦출수 없습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6월 24일, 2024년 12월 1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68099
- 제명 당원 6인(김정하, 김길오, 김선식, 김흥균, 최혁, 한승인), 「재심청구 사유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7월 23일, 2024년 12월 9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36168
- 영업부,[19] 「민중당을 바라보는 관점과 민중당내 최근의 사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8월 8일, 2024년 12월 8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396627
- 민중당 중앙당기위원장, 「김걸오 외 5인에 대한 징계 재심 의결서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8월 14일, 2024년 12월 8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1
기타 당 공식 문건
-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민중당 창당발기인대회 자료집」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6월 21일, 2025년 2월 12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976929
- 민중당, 「자료집-민중당 창당대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13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53987
- 민중당, 「민중당 당헌·당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05383
- 민중당, 「민중당 강령·기본정책」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91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1」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4월 27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7487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Ⅱ」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782
- 민중당 정책위원회, 「민중당 정책자료집 III: 지방자치제와 사회복지-지자체 선거시 민주후보의 사회복지부문 선거공약을 위한 정책 제안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5월 20일, 2025년 2월 20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15830
신문 기사
- 작성자 불명, 「민중당 창당 발기인 대회」 , 『한겨레』 , 1990년 6월 22일, 2024년 12월 27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62200289101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6-22&officeId=00028&pageNo=1&printNo=651&publishType=00010
- 서명숙 기자, 「야권통합 바람 속 “흔들리지 않게”」 , 『시사저널』 , 1990년 8월 30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201
- 전영배 기자, 「오늘 진보적 민중당 창당, 대표 선출」 , 『MBC』 ,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40847_30436.html
- 작성자 불명, 「"민중주체 민주사회 건설"」 , 『한겨레』 , 1990년 11월 11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1110028910100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11&officeId=00028&pageNo=1&printNo=772&publishType=00010
- 작성자 불명, 「민중당 당사 여의도 이전」 , 『한겨레』 , 1991년 5월 22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50200289102009&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5-02&officeId=00028&pageNo=2&printNo=914&publishType=00010
- 작성자 불명, 「개혁추진위 관련 민중당 6명 제명」 , 『한겨레』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5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600289101008&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7-16&officeId=00028&pageNo=1&printNo=978&publishType=00010
- 정영무 기자, 「'교조적 진보' 배격 세력확장 포석 민중당 '일부당원' 제명 배경」 , 『한겨레』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5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600289103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7-16&officeId=00028&pageNo=3&printNo=978&publishType=00010
- 작성자 불명, 「"대중政黨(정당)발돋움계기"」 , 『동아일보』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600209205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7-16&officeId=00020&pageNo=5&printNo=21534&publishType=00020
- 작성자 불명, 「左派(좌파)제거로 內部(내부)정리」 , 『경향신문』 , 1991년 7월 16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71800329105009&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7-18&officeId=00032&pageNo=5&printNo=14114&publishType=00010
- 이계성 기자, 「정당 심벌마크 무엇을 의미하나 (화제추적)」 , 『한국일보』 , 1992년 2월 12일, 2025년 3월 7일 기사 확인.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202120014374893
- 김기영 기자, 「한나라당 ‘민중계’가 잘 나가는 이유」 , 『신동아』 2002년 10월호, 2002년 10월 4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shindonga.donga.com/politics/article/all/13/101888/6
도서
- 이정로, 정기상, 박노해, 한승호, 김태윤, 박정식, 김영교, 정영훈, 김창희, 김현수, 『민중당, 국민연합 그리고 민중통일전선』 , 노동문학사, 1990년.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정당사 제4집』 , 2000년. https://library.nec.go.kr/neweps/epdata/EP24/EBM2024/01/EBM0120240255/index.html
논문
- 김보현,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내부정치 - "연대의 결여"와 "지체된 성장"」 , 『기억과 전망』 18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2876761
광고
- 이우재, 김낙중, 장영근, 김종신, 김결, 이재오, 장기표, 지은희, 김문수, 신철영, 임수태, 정태윤, 유인열, 이원주, 염만숙, 송경평, 「민중당을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 『한겨레』 , 1992년 4월 15일, 2025년 2월 13일 광고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204150028910201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04-15&officeId=00028&pageNo=2&printNo=1210&publishType=00010
기타
- 민중당 현판식 현장 사진 모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7월 7일, 2024년 12월 27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photo-archives/view/00757118
- 양달섭, 「중앙집행위원들께 드리는 글[민중당 창당 발기인 참여 징계관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9월 ?일, 2024년 12월 21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30134
- 주대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9월 29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413458
-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원회, 「민중당접촉 공동확인사항」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12월 ?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29576
-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 「통합에 관한 해법」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2년 ?월 ?일, 2025년 2월 25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5655
- https://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singleData=Y&archiveEventId=0028270375 28p
- ↑ 1.0 1.1 1.2 OCR 프로그램을 통해 텍스트화하였다. 오탈자가 있을 수 있다.
- ↑ 이상 로고 해설에 대한 출처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202120014374893
- ↑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노동당 통합 이후 이 심볼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한국노동당과의 통합 이후인 1992년 총선에서도 이 로고를 사용하였다. 1992년 총선에 출마한 민중당 후보들의 공보물을 보면 이 로고가 사용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 4.0 4.1 작성자 불명, 「민중당 창당 발기인 대회」 , 『한겨레』 , 1990년 6월 22일, 2024년 12월 27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62200289101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6-22&officeId=00028&pageNo=1&printNo=651&publishType=00010 - ↑ 훗날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맡게 되는 권용목의 아버지이다. 본인 스스로도 노동운동가로 활약했다. 훗날 부자 모두 뉴라이트 활동에 참여하며 전향했다.
김혜선 기자, 「"민노총은 남탓말고 스스로 반성해라"」 , 『뉴데일리』 , 2009년 3월 13일, 2009년 5월 19일 수정, 2025년 2월 13일 기사 확인.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9/03/13/2009031300005.html - ↑ 민중당 현판식 현장 사진 모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7월 7일, 2024년 12월 27일 게시물 확인.)
https://archives.kdemo.or.kr/photo-archives/view/00757118 - ↑ 7.0 7.1 7.2 7.3 작성자 불명, 「"민중주체 민주사회 건설"」 , 『한겨레』 , 1990년 11월 11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1110028910100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11&officeId=00028&pageNo=1&printNo=772&publishType=00010 - ↑ 선관위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지구당은 총 48개였다. 대한민국정당사 4집 184p.
- ↑ 전영배 기자, 「오늘 진보적 민중당 창당, 대표 선출」 , 『MBC』 ,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40847_30436.html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정당사 제4집』 , 2000년, 183p.
https://library.nec.go.kr/neweps/epdata/EP24/EBM2024/01/EBM0120240255/index.html - ↑ 대한민국정당사 4집 184p.
- ↑ 작성자 불명, 「민중당 당사 여의도 이전」 , 『한겨레』 , 1991년 5월 22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1050200289102009&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5-02&officeId=00028&pageNo=2&printNo=914&publishType=00010 -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2020600289103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2-06&officeId=00028&pageNo=3&printNo=1150&publishType=00010
- ↑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김기영 기자, 「한나라당 ‘민중계’가 잘 나가는 이유」 , 『신동아』 2002년 10월호, 2002년 10월 4일, 2024년 12월 20일 기사 확인.
https://shindonga.donga.com/politics/article/all/13/101888/6 - ↑ https://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199114061&queryText=&zone=&fieldText=&prevQueryText=%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3AALL_NI_TOC%3AAND&prevPubYearFieldText=&languageCode=&synonymYn=&refineSearchYn=&pageNum=&pageSize=&orderBy=&topMainMenuCode=&topSubMenuCode=&totalSize=6&totalSizeByMenu=6&seqNo=&hanjaYn=Y&knowPub=&isdb=&isdbsvc=&tt1=&down=&frgnLangMtrlYn=&targetLangCode=&checkedDbIdList=&baseDbId=&selectedDbIndexIdList=&caller=&asideState=&dpBranch=ALL&journalKind=&selZone=ALL_NI_TOC&searchQuery=%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none p.287.
- ↑ https://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199114061&queryText=&zone=&fieldText=&prevQueryText=%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3AALL_NI_TOC%3AAND&prevPubYearFieldText=&languageCode=&synonymYn=&refineSearchYn=&pageNum=&pageSize=&orderBy=&topMainMenuCode=&topSubMenuCode=&totalSize=6&totalSizeByMenu=6&seqNo=&hanjaYn=Y&knowPub=&isdb=&isdbsvc=&tt1=&down=&frgnLangMtrlYn=&targetLangCode=&checkedDbIdList=&baseDbId=&selectedDbIndexIdList=&caller=&asideState=&dpBranch=ALL&journalKind=&selZone=ALL_NI_TOC&searchQuery=%EC%8B%9C%EB%8F%84%EC%9D%98%ED%9A%8C%EC%9D%98%EC%9B%90%EC%84%A0%EA%B1%B0%EC%B4%9D%EB%9E%8C#none p.162.
- ↑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558
- ↑ 문서의 제목은 「민중당 제5차 임시당원대회 자료집」으로 되어있으나, 정확히는 민중당 '안산시옹진군지구당'의 5차 임시당원대회 자료집인 것으로 추측됨.
- ↑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위키 편집자는 노회찬-주대환의 인민노련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