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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 서울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 ||
* 상임대표 : 이우재 창당준비위원장 | |||
* 공동대표 : 김상기 경북대 교수, 김낙중 전 고려대 교수 | |||
* 상임고문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 |||
* 사무총장 : 이재오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처장 | |||
* 정책위원장 : 장기표 정강기초위원장 | |||
* 대변인 : 정문화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 | |||
창당대회에서 창당선언문, 강령, 기본정책, 당헌이 채택되었고 당을 각계위원회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는 것과 당직의 20%를 여성으로 채우는 것이 결정되었다. 창당대회에는 3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창당대회의 시점에서 민중당은 총 51개의 지구당을 가지고 있었다.<ref name="창당대회">작성자 불명, 「"민중주체 민주사회 건설"」 , 『한겨레』 , 1990년 11월 11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1110028910100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11&officeId=00028&pageNo=1&printNo=772&publishType=00010</ref><ref>선관위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지구당은 총 48개였다. 대한민국정당사 4집 184p.</ref> <br><br>창당대회 현장에서 소란이 있었다. 창당대회에 사노맹을 지지하는 학생과 노동자 20여명이 참석해 '사회주의 만세' 등의 문구가 써진 플랜카드를 내걸려다 민중당 당원들과 마찰을 빚었다.<ref>전영배 기자, 「오늘 진보적 민중당 창당, 대표 선출」 , 『MBC』 , 1990년 11월 10일, 2025년 2월 11일 기사 확인. <br>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40847_30436.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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