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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1일, [[민중당]]의 창당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ref>민중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 「민중당 창당발기인대회 자료집」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6월 21일, 2024년 12월 15일 게시물 확인. p.21.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976929</ref> 이후 김길오는 노원구 을 지구당에서 평당원으로 활동하며 특별한 당직을 맡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ref name="재심 의결서">민중당 중앙당기위원장, 「김걸오 외 5인에 대한 징계 재심 의결서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8월 14일, 2024년 12월 8일 게시물 확인.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1</ref><ref>「김걸오 외 5인에 대한 징계 재심 의결서 송부」 문건은 김길오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의 당직을 명시하고 있는데, 김길오는 당직이 명시되어있지 않다. 이를 통해 김길오가 민중당 안에서 당직을 맡은 바가 없음을 추정할 수 있다.</ref> | * 6월 21일, [[민중당]]의 창당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ref>민중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 「민중당 창당발기인대회 자료집」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0년 6월 21일, 2024년 12월 15일 게시물 확인. p.21.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976929</ref> 이후 김길오는 노원구 을 지구당에서 평당원으로 활동하며 특별한 당직을 맡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ref name="재심 의결서">민중당 중앙당기위원장, 「김걸오 외 5인에 대한 징계 재심 의결서 송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확인 , 자료 생산 일자 1991년 8월 14일, 2024년 12월 8일 게시물 확인. <br>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24411</ref><ref>「김걸오 외 5인에 대한 징계 재심 의결서 송부」 문건은 김길오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의 당직을 명시하고 있는데, 김길오는 당직이 명시되어있지 않다. 이를 통해 김길오가 민중당 안에서 당직을 맡은 바가 없음을 추정할 수 있다.</ref> | ||
* 10월 4일, 윤석양 이병은 탈영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이 사건은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ref>김태권 만화가,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 『한겨레』 , 2024년 10월 3일, 2024년 12월 19일 기사 확인.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60910.html</ref> | * 10월 4일, 윤석양 이병은 탈영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이 사건은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ref>김태권 만화가,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 『한겨레』 , 2024년 10월 3일, 2024년 12월 19일 기사 확인. <br>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60910.html</ref> | ||
* 10월 9일, 한겨레는 보안사가 사찰한 서울대생들의 명단을 보도했다. 김길오는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ref>작성자 불명, 「보안사사찰 서울대생 3백87명 명단」 , 『한겨레』 , 1990년 10월 9일, 2024년 12월 15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0090028911301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28&pageNo=13&printNo=743&publishType=00010</ref> 한겨레는 김길오의 인적사항이 1987년 1월 서빙고 분실로 연행된 권아무개에 의해 보안사로 흘러들어갔다고 보도했다.<ref>작성자 불명, 「서울대 운동권 신상내용'녹화사업'통해 파악」 , 『한겨레』 , 1990년 10월 10일, 2024년 12월 15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01000289114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0-10&officeId=00028&pageNo=14&printNo=744&publishType=00010</ref> | * 10월 9일, 한겨레는 보안사가 사찰한 서울대생들의 명단을 보도했다. 김길오는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ref>작성자 불명, 「보안사사찰 서울대생 3백87명 명단」 , 『한겨레』 , 1990년 10월 9일, 2024년 12월 15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0090028911301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28&pageNo=13&printNo=743&publishType=00010</ref> 한겨레는 김길오의 인적사항이 1987년 1월 서빙고 분실로 연행된 권아무개에 의해 보안사로 흘러들어갔다고 보도했다.<ref>작성자 불명, 「서울대 운동권 신상내용'녹화사업'통해 파악」 , 『한겨레』 , 1990년 10월 10일, 2024년 12월 15일 기사 확인. <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101000289114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0-10&officeId=00028&pageNo=14&printNo=744&publishType=00010</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