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당개혁을 늦출수 없습니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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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샘 당계학을 늦출 수 없습니다. | |||
오·세 성 ( 교수위원정, 서유 노원읍구 지구당위원장) | |||
존경하는 당원동지 이리봉. | |||
유미온 민중정당건설과 민중투쟁에 앞장서 오신 당원동지의 불금의 의※ | |||
미 기입한 신천에 경희용 트립니다. 민인주의 개인지의 인사법이었으니 美中 | |||
추진위원회의 구성에 일정시 온 지는 창당이후 망율 6개월간 지켜보면서 민 | |||
중딩이 이 땅의 사회변혁을 정치적으로 담당할 능력을 상실하고 또 하나의 | |||
야당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지않을까 하는 '판단에 이르기 되었습니다. 북미 | |||
지난 5월 투쟁과정에서 보여준 민중딩의 모습은 투쟁의 명분만 있음 뿐 창당 | |||
이년율 이탈한 재도민정당의 개량주의외 기회주의의 모습이었다고 헤드 지니 | |||
긴 밀이 아닙니다. 출범당시부터 근본적 한개를 지닌 수 밖에 없었던 민중당 | |||
의 개혁된 주 없는 구조적 조긴을 깊이 인식하고, 지는 최근 딩유 며남 김성 | |||
융 하개되있습니다. 지구당의 당원동지나: 교수위원회의 소속교수들은 당의 | |||
근본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최종적인 행동을 유보해줄 것과 | |||
당개혁을 끝까지 신천하지 않고 떠나는 행동이 무색입안 행동입을 비판해주 | |||
었습니다. 지는 교수들의 탈당이 개기가 되어 , 당개혁이 이루어진 수 있다고 | |||
생각했었지만 당을 아끼는 동지들의 비판적: 충고를 고맙게 맏아들이고 당개 | |||
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 |||
2. | |||
존경하는 당원동지 이리분. | |||
동지들이나 제가 민중정당긴선에 참이한 것은 당긴실옵 동안 민중의 징 | |||
치세력화가 역시적 필인이미 노동해깡, 민중해빙의 길이라는 깃을 것이 인식 | |||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보직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민교협(. 민주회를 위 | |||
한 전국 교수협의회 )은 민중운동 조직긴설에 적금 동참한다는 조직히 결의 | |||
뮤 하였으며, 상당수 소속교수들이 : 민중정당건설을 위한 교수추진위원회를 | |||
구성하고 다른 기층민중과 : 함께 민연주에 결합했습니다. 민교안내부에서는 | |||
민중연합진선의 구축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했으며, 또한 민인주 | |||
의 상층부운동을 동한 당건설이 근본적 한개를 지닌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민 | |||
인추의 결합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견해 | |||
는 민중진영의 일반적 견해있다고 봅니다. 그그에도불구하고 교수추진위원회 | |||
는 비난과 우리를 무릅쓰고 ·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물 강력히 주장했고, | |||
결국 그것은 민주연합당을 주장했던 민주연합파의 탈퇴로, 결말이 났습니다. ( | |||
그 후 민주연합파가 보수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한 것을 보아도 독자정당노선 | |||
의, 정당성이 입증됩니다.). 민중진영은 민중정당간섭에 있어서 개량주의적 | |||
B) | |||
08089 | |||
미즈치우도기변사 | |||
신규 업계 시작하기 노신으로의 우경화가 저지되었다고 판단했으미, 민교협에서도 교수추진위원 | |||
회에 대한 신뢰가 생겼습니다. 그 후 교수위원회는 [민언주에 대한 평가,리 | |||
는 공식문건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 핑기는 인재 팀이 당면히고 있는 문 | |||
제외도 깊이 인민되기 때문에 주요 대부윤 보기로 하겠습니다. | |||
"(1) 들어가는 만 | |||
민중정당건설과정에 데?! 입증하고도 객관적인 평가는 편인적으로 : 포 우리가 진성해야 간 민중명의 올바른 위싱과 목습용 설정하는데 기본적 | |||
: 보대가 된다. 지니진 역시에 대한 끊임없는 만성괴 비판은 이상죄인 미래시 | |||
외긴설의 일기몰이 된다. 너구나 민중권리창출을 가로막는 객관직 조건과 주 | |||
제억량의 . 한계는 반드시 민중직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또한 우리는 앞 | |||
^ 으로도 민중당에 대한 외래공직이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분명 | |||
히 가져야 한다. ( 중리 ) | |||
(2) 평가 | |||
1 총체적 평가 | |||
민연주의 결성은 그 시초부터 오류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민중권력창출 | |||
. | |||
-1에 대한 기본노선과 전략에 대한 근본적 견해차이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 | |||
고 상충인사의 주도와 봉합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오히려 「준비모임」의 확대 | |||
기 진진이 아닌 후퇴의 모습이있다. '민연추결성 전날 소위 8인소위가 마련한 문 | |||
건의 제목이 [민중의 정치세대회를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 이외음용 주목 | |||
한 필요가 있다. 민중권리창출에 진심이 없는 야권통합파의 주도권이 간절되 | |||
관 있음을 보여주는 타업블로서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문구간 「민중의 행 | |||
당건설」로 바뀌는 변화는 민언주의 단명을 애추하고 있었다. | |||
민민주 결성대회에서 보여주었던 패권다툼,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 |||
지도부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전략단위의 결합이 초대한 민언적 과징 | |||
이었다. 한달 반동안의 과정은 역량의 소모와 조직구성원의 사기지하를 가지 | |||
왔으미, 민연주의 규약을 위반하면서까지 야권통합을 제안한 단일야당론자들 | |||
의.에견된 이탈은 민중권력창출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 |||
4: | |||
민연주의 결성으로 민중정딩의 세력이 확장될 수, 있었다는 긍정적 측민 | |||
윤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총체적으로 평가한 때 민중권력창출의 을 | |||
바른 노선과 조직 앙식이라는 간진에서 오름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
이러한 타격을 입은 것은 민중권력창출을 지지하려는 모든 세력( 제국주의와 | |||
독점자본, 지배권력, 보수야당 일부 민족민주운동세력 )과의 역관계 속에서 | |||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과정이었지만, 민중권리창출의 기본원칙인 민중주체의 | |||
원칙과 민주주의의 원칙이 칠지하게 지키지진. 않았다는 집과 상충지도부의 | |||
타협주의에도 그 원인이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1.증.다.) | |||
(3) 몇가지 교훈 | |||
1 민중주체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자, | |||
회 준비모임과 민연추가 상충부 인사의 활동으로 움직이 :왔고 밑으로부터의 | |||
민주집중재가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강력한 민중조직이 되지 못하였음을 상기 | |||
하고, : 기층민중조직의 강화를 통한 당긴설이 지속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 | |||
다. 의회중심의 재도권정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중주제의 권 | |||
력창출입을 인식해야 한다. . | |||
신기 20 타협주의를 배직하지. | |||
시공개 원칙을 지키미 신축성을 깃눈 것과 원칙에 벗어난 타협온 입민히 구분되 | |||
만이야 한다. 민연추단계에서 보이주있던 인간관계와 의리를 중시히는 김상주 | |||
□의는 극복되어야 히미, 항상 민중성의 대의에 복무하는 자세로 임한 때에만 | |||
☆ 타협이 아닌 유연한 진술을 구사신 수 있음 것이다. | |||
月1 민원법3 계급직 간접에 서자. : | |||
암환율계급적'간점에 철저히지 않음 때 부단한 동요가 있음윤 우리는 목적하있 | |||
다:1특히 통합파기 보여준 오류는 미로 계급직 기민이 다른 네시 오는 동요 | |||
있으미, 진술의 치이기 이니리 전략의 치이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우리시회 | |||
() 의: 진망을 개급적 간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만이 민중권력의 올바른 창출이 가 | |||
/ 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이야 한다. | |||
3. | |||
: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 |||
소위 민주연합파들의 이탈은 제도언론의 재야분열이라는 어른조작의 미 | |||
끼가 되있고: 민중정당건설노선의 명예를' 훼손시켰지만 역사적인 민중정당긴 | |||
설의. 발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습니다. 법률적 시한에 쫓기미 서두른 민중당 | |||
다창당은 '몇가지 기본적 인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87년 이후 기층대중조직의 | |||
습성장과 빌진은. 괄목할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당긴신의 외교한 기반이 되 | |||
지지 못하였으며, 사회민혁노선과 조직에 대한 전해치이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 | |||
은로 혼재해 있었기 때문에 당긴설에 대한 민중진영의 강범위한 지지가 부족했 | |||
습니다. 따라서 기층대중조직과의 관개를 공고히 하는 부문위원회( 노동, 年 | |||
민, 여성, 청년학생, 교수 )의 임무와 활동의 중요성은 지대한 것이었습니 | |||
다 망긴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당이념, 조직, 그리고 물죄기반이 | |||
라고 생각합니다! : 교수위원회는 특히 강령제정, 진보적 지식인의 조직직 결 | |||
합 그리고 취약한 재징에 대한 부분적' 공인이라는 임무에 충실했다고 생각 | |||
c합니다. 구체적으로 당이 당민한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기 진에 창당과정에서 | |||
보인: 지도부의 문제를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창당직진 당헌의 지도체제에 | |||
대한 상임위의 안은 단일지도체제안이었고 공식적 회의에서 결정된 바 있습 | |||
됩니다. 그러나 동일한 의사결정기구(상임위)는중앙위원회의 전에 비상상집을 | |||
스열이 집단지도체제로 그 결정을 번복하였습니다. 이기서 중요한 문제는 단독 | |||
: 이냐: 집단이냐의 문제가 이니라 인사부재리의 원칙을 위배하면서 반복길점 | |||
을 한 '상임위의' 무원칙한 행위였습니다. 그후 창당대회와 관련된 후유증과 | |||
징계파동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인 | |||
련의 과정이. 당의 : 실질적 민주주의 확보가 아닌 영식직 절차에 매달리는 경 | |||
직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단초가 되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
로빈 일쨌든 민중의 측과과 기대와 우리 : 속에 민중당이 창당되고 반년동안 당 | |||
으로서의 모습을 이리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개월은 우리사회 | |||
의 모순구조가 더욱 심의되면서 미소권력의 만민주적: 반민중직 폭력성이 | |||
시기있으미, 노선에 : | |||
골화되는 민중운동진영도 따라 정리되면서 더육 민중인 | |||
댄가 확고해 지는 시기있습니다. 노정권의 총체직 위기는 총체적 파국의 기 | |||
회를 민중진영에개 익숙히는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그것은 5. 6월의 | |||
de ·! | |||
노정권타도투쟁으로 솟구쳤으며 보수세이과의 차별성이 두드리지는 계기로 | |||
작용했습니다. 민중당은 부쟁국민이 고조되고 정치일정이 현상화되면서부터 | |||
민중투쟁과 재도정당의 정치행동의. 길림길에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으며 관 | |||
넘직으로만 가능했던 앙지멍립이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깨단기 시작했 | |||
습니다. 이기에. 광역선기는 민중딩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핵심고리있음을 | |||
민중진영의.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지는 개인적으로 민중당의 광역선기 | |||
참여결정은 강명위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기서 선거에 참이한 동지 / | |||
들을 비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신기국민을 노정권퇴진뚜쟁으로이용한 | |||
동지들에게는 경의를 표힙니다. 진정한 문제는 5·6월투쟁을 거치면서 민중당 | |||
이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올미른 민중정당으로 니아감 수 | |||
이후 없다는 지의' 판단이었습니다. | |||
1. | |||
우선 당이념에 관련된 사상직 통일의 문제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강령 | |||
분과위원장을 맡아 교수위원회의 교수들과 및 몇 당직자와 함께 강령초안을 | |||
작성한 사람으로서 민중딩딩링의 요재와 그 실천의 적합성 여부를 선명하겠 | |||
습니다. 한마디로 민중당강령은 당내 세리의 역관계에 의한 타협적 산물입니 | |||
다. 강령분과위원회의 초안이 상임위를 거치는 동안 부분적 수정이 이루어졌 | |||
습니다. 그러나, 적이도 민중민주주의라는 강령의 기본 원칙이 어느정도 유 | |||
지되면서 남한사회의 역사적 조건율 감안한 강령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많 | |||
마음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강령은 소중한 성과물로: 받아들이지 | |||
% 외고: 있습니다. 14 | |||
11 그리나 문제는 당강령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지금까지 당의 주요 당직자 | |||
나머가 개인의 생각을 당이념으로 왜곡하는 일이었습니다. 창당 초기에 신문, 잡 | |||
: 지에 나타난 부분적 해석도 문제이지만 보다 본격적 형태로 나타난 공개직 | |||
의료표현물( 최근 시회밍론 창간호에 실린 장기표 정책위원장의 표현 )은 민중당 | |||
나이의 이념을 민중민주주의 강령과 동떨이진 맑스· 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로 규 | |||
정하므로씨 사회번혁의 이념을 희석시킨 개량주의 노선으로 규정하고 있는 | |||
것입니다. 마침 이글은 5월투쟁이 한창 가속화되는 시기에 출간되었으미 많 | |||
은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비만의 촛점이 되었습니다. 당의 강령이 말하는 | |||
사람에 따라 달리 규정된다면 당은 이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미 바로 그 | |||
리한 사상직 혼란은 민중당의 실천율 오도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 |||
' : 1 | |||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 | |||
강령은 종이조기리가 아닙니다. 당의 이념과 정신이 실천 속에 살아 승 | |||
민지쉬는 나침빈이요, 무쟁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창당이후 민중당의 실천( 징! | |||
11. 치망칩과 행동 )을 산피불 때, 특히 최근 5·6월투쟁의 과정을 보면 당강령으 | |||
로부터 이탈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밀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 운동조 | |||
직과, 달리 당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직어도 민중진영의 노선과 일 | |||
인디치하는 정치방침과 행동이 요구되어야합니다. 당당로서의 유연성을 '보이는 | |||
않았것이 계규직 긴집 그리고 민중인대의 간접읍 밀리 하는 것을 의미히지는 . 않 | |||
더디습니다. 그리나 민중딩은 민중연합진선과는 경쟁지: 관계로,자신율 인식하면 | |||
· 1. 서 보수야당과의 연대에 더 무개를 두는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수 | |||
: | |||
1. 야당과의 차별성을 대신, 오히려 보수야당의 본질과 모습을 닮아가리 | |||
보이는 | |||
시작했습니다. 이기서 인인이 당의 규제적 정치방침과 | |||
긴 는 모습으로 미치기 | |||
. | |||
행동, 그리고 그 신천여부를 미지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당 내부의 인상적 | |||
활동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민중진영의 비민의 소리를 등을 기회기 없습니 | |||
다. 심지어 요즘 민중당을 보수아당의 대인에 놓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 | |||
립니다. 이 모든. 것이 당이념에 대한 시상직. 동일이 확립되지, 않기 때문에, | |||
인이니는 인성이미, 강령을 구체적 신천지 무긴한 문서에 분자이도목 만든 | |||
당 지도부의 강령실천의 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당강병은 자의적으로 해석 | |||
되어서도 안되미 실천되지 않는 문서로 남아있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민중진 | |||
매장충의 인간 투쟁과정민이 우리의 길이미 신기공간에서도 그리안. 이념과 | |||
실천이 입증된 수 있도록 해야 긴 것입니다. 조금인 미읍에, 딩이념으로부터 | |||
이탈하면서 지배권력의 정치판에 끼어든다민 그것은 창당이념을 위반하는 깃 | |||
이라고 생각합니다. | |||
5. | |||
당이념과 연간된 프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당 민주주의 문제입니다. 민 | |||
중당은 좁게는 당원의 당이지만 넓게는 모든 민중의 당입니다. 그리나 당헌 | |||
상이 두가지를 현실적으로 실현시킬 수가 없습니다. 창당되기 전까지는 부 | |||
: | |||
문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확대되면서 기층대중조직과 개별성원율 당.으로 뀬 | |||
이들이고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부문위원회는 당의 | |||
부속기구로 협소해졌으며, 당조직이 지구당(지역)조직으로 편성됐기 때문에 | |||
부문조직이 전혀 신아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 진보정당을 보 | |||
더라도 부문조직의 역할을 배제시키고 축소시킨 애가 없습니다. 당의 명령계 | |||
동의 확인성을 강조하는 관료조직의 원칙은 보수야당의 조직체게임에도 불구 | |||
하고 민중당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대중조직의 조직적 결합이 | |||
야말로 위력적 민중정당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부문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존재 | |||
함으로써 민중연대의 힘을 익화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연합이나 국민 | |||
회의와의 조직적 연대와 결합용 통해서만 민중당은 민중의 당이 됨 수 있습 | |||
니디. | |||
두 번째로 당내 민주주의문제를 보민 일반 당원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반 | |||
엉될 통로가 전혀 없디는 사실입니다. 진당대의인 창당대회가 그 당시 이긴 | |||
상 편법으로 치루어졌다 히더리도, 인제 임시진당대회소집이 필요할지 모르 | |||
기 때문에 당원과 대의원규정을 빨리 재정해야만 하는데도, 가장 최상급의 | |||
의사결정기구를 만들지는 않고 중앙위원회만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수행하 | |||
고 있는 것입니다. 진보정딩의 민주집중제가 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신 | |||
정입니다. 따라서 하급의사결정기구의 의사결정에 하자가 있거나 강령에 위 | |||
반되는 결정을 한디 히더라도 이를 비판할 수 있는 통로가 얼려있지 않습니 | |||
다. 당내 민주주의는 오직 최상급 의사결정기구의 강화를 통해서만 실현될 | |||
수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 |||
당이 출범한 당시 위의 무 조긴이 깃추이겨 있지 않았다는 한개를 인정 | |||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6개월동안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을 전히 하지 | |||
않았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진보정당은 분파가 인정되어야 합 | |||
니다. 특히 그것이 이념직 문제에 관련된, 분파행동이라면 더더욱 당연합니 | |||
다. 분파의 불인정이 경직된 스틸린주의적 편향입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 | |||
다. 탕기강이나 규율을 앞세워 정당한 분파행동을 가로막는다면 이미 그당은 | |||
진보정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
6. | |||
존경하는 당원동지 어리분. | |||
민중당은 올바른 민중정당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것의 성공과 실패는 | |||
오직· 개급적 간접의 간절과 민주주의원칙의 고수에 달러 있습니다. 창당된지 | |||
반년이 지나도록 민중당의 세력이 키지지 않고 오히려 그 기반이 되어야한 | |||
민중세력으로부터 비판과 비난 그리고 신질적 이달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 | |||
입니까 ? 이미 이리한 문제를 기존하는 조직들로씨 해결하는 데는 한개가 / | |||
있을을 지는 길.이 인식했습니다. 지는 상임위원회의 한사람인 교수위원장이 | |||
미 중앙위원인 지구당위원장으로서 개인직 공식문건을 당내에 공개하도록 요 | |||
칭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긴이 좋은 본보기가 되이 | |||
당내 토론이 활성화되고 당개혁을 위한 강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역사와 | |||
민중에 책임지는 민중정당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 당의 사상적 통일 | |||
을 이득하고 당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히어 민중당은 근본직, 개혁읍 단행해 | |||
야 합니다. 바로 그 개혁의 과정이 명실상부한 민중정당건설의 과정으로 인 | |||
식되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2개월 내에 임시진당대회가 소집되어야 하며, | |||
이를 올바르개 실현시킬 수 있는 병법을 온 당원이 지혜를 모아 마린애야 합 | |||
니다. 곱 | |||
신끝으로 ·당원동지 어리분께 뜨거운 동지애와 민주투쟁의 의지를 보냅니 | |||
다. 1 | |||
1991. 6. 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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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기타]] | [[분류: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