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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트 오브 퍼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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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퀴어시민단체 '친구사이'를 통해서 영화 '스테이트 오브 퍼스트'를 봤다. 영화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사라 맥브라이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정치인을 다루는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정말로 중요한 지점의 이야기는 감춰놓고 있지만(가령 영화는 사라의 당내 경선 과정을 다루고 있지 않는데,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델라웨어에서는 본선보다도 당내 경선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 |||
영화는 사라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개중에서 내가 주목하게 되는 지점은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트랜스젠더 대표성 가운데에서 방황하는 모습이었다. 사라는 자신이 델라웨어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장 커다란 정치적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정치인은 퀴어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소환되며 주목받는 운명을 어쩔 수 없이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선거 토론회 과정을 통해 상대방 후보로부터 직접적으로 지적되며, 사라 본인도 이에 대하여 '좋은 질문'이라 평가한다. 이 질문에 대해 사라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정치인 특유의 공허하고 내용없는 수사적 표현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나 싶다. 다시 말해, 사라 맥브라이드는 능력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 |||
그런데 이런 딜레마는 지극히 미국적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지역의 대표성을 띄지 않고 오롯하게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부문의 대표성만을 가질 수 있는 비례대표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지 않은가. 물론 한국의 정치 구도 역시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부문 대표성 보다는 지역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대표성을 위주로 굴러가고 있다. 때문에 성소수자 운동이 광범위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된다면, 부문 대표성과 지역 대표성 사이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하기엔 너무 이른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성소수장 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이며, 나는 여기에 있어서 비례대표를 통해 성소수자 당사자가 성소수자 대표성을 가진 채로 의회에 진출하는 방안을 지지하게 된다. | |||
바람을 섞어서 이야기하자면, 퀴어의 대표만을 목적으로 하는 당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 세계 퀴어운동의 역사에서 퀴어의 독자적 정당이 생긴 사례는 없다. 이것은 퀴어 운동이 여타 사회운동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인 이유가 크겠지만, 경제 구조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고 있기에 사회의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가령 녹색당과 같은 환경론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방법론이든 사회주의적 방법론이든 뭔가 경제 구조에 전면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다. 동성혼의 합법화나 성중립화장실의 보급같은 문제는 경제 구조의 전면적인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요구하는 변화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독자적인 세력화보다는 기존 정당 질서로의 편입이 이뤄진 측면이 있을 수 있다. | |||
그러나 현재의 한국에서 퀴어 정치가 기존 정당 질서로 편입되기란 요원하다. 민주당 안에서 자발적인 당원모임의 형태로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지려다 엎어진 일을 아직 기억한다. 나는 세번째권력 회원으로서 성소수자 문제를 신경써달라는 의향을 지도부에 개진했던 적이 있었고, 지도부는 감사하게도 세번째권력 비전선언문에 성소수자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나의 의견을 받아들여주셨다. 그러나 제3지대 운동의 결과물인 개혁신당을 통해 성소수자운동을 전개하기를 기대하는 일이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나는 그 당을 자유주의적 상층부와 대안우파적 하층부의 위태로운 결합이라고 평가하는데, 상층부의 자유주의적 기풍 역시 일관되거나 투철하지는 않다. 한국에서 퀴어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당으로 정의당과 녹색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당들의 현재 정치적 영향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소수자 운동의 정치적 중심지로 삼기에는 기준에 미달한다. 정의당의 적록연합은 메갈리아 사태를 거치며 표류하다가, 결국 고리타분한 적색의 강조라는 옛 관성으로 회귀하였다. 녹색당은 서구의 녹색당들처럼 아나키즘-자유주의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졌다기보다는, 농촌 사회에 대한 향수가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는 정당이다. | |||
길게 보자. '친구사이'에서 운영하는 성소수자 정치인 발굴 프로그램 <RUN OUT>은 실패할 것이다. 돈을 걸라면 빚을 내서라도 실패하는 쪽에 걸어볼 의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긴 호흡으로 시도를 반복하며, 역량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 길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적 자립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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