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당개혁을 늦출수 없습니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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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 ||
소위 민주연합파들의 이탈은 제도언론의 재야분열이라는 여론조작의 미끼가 되었고 민중정당건설노선의 명예를 훼손시켰지만 역사적인 민중정당건설의 발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습니다. 법률적 시한에 쫓기며 서두른 민중당 창당은 몇가지 기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87년 이후 기층대중조직의 성장과 발전은 괄목할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당건설의 확고한 기반이 되지 못하였으며, 사회변혁노선과 조직에 대한 견해차이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혼재해 있었기 때문에 당건설에 대한 민중진영의 광범위한 지지가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기층대중조직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부문위원회( 노동, 농민, 여성, 청년학생, 교수 )의 임무와 활동의 중요성은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당건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당이념, 조직, 그리고 | 소위 민주연합파들의 이탈은 제도언론의 재야분열이라는 여론조작의 미끼가 되었고 민중정당건설노선의 명예를 훼손시켰지만 역사적인 민중정당건설의 발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습니다. 법률적 시한에 쫓기며 서두른 민중당 창당은 몇가지 기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87년 이후 기층대중조직의 성장과 발전은 괄목할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당건설의 확고한 기반이 되지 못하였으며, 사회변혁노선과 조직에 대한 견해차이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혼재해 있었기 때문에 당건설에 대한 민중진영의 광범위한 지지가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기층대중조직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부문위원회( 노동, 농민, 여성, 청년학생, 교수 )의 임무와 활동의 중요성은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당건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당이념, 조직, 그리고 물적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위원회는 특히 강령제정, 진보적 지식인의 조직적 결합, 그리고 취약한 재정에 대한 부분적 공헌이라는 임무에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당이 당면한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창당과정에서 보인 지도부의 문제를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창당직전 당헌의 지도체제에 대한 상임위의 안은 단일지도체제안이었고 공식적 회의에서 결정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의사결정기구(상임위)는 중앙위원회의 전에 비상상집을 열어 집단지도체제로 그 결정을 번복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단독이냐, 집단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위배하면서 번복결정을 한 상임위의 무원칙한 행위였습니다. 그후 창당대회와 관련된 후유증과 징계파동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당의 실질적 민주주의 확보가 아닌 형식직 절차에 매달리는 경직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단초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
어쨌든 민중의 축복과 기대와 우려 속에 민중당이 창당되고 반년동안 당으로서의 모습을 여러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개월은 우리사회의 모순구조가 더욱 심화되면서 파쇼권력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폭력성이 노골화되는 시기였으며, 민중운동진영도 노선에 따라 정리되면서 더욱 민중연대가 확고해 지는 시기였습니다. 노정권의 총체적 위기는 총체적 파국의 기회를 민중진영에게 약속하는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그것은 5·6월의 | |||
보인 | |||
대한 상임위의 안은 단일지도체제안이었고 공식적 회의에서 결정된 바 | |||
징계파동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 |||
노정권타도투쟁으로 솟구쳤으며 보수세이과의 차별성이 두드리지는 계기로 | 노정권타도투쟁으로 솟구쳤으며 보수세이과의 차별성이 두드리지는 계기로 | ||